[기획] 남발된 학생 징계, 유보된 학내 민주주의

1964년 당시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학생이던 이재오가 박정희 대통령의 한일회담 추진에 격렬하게 반대하다가 퇴학당했다. 지난 정권에서 특임장관을 지냈던 실세 중의 실세, 그 이재오다. 그로부터 46년이 지난 2010년, 철학과 김주식 씨가 퇴학당했다. 그해 3월 구조조정 반대 집회에서 교직원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이유였다. 확인되지 않은 진실이었다. 당시 현장에 있던 학생들의 증언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사건 당사자인 교직원의 증언이 채택됐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 김주식 씨는 퇴학당했다. 그가 퇴학당한 사유에는 해당 사건과 더불어 4년 전인 2006년 근신 4개월의 징계를 받은 이력이 포함되었다. 김주식 씨가 휴학생 신분으로 총학생회 교육국장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도 포함되었다.

“운동권은 나가 놀아라”고요?

그의 퇴학은 정당했을까? 누군가 악의적으로 위증을 했을까? 집회가 열린 본관 앞에는 학생이 대부분이었고 교직원이 그 다음이었으며 외부 기자도 있었다. 그러나 상벌위원회는 교직원 3명과 학생 2명을 목격자로 택했다. 진실의 향방은 둘째 치고 그 자체로 합당하지 못한 처사였다. 사건의 진실을 가리고자 했다면 외부 기자도 목격자로 택하는 것이 맞았다. 한편 또 하나의 징계사유였던 근신 4개월 이력은 어떨까? 2006년 등록금 투쟁 과정에서 김주식 당시 총학생회장은 총장실을 점거, 낙서했다는 이유로 근신 4개월을 받았지만, 이후 취소됐다. 즉 근신 이력은 사실상 없는 것이며, 그에 따른 가중처벌 역시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 학교가 문제 삼은 것이 ‘휴학생은 학생회 임원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학생회칙에 명시된 사항으로, 이미 학생대표로 구성된 중앙운영위원회에서 직위를 승인받았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 문제가 된다 해도 학칙을 위반한 것이 아니므로 징계 사유가 되지 못한다. 원칙적으로 회칙을 위반했을 경우에는 학생회 자체 징계를 내리는 것이 맞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그는 ‘운동권’이라서 퇴학당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과도한 징계라는 비판은 감수하겠습니다. … 두 분은 학생이 아닌 스펙을 쌓는 운동권 인사입니다. 따라서 아직도 1980년대 식의 의식에 젖어 있는 운동권은 ‘나가 놀아라’는 교육적인 메시지를 분명하게 준 것입니다.” 안국신 당시 부총장이 전체 교수에게 보낸 메일 중 일부다(2010. 9. 4 <중대신문>). 한편 징계 무효 소송 과정에서 법원은 ‘불법 집회에 수차례 참석한 것’을 징계 사유의 하나로 판정한 바 있다. 징계의 직접적 사유가 아니었음에도 굳이 증거자료로 제출된 것은 학교의 징계 시도 어딘가에 그런 인식이 짙게 깔려있음을 알려준다. 김주식 씨는 운동권이었고, 그래서 퇴학당하지 않아도 될 사유로 퇴학을 선고받아야 했다. 법정 투쟁 끝에 그는 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을 너무 많이 겪은 후였다.

사시사철 가리지 않고 불어오는 징계 칼바람

그가 퇴학당하기 한 해 전인 2009년, 이재오는 ‘명예박사’가 되어 중앙대에 돌아왔다. ‘운동권’ 이재오의 퇴학, ‘친이’ 이재오의 복귀, 다시 ‘운동권’ 김주식 씨의 퇴학. 이 일련의 사건들이 단순한 우연일까? 그러기엔 너무나 징후적이지 않은가? 징후는 곧 증상이 되어 나타났다. 김주식 씨의 퇴학 이후 중앙대에 전례 없이 많은 징계가 오갔다.

여태껏 이토록 짧은 기간에 징계가 남발된 적이 없었다. 1996년 무역학과 한 학생이 만취해 교수를 폭행, 퇴학당한 이후 14년간 퇴학은 없었다. 2010년 이전에는 징계가 거의 없었다. 근신 수준의 경징계가 두 번 있었는데, 그중 한번은 취소되기도 했다. 2010년 이후에 징계 건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근신과 유기정학이 각각 다섯 번, 무기정학과 퇴학이 각각 두 번 내려져 총 14건의 징계가 실시됐다. 한편 징계가 결정되지는 않았지만 2009년에는 진중권 임용 탈락 때 항의한 6명에 대해 상벌위원회가 개최된 바 있었고, 2010년 학교가 새터를 취소했을 때 자체적으로 새터를 진행한 자연대 학생회장에 대해서도 상벌위원회가 개최됐다. 2011년 원탁회의를 주동한 3명에 대해서도 상벌위원회가 개최됐다. 안성캠퍼스 부정선거로 인한 징계 1건을 제외하면 전부 학교 정책에 반대한 학생들에게 주어진 징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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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의 일만은 아니다. 구조조정이나 최근 강의사전평가제까지 ‘대학이 상상하지 못했던’ 영역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중앙대이지만 아쉽게 학생 징계의 영역에서는 약간 밀리는 감이 있다. 고려대학교는 2006년에 학생 5명에게 유기정학, 7명에게 ‘출교’ 조치했다. 출교는 퇴학보다 한 단계 위의 징계로, 퇴학과는 달리 재입학이 불가능하다. 징계 명목은 학내 집회 과정에서 교수를 감금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향후 전개된 출교 조치 무효 소송에서 학생들이 승소했고, 이에 학교본부가 항소를 제기했다. 이때 학교본부는 항소 이유로 ‘출교 대상자들이 전원 자본주의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키려는 민주노동당 당원’임을 들었다. 김주식 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징계의 진짜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최근에는 동국대에서도 학과 구조조정에 반대하던 학생이 퇴학조치 당했다. 여기서도 학교는 “지난 2년간의 활동을 참작“해 퇴학 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 지난 2년간의 활동이란 학교 정책에 반대해 온 활동들이다.

징계에 대한 세 가지 물음

다른 시기 다른 학교에서 벌어진 일련의 징계 사태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징계 받은 학생들이 무효 소송을 제기하면 번번이 승소한다는 것이다. 승소 뒤에는 한 단계 낮춘 징계가 재차 내려진다. 김주식·노영수·김창인 씨는 법정투쟁을 통해 징계 무효 처분을 받았지만, 돌아온 것은 또 징계였다. 퇴학 처분을 받았던 김주식·노영수 씨에게는 무기정학이, 무기정학을 받았던 김창인 씨에게는 유기정학이 돌아왔다. 동국대 징계생도 무효 처분을 받았으나 무기정학 징계를 다시 받아야 했다. 고려대 출교생들의 경우 출교 무효 처분 이후 곧바로 퇴학 징계를 받았고, 퇴학 무효 처분 이후 1년 뒤 무기정학 처분을 받는 등 4년간 사태가 진행돼 2006년에 시작된 일이 2010년에야 마무리됐다.

이제 징계에 대한 세 가지 물음을 던질 수 있겠다. 먼저 학생사회에 최근 징계가 급증한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부분의 징계가 학교 정책에 반대하는 학생들에게 가해졌다. 중앙대의 경우 2010년부터 구조조정이 본격화됐다. 그러나 그 과정은 학생들과의 논의 없이 조용히 진행됐다. 이에 학생들은 반발했고, 반발은 거센 저항으로 나타나게 됐다. 징계받은 학생들은 학교에 ‘지나치게’ 관심이 많았던 탓에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2011년 굳이 잔디밭에서 원탁회의를 진행한 것도 그런 까닭이었고, 2012년 ‘용감한 녀석들’이 용감하게 발언한 것도 그런 까닭이었다. 이는 동국대의 경우에서도 전혀 다르지 않았다.

징계 소송은 왜 항상 무효 처분으로 끝날까? 징계의 사유로 드는 학칙이 헌법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학칙은 유신헌법 시기 ‘학도호국단’에 의해 정립된 이후 크게 변하지 않았다(본지 4호 ‘악칙도 학칙이다’). 다른 학교에서는 이미 폐지되고 없는 집회 허가제 조항과 대자보 및 매체 발행에 대한 허가제 조항은 여전히 중앙대에 살아있다. 유신은 한 발 총알에 가고 ‘그때 그 학칙’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니 소송의 결과는 불 보듯 뻔한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는 결과를 알면서도 왜 무리한 징계를 진행할까? 징계가 불가능한 것을 학교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계속 징계했다. 학교에 비판적인 학생들을 최대한 오래 학교 바깥에 묶어두려는 ‘전략적 봉쇄징계’인 셈이다. 전략적 봉쇄징계의 원형은 ‘전략적 봉쇄소송’인데, ‘공공영역에 대한 비판적 참여를 봉쇄하기 위한 소송’을 일컫는다. 미국에서는 이런 식의 소송을 법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패소에 따르는 대가는 미미하고 소송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구조조정은 톨게이트 없는 고속도로를 달리니 학교 입장에서도 이만하면 수지가 맞는다.

징계는 어떻게 규율을 만드나

이런 식의 압박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이 뭘까?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그의 유명한 저서 『감시와 처벌』에서 감시의 형태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다뤘다. 푸코에 따르면, 근대 이전에는 공개된 광장에서 신체를 통제하는 형벌이 이뤄졌다. 이를 통해 ‘반항의 엄두도 내지 말라’는 경고를 대중에게 전하려는 의도였다. 근대에 이르면 권력은 죄인의 신체를 괴롭히지 않는다. 감옥이라는 제도로 가둬놓고 훈육한다. 권력은 보다 합리적인 방법을 원했다. 이제 권력은 가정, 학교, 군대, 공장과 같은 시스템을 통해 규율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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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대학사회는 위와 비슷한 단계를 밟고 있다. 신체를 구속하는 것처럼 직접적인 징계를 반복적으로 가하면서 ‘반항의 엄두도 내지 말라’는 경고를 전하고 있다. 동시에 징계 기록이나 상벌위원회 개최 소식을 커뮤니티를 통해 공지함으로써 경고의 성격이 보다 짙어진다. 한편 구시대적인 학칙을 그대로 보전함으로써 누구든 징계에 노출될 수 있다는 위협을 가하는데, 여기에는 ‘학교 명예 실추’와 같은 추상적인 사유가 포함된다. 두루뭉술하기 때문에 학생들 입장에서 스스로 조심할 수밖에 없다. 규율화되는 것이다. 미국 버클리 주립대학교는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징계 사유를 엄격하게 규정한다. ‘학교 명예 실추’ 같은 모호한 조항은 없다. 상벌위원회 구성도 교수평의회 대표, 재학생 대표, 졸업생 대표, 학과장 등 다양하다. 징계 대상 학생은 변호인을 동반할 수도 있다. 무분별한 징계를 막기 위한 수단들인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징계는 일방적이다. 학교는 학생을 번번이 징계하지만 학생은 학교를 징계할 수 없다. 왜 학생은 학교를 징계할 수 없을까? 최근 국가장학금 2유형 탈락 사태나 1+3 국제전형이 풍전등화가 된 사태를 보면 학교의 ‘헛발질’을 참고 넘어가기 힘들다. 그러나 우리는 학교의 잘못에 ‘사과 촉구’밖엔 할 수 없다. ‘감시자는 누가 감시하는가?’ 이 고전적인 질문은 대학교에 이르러 ‘징계자는 누가 징계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변주된다. 학생은 학교의 필요에 따라 ‘교육 객체’가 됐다가 ‘교육 서비스 소비자’가 되기도 하는 그런 존재다.

인사계열 구조조정, 다시 부는 칼바람

지금까지 학생사회에 대한 징계만을 다뤘지만 이런 현상이 학생사회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교직원에 대한 징계도 강화되고 있다. 수강신청 시스템에 오류가 발생할 때마다 전산 담당자가 징계 받는 일은 예삿일이다. 2010년 52대 부총학생회장에게 신축 기숙사 관련 정보를 제공한 교직원이 대기발령 조치를 받았다. “본인의 사사로운 판단으로 학교정책에 관한 오해를 불러오고 기숙사 운영 TFT의 활동에 지장을 초래한 점을 간과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교수사회에 대해서는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된 ‘강의사전평가제’ 도입을 통해 근본적인 통제를 시도하려 하고 있다. 대학을 구성하는 학생-교직원-교수 3주체에 대해 압박이 가해지고 있는 것이다.

새삼 다시 징계 얘기를 꺼내는 것이 이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당면한 문제다. 새 총장이 언질 줬듯 이른바 ‘화학적 구조조정’이라는 새로운 바람이 불어올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미 인문사회계열 구조조정이 발표됐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확정된 바 없던’ 논의는 어느날 갑자기 구체화돼 학생들에게 고지됐다. 이 일방통행에 학생들은 다시 저항해야만 한다. 징계의 위협은 여전히 학내에 잔존한다.

| 버드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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