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읽기] 건물에 담긴 문화적 기억: 대학과 여성

| 최동민

 

‘아름다운 수용소’ 하이델베르크 도서관

필자가 학업 중인 이곳 하이델베르크는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비는 관광도시이다. 특히 하이델베르크 고성은 바이에른 주에 위치한 백조성을 제치고 독일관광청이 뽑은 독일 내 명소 1위로 선정되었을 만큼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한다. 고성 말고도 이곳을 찾는 수 많은 관광객들이 빼놓지 않고 방문하는 장소가 있는데, 이는 바로 하이델베르크대학 도서관이다. 필자와 같은 유학생에게는 하루 10시간 씩 감금되어 있어야하는 아름다운 ‘수용소’지만, 관광객들의 눈에는 꽤나 멋드러지게 보이는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1901년에 준공되어 1905년에 완공된 도서관은 화려한 르네상스식의 내외장과 웅장한 청동탑으로 꾸며져 있어 지나가는 이로 하여금 시선을 고정시키게 만든다.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의 외관에 이끌려 도서관 입구로 발을 딛고 출입문에 손을 뻗는 관광객들이 받는 최초의 신체적 감각은 육중한 ‘문의 무게감’이다.

“우와! 무겁다.”

화려한 유겐트양식으로 치장된 강철문은 성인남자가 열기에도 쉽지 않을 정도로 대단히 무거워 출입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의식적으로 엄숙함을 느끼게 만든다. 때문에 지금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수 많은 사람이 출입하는 도서관에서 노약자나 여성들을 위해 문을 열어주는 행위가 일종의 매너처럼 자리잡혀 있다. 독일의 문학평론가 발터 벤야민은 건축물에 시대의 집단적, 무의식적 기억이 저장되어 있다고 보았다. 때문에 그는 지난 세기의 건축물에 아로새겨진 문화적 기억을 재구성하고자 노력하는데, 그는 건축물에 감추어진 시대의 기억을 지각는 방법론에 있어서 “시각적 수용”에 앞서는 “촉각적 수용”의 중요성을 지적한다. 그의 방법론을 하이델베르크 대학도서관의 출입문을 열 때마다 받게 되는 촉각적 경험에 적용해 보면, 이러한 체험에서 발굴되는 문화적 기억은 선명해진다. 바로 이 도서관은 ‘성인남성’을 위해 설계되었다는 것이다. “희랍어 좀 하니?”

이러한 의혹은 문을 열고 마주하게 되는 최초의 시각적 이미지에 의해 가중된다. 육중한 도서관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좌우로 넓은 복도가 펼쳐지고, 그 바로 앞는 커다란 나무문이 두 개의 거대한 히랍어 문구의 호위를 받으며 서 있다. 히랍어에 무지한 필자와 같은 이들은 당혹스럽고 움츠러드는 감정에 빠지기 쉽상인데, 이는 당대의 여성들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기실19세기 말 당시 히랍어와 라틴어는 남성 인문고등학교 교육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이다. 여성 인문고등학교에서는 고전어 대신 실용적인 언어인 영어와 불어를 교육했는데, 이러한 교육의 배경에는 학문은 ‘남성만의 영역’이라는 오랜 편견이 자리하고 있었다. 매일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갈 때마다 촉각과 시각을 통해 필자에게 전해지는 공간의 문화적 기억은 분명하다.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와 희랍어 문구의 환영을 받으며 독서홀 Lesesaal에 앉아서 책을 읽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고전어 교육을 받은 성인남성뿐’이라는 지난 세기의 편견이다.

1734 대 49

한국에서는 최근 ‘여성대통령 논쟁’이 벌어지면서 앙겔라 메르켈이라는 여성이 국가의 수장을 맡고 있는 독일의 사례가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독일에서 여성이 참정권을 얻게 된 것은 바이마르 헌법이 제정된1919년으로 불과 100년도 되지 않았으며, 공공영역(정치와 학문 등)에 여성이 참여하게 된 것도 오래지 않다. 매일 도서관을 오가며 받은 경험에서 얻은 가설이 실제로 사실과 부합하는지 여부를 확인해보고자 인터넷에서 하이델베르크 대학도서관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역시나 여성이 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된 것도 그리 오래지 않았다. 이곳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는 1900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여성의 입학이 허용되었고, —도서관은 1901년에 준공되었다!— 도서관이 완공되었을 무렵인 1905년에는 전체 1783명의 학생 중 여성의 수는 불과49명에 불과했다. 대학에서 여성의 비율의 증가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여성성을 강조하며, 공적영역에서 여성을 철저히 배제하고자 했던 나치정권에서 실현되었다. 그러나 이는 정책적 노력 덕분이 아니라, 세계대전으로 인해 이삼십대 남성들이 대부분 징집됨으로 인해 그 빈자리를 여성들이 채우게 됐기 때문이었다. 전쟁이 치열해지면서 예비군까지 대거 동원된 1940년 대 초에는 하이델베르크 대학 내 여성비율은 30 퍼센트에 이르게 되었고, 오늘날 독일 대학에서 남성과 여성의 비율은 거의 동일해졌다.

여성 지도자라는 상징

여성의 대학입학이 허용된 이후로 여성이 국가의 수장이 되기까지는 독일에서 대략 100여년의 시간이 걸렸다. 불과 백 여년 전만 해도 여성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을  공간에서 이 글도 씌어지고 있는 셈이다. 미국인 선교사를 통해 시작된 한국의 근대적 여성교육의 역사도 이미 한 세기도 더 되었고, 한국 대학에서의 남녀 간 성비도 거의 비등해졌다. 여전히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남성주의 문화와 민간영역에서 고용과 임금에서의 극심한 차별에도 불구하고,  공적 영역에서 여성의 비율은 꾸준한 증가추세에 있다. 때문에 이제 한국사회에서 여성대통령이 탄생한다고 해도 그 모습이 그리 낮설지만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군사정부에서 퍼스트 ‘레이디’를 자임하며 봉건적 여성성을 ‘전시’하던 사람이 그 첫 영광을 누리게 된다면, 이는 한국의 근대적 여성교육과 해방의 역사에 적잖은 오점으로 남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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