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국장’이라는 늪에 빠진 ‘교육의 공공성’

| 짱큰콩

올해 1학기 국가장학금 2유형(이하 2유형) 지원 대상에서 중앙대가 탈락했다. 한국장학재단 측은 “학교가 1학기 등록금을 동결했으나 평균 등록금이 인상되었기에 사실상 등록금을 인상했다고 판단, 지원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학교는 1학기 등록금을 동결했다. 그러나 학과 구조조정 중에 ‘에너지 시스템 공학부’를 신설하는 등 상대적으로 등록금이 비싼 이공계열의 학과 정원수를 늘렸고, 그에 따라 전체 학생 1인당 평균 등록금이 0.95%P 인상되었다. 이에 학교에서는 “학과 구조조정으로 평균등록금 인상이 불가피했다” 는 입장을 냈지만, 총학생회는 “애초에 대학이 등록금 인하를 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라며 학교 측을 비판하고 나섰다.

커뮤니티 중앙인에 항의 댓글이 연이어 달렸고, 사회과학대 학생회는 곧 SNS에  ‘2유형 탈락’에서 학교의 책임을 묻는 글을 게시했다. 그리고 지난 4월 2일 전체학생대표자회의가 루이스홀에서 열렸다. 다섯 개의 성명서 안건 채택 순서에서 ‘2유형 대책 마련 촉구’는 첫 번째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학교 측에서 내놓은 해결책은 ‘지난해 미지급된 학교 장학금과 올해 예상되는 장학금 미지급분을 합해서 탈락한 국가장학금을 메우겠다’는 것이었다. 총학생회는 ‘미지급된 장학금은 결국 학생들의 등록금’이라며 장학금 돌려막기 식이 아닌 학교의 자체적 책임을 촉구하는 내용을 성명서에 담았다. 참석한 학생들 대다수는 첫 번째 안건에 자리잡았던 ‘2유형 대책 마련 촉구’만큼은 의결권을 행사하고 떠났다. 며칠 뒤 대운동장에서 학생총회가 열렸다. 전체 재학생 14,735명 중 1/8 이상이 참석할 때 성사가 되는데, 투표 시작 전까지 총 2055명이 모이면서 정족수를 채울 수 있었다. 7년만에 성사된 총회였다. 번번이 정족수 미달로 무산되던 행사였으나, 올해 국가장학금 문제로 결집한 학생들은 한자리에 모여 구호를 외쳤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이번 장학금 문제가 가장 시급한 문제로 공유된 것이다.

국가장학금의 한계

2유형은 “지난해 7500억 원 예산 중 93.4%인 7007억 원에서 올해는 6000억 원 예산 중 55.8%인 3349억 원만 지원될 예정” (한국 장학재단 ‘2012~2013년 국가장학금 2유형 지원현황’)이라는 분석이 나온 현재,  2유형 장학금을 지원받은 대학의 수 또한 지난해 335개교에서 288개교로 줄었다. 2유형은 특성상 대학의 등록금 인하율이 높거나 자체적 장학금 확충이 많을수록 지원액이 늘어난다. 그러나 이번 본교에서 일어난 사건처럼 학교의 자체적 등록금 동결 혹은 인하 노력이 없으면 국가장학금 정책은 사실상 그 효력을 상실한다. 세종대의 경우 올해 등록금을 2.5% 인하했으나 2유형을 받지 못했다. 지난 해보다 자체 장학금 규모를 대폭 축소했기 때문에 2유형의 지원자격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중앙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이 이번 2유형 선발 과정에서 탈락한 것은  ‘대학의 자체적 노력을 전제한다’는 국가장학금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주는 사례가 되었다. 국가장학금은 등록금 부담 완화를 위한 “반값” 등록금 투쟁의 대안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등록금 투쟁과 그 구호의 변화

사실 대학생들의 등록금 투쟁은 4.19 이후 50년이 넘게 계속되어 왔다. 그 과정에서 ‘사학법 개정’ ‘학벌주의 타파’ 그리고 ‘교육의 공공성’ 등을 외치는 다양한 구호들이 나왔다. 그리고 이는 헌법에도 명시된 ‘교육의 기본권’을 지켜내려 한 학생들의 치열한 고민과 상상력의 결과물이었다. 그러던 중 2011년 ‘반값 등록금’이라는 구호를 내세운 운동이 대대적으로 일어났다. 당시 ‘반값’이라는 구체적인 구호는 꽤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고 학생들의 운동은 연일 미디어에 보도되었다. 대학등록금 문제는 다시 사회적 이슈로 자리잡았다. ‘반값’ 등록금이라는 구호는 보다 많은 사람에게 빠른 속도로 다가갔다. 그러나 그에 비해, 교육의 공공성을 찾자는 등록금 투쟁의 본질적 목표는 ‘반값’이라는 이름에 밀려 그 속도를 맞추지 못했다. 사람들의 의식 속에 깊이 다가가지 못했고, 담론 형성의 저변에 짙게 깔리지도 못했다. 어느새 등록금 투쟁은 대학생 개개인이 교육 ‘서비스’를 받는 데 있어서 ‘수익자 부담 완화’의 수단이 돼버렸다. 그에 따라 논의점은 ‘등록금 인하와 장학금 수혜 범위 확장’등의 부분적 대안 마련으로 점점 더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2012년 정부는 반값등록금의 대안으로 ‘국가장학금’이라는 정책을 발표했다. 학생들은 ‘등록금 부담 완화’에 대한 희망만을 품고 다시금 목소리를 낮추었다. 국가장학금을 받기 위해 대학생들은 학교의 등록금 인하율 한 자리 수에도 예민해져 단 1%의 변화에 울고 웃는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약 일년 전에 나온 ‘대안’인 국가 장학금조차 학교의 자율적 구조조정으로 0.95% 상승한 수치상의 평균등록금 때문에 받지 못했다.

education not for sale

늪에서 탈출할 때

이전까지의 교육 투쟁은 대학생 스스로 단순한 교육 서비스 대상으로서  ‘등록금 부담이 너무 크니 제발 줄여달라’고 한 ‘투정’이 결코 아니었다. 교육의 영역에서만큼은 사회적•경제적 지위에 상관없이 평등을 보장받도록 하는 기본권 획득을 위한 ‘투쟁’이었다. 우리는 더이상 ‘투정’에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대안’이었던 국가장학금은 결국 시혜적 복지로서 그 한계를 드러냈다. 대학생은 그 안에서 적극적인 주장을 하기 힘들다. 어디까지나 학교와 정부의 ‘시혜’를 받는 ‘수혜자’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개개인의 힘든 처지를 증명해 보이고 단 몇 푼이나마 더 베풀어주십사 부탁할 뿐이다. 교육은 그 사회의 인재를 배출하는 지극히 공공적인 과정이다. 장학금을 평등을 보장하는 가장 좋은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은, 공공적인 교육의 부담을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굴레 속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게 하는 또 하나의 굴레다. ‘선 고액 등록금 후 지원’의 허점은 결국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의 폭을 좁힐 뿐이었다. 이제 우리는 무얼 말할 수 있을까?이미 좁아질 대로 좁아진 우리의 담론은 이제 또 얼마나 좁혀야 하는 것일까.

최근 독일에서 등록금 전면 폐지 운동이 있었다. 현재 독일에 있는 대학에서 등록금을 받는 두 곳 중 한 곳인 바이에른주에서 대학 등록금을 없애기 위한 국민청원이 일어난 것이다. 전체 인구의 14.4%에 달하는 130만 명이 서명을 한 상태이며 다른 노조와 사회단체, 청소년단체도 그 뜻을 함께했다. 비록 한국 대학의 등록금에 비하면 너무나 적은 금액인 약 70 만원의 돈을 내는 곳이지만, ‘교육의 기본권’을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넓게 퍼져있다는 것이 전면폐지운동의 큰 동력이었다.

종교단체에서 설립한 대학을 제외하면 독일의 대학교는 모두 주립으로 운영하며 한국과 같은 ‘학벌 서열’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수업료 또한 대부분 받지 않는다. ‘모든 국민에게 평생 교육의 기회를 부여한다’는 독일 교육정책의 목표와 함께, 독일은 교육 기본법을 준수하며 정책을 펼쳐나가고 있다. 한국에서도 분명 헌법 31조와 교육기본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항목들이다. 다만 차이는 한국의 현 정책과 대학의 구조가 이 조항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육 투쟁은 ‘등록금 인하’만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독일 사회에서 대학 등록금 전면 폐지라는 희망적 운동이 일어난 배경은 등록금의 액수보다 그 안에 담긴 평등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공감이 컸기 때문이다. 독일 교육제도는 100여 년의 사회보장제도와 함께 변화해왔다. 그래서 교육과정에서도 ‘함께 사는 법’을 가르침으로써 시민들이 점점 더 큰 공공성을 실현할 수 있게 한다. 교육과 제도가 공명하며 공공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교육이라는 것이, 개인들 간의 경합성과 배제성이라는 경제적 논리에 따라서만 움직여야 할 것인지, 우리의 교육 투쟁의 목표가 단지 개인이 부담할 ‘액수 인하’에 그쳐야 할 것인지. 혹시 ‘교육의 공공성’이라는 구호는 지금 어떤 늪에 빠져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느 날 나타나, 이전의 운동을 꿀꺽 삼켜버린, 시혜적 장학금 제도 ‘국장’이라는 ‘늪’ 말이다. 이에 따라 우리가 요구할 수 있는 권리는 점점 더 줄어들었다. 이제, 이 늪에서 ‘교육의 공공성’을 구해낼 때다. 이제는 ‘교육의 공공성’을 온전히 이루고 지킬 수 있도록 다양한 상상을 다시 시작할 때다. 축소될 대로 축소되어버린 지금의 교육 담론, 그 너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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