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자치의 조건, 자치의 역량

| 우혁

2000명의 의혈 학우가 모였다. 4월 11일, 교육여건 개선과 국가장학금 2유형 미지급 사태에 대한 해결 촉구, 구조조정 마스터플랜 공개를 주 요구안으로 하는 학생총회가 성사됐다. 2006년이후 7년만이다. 그동안 논의할 만한 문제가 없어 총회가 열리지 않은 건 아니었다. 문제는 더욱 심각했지만 모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변화를 바라는 학우들의 의지와 55대 총학생회의 적극적인 홍보가 있었기에 이번의 성사가 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이로써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요구안을 넘겨받은 학교본부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지켜봐야 한다. 지난 2년 동안 대학의 총학생회라기보다 초등학교의 선도부에 가깝던 총학생회가 이제는 제 역할을 해 나가도록 뒤에서 밀어주는 것 또한 우리들의 몫이다.

총학생회가 중앙정부라면 과 학생회는 지방정부다. 중앙과 지방이 공히 중요하듯, 작고 낮은 단위라 해서 그 중요성이 덜한 것은 아니다. 일상의 문제들을 과 학생회 차원에서 해결해내지 못할 경우, 이는 학생회와 학내 정치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공통의 문제를 ‘자치’를 통해 해결해 나갈 때 느끼는 자치 기구에 대한 효능감과 신뢰는 학내 정치, 학생 자치가 가능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그렇다면 작은 단위에서 벌어지는 문제와 갈등을 우리는 잘 풀어가고 있을까. 어려운 여건 속에서 학생회 임원과 회장들이 노력하고 있지만, 그렇지 못해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한 학우가 모 학과의 학생회비 납부 방식과 불합리한 규율을 ‘중앙인’에 폭로하며 빚어진 논란은 우리 학생사회 풀뿌리 정치의 수준을 드러내 준다.

해당 단위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꼈을 때 당사자가 마지막으로 하게 되는 것이 내부고발이다.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아픈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학과 차원의 작은 단위들은 갈등 해결 능력을 상실했다. 둘째, 학우들은 학생회를 문제 해결의 주체로 신뢰하지 않았다. 남은 것은 ‘추문-폭로와 민원제기-여론재판-매장’으로 이어지는 상처뿐인 과정이다. 폭로된 문제는 당장 해결될지 모르나 서로에 대한 불신과 공동체에 대한 환멸만이 남는다. 자신의 일을 스스로 처리할 능력이 없음을 증명한 셈이다.

고발한 학우들이 느꼈을 심적 부담을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많은 문제들을 필요 이상으로 여론재판의 장으로 넘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편한’ 방식일 수는 있어도 항상 좋은 방식은 아니다. 폭로는 어디까지나 불가피한, 마지막 선택이어야 한다. 학생회는 이 돈이 왜 필요한지, 왜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액수를 거두어야 하는지, 이 행사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새로이 공동체에 포함된 구성원을 설득하고 합의해 나갔어야 했다. 그것이 부족했기에 벌어진 일이다. 새로운 구성원에게 열려 있지 못한 관행은 강제와 억압이 되기 쉽다.

자치도 실력이다. 자치할 역량이 없으면 누군가의 통치를 받게 되는 것은 역사가 보여주는 자명한 사실이다. 갈등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여론 재판이나 민원 제기의 형식으로 처리할 때 우리의 자치권은 학교 본부를 비롯한 ‘외부’에 ‘신탁’되며, 우리는 성인에서 지도를 받아 마땅한 아이로 격하된다. 과연 우리는, 우리가 속한 단위의 문제를 현명하게 풀어나갈 능력을 갖추고 있나. 이것이 문제를 누군가에게 해결해 달라고 요청하기 이전에 우리가 마땅히 답하고 증명해내야 할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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