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의 멘붕스쿨] 카우V와 나눈 간식의 정(情)


| 짱큰콩

2012년, 대학의 새내기 시절도 끝나간다. 눈을 감고 떠올려본다. 일 년간 나의 엄청난 멘붕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간다. 일 년전 내가 꿈꾸었던 환상들도 떠오른다. 고등학교 3년간 고이 간직해왔던 대학에 대한 환상이 단 한 달만에 깨졌지만, 딱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듯했다. ‘이게 무슨 대학이야!’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할 곳도, 나를 대신해서 말해줄 곳도 안보였다. 그러던 어느날, 페이스북에 뜬 로봇 태권V 로고의 프로필을 보았다. 총학생회. 미처 생각지 못했던, 총학생회의 존재를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래, 내가 들어온 대학 총학생회라면 분명 나의 불만들을 말해주고 대신 학교에 맞서주겠지. 기다렸다. 기다렸다. 착각이었다. 페이스북은 일종의 ‘시험기간, 오늘의 간식표’ 이자 ‘오늘의 연애 강연회는?’ 홍보물이었다. 불만은 있으나 묵묵히 콩나물 강의실에 출석하는 학생과, 페이스북에서만 볼 수 있던 총학생회 ‘의혈 카우V’ 사이에는 정치적 소통보다는 간식의 정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학관에서 받은 공짜 핫식스의 타우린0.1mg조차 남아있지 않다.

사실, 내가 새내기라 대학 총학생회에 대해 잘 모르고 하는 소리일 수도 있다. 원래 이런 곳인데 내가 너무 많은 걸, 괜한 걸 기대하고 요구하는 것인가? 과한 환상을 가졌던 건가? 그러나 만약 내 환상이 과한 것이라면 그것은 나에게 환상만을 주입시킨 고등학교의 교육과 교과서 탓이다. 정치를 가르치고, 학생의 권리와 자치를 생각하게 하고, 선거와 대의제를 통해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다며 시민의 역할을 가르쳤던 사회 수업시간들 때문이다. 하루 네 시간을 자며 아침 저녁으로 배우고 익혔던 것은 그러한 내용들이었다. 그런 생활 중에도 그나마 힘이 되었던 것은, “당장 대학만 가도 내가 써먹을 수 있는 것들이겠지. 민주 사회의 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이겠거니”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는 더 나은,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들을 가르쳐주고 훈련시키는 곳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보았고 느꼈고 알았다. 굳이 밤 12시가 넘도록 내가, 자치나 대의제의 역할과 기능 절차에 대해 공부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우리 학교가 그렇게 강조하는 것이 ‘사회에 나가서 써먹을 수 있는 실용적 학문’(이를테면 회계와 사회) 이지 않나. 고등학교에서 나는 굳이 대학에 가서 써먹을 수 있는 학문을 한 것은 아니었다 싶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대학에서 배우고 있는 ‘실용적 학문’이 사회에 나갔을 때 또 그렇게 실용적일 것인가 생각해보면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그럼 대체 나는 뭘 배웠나. 왜 배웠나. 학생회의 역할은 뭐고, 민주정치란 뭐고, 학교와 학생, 총학생회와 학생은 대체 무슨 관계인가. 과연 나는 언제쯤이면 배운 것을 써먹을 수 있는 것일까. 지긋지긋한 멘붕의 재시작이다.

10월 중순에서 말 즈음의 시험기간이었다. 한참 동안 책을 들여다 보다가, 어질어질해진 머리를 잠시 식히고자 페이스북에 들어가 보았다. 어김 없이 총학생회의 간식사업 포스터가 가장 눈에 띄었다. 간식을 무료로 나눠줄 뿐 아니라 “판매”도 한다고 한다. 총장님이 햄버거 1000개를 쏘신다고 한다. 스크롤을 조금 내렸다. 고등학교 후배들의 글이 보였다. 고등학생들도 시험기간이었다. 간간이 앓는 소리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글이 보였다. 학생회 후배가 묻고 있었다. ‘시험기간을 임의로 조정한’ 교장선생님께 항의하려 교장실에 직접 찾아갔다던 학생회장이었다. “방학때 두발과 복장 단속이 이어지는 건 어찌 생각하나”라는 물음에 학생들은 저마다 의견을 댓글로 달고 있었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 되버렸지만, 불과 일 년전 겪은 일들이었다. 당시 우리는 가장 기본적인, 신체의 자유를 찾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여전히 그 노력은 고등학교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고등학교 학생회 임원으로서 매달 학생회를 열 때면, 건의함에 빵 봉지들과 함께 수북이 쌓여 있던 쪽지들을 펼쳐 보였지만, 그 요구들 대개가 학교 측에 잘 전달되지 않았다. 그럴 때면 선생님은 “어쩔 수 없다. 지금은 힘들지만, 대학교에 가면 다 자유로워질 것이고, 그때는 너희의 소리를 내라. ”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지금은 조금만 참으라고…. 선생님께 문자 한 통을 남기고 싶다. “선생님. 왜 거짓말 하셨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와서 내가 얻은 것이 하나 있다면, 머리를 염색할 수 있는 기본적인 신체의 자유정도다. 가장 기본적인 자유를 얻고 나니 이제 할 말이 없는 것인가. 우리에게는 신체 뿐 아니라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비롯해서 찾아야할 더 많은 자유들이 남아있다. 또 등록금, 갑갑한 수업환경이나 학내 여러 인권문제의 개선 등 요구하고 해결해야할 부분들이 수없이 많이 남아있다. 그러나 총학생회는 ‘이것이 소통’이라며 SNS에서만 그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간식사업, 연애사업, 바람막이 대행구매사업…. 이 모든 것들이 모두 쓸데 없고 나쁜 정책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학생회의 본분을 잃고, 마치 진정한 학생 복지를 하는 것인 양 겉보기에 좋아 보이는, 아주 가벼운 민의만을 대변한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대학교 총학생회장은 학교 홍보실장도 학생지원처장도 아니다. 총학생회는 수 많은 학생들을 대표해서 대신 목소리 내주고 학교에 무언가를 요구하고 바꾸라고 만들어진 것 아닌가?

올해 학생회 선거가 끝났다. 원래 그런 것인지, 꽤 요란한 선거였다. 정말 조용했지만 투표과정만큼은 요란했다고 하는게 더 맞겠 다. 스무 살에 행사한 첫 선거권이었다. 대통령보다 앞서 찍은 것이 총학생회장이었다. 이제 진짜 내가 우리학교 학생회장을 뽑을 수 있구나. 내년을 만들어가는 구나. 많이 설렜고 기대했다. 또 많이 놀랐고 실망했다. 평소에 보지 못했던 대자보들이 여기저기 붙어있어서 신기한 마음에 읽었더니, 상대 후보의 후보자격을 운운한다든지, 각자가 비슷한 정책을 던져놓고, 네거티브 싸움만 하기 바빴다. 선관위의 제재들에 정신없이 맞추다가 지쳐버렸는지, 어느 날, 법학관에 걸려있던 샤우트라는 선본의 현수막이 찢어진 채 날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왠지 지금 그들의 상태를 대변해 주는 듯했다. 씁쓸했다. 그리고 의문투성이였던 요란한 투표과정은 또 다시 날 한숨짓게 만들었다. 단지 나는 나의 의견을 잘 대변해주고, 진짜 멋있는 의혈 중앙인, 태권V만큼 멋있는 학생회를 원했을 뿐인데.

그러나 어찌되었든 선거는 끝났고 결과는 나왔다. 나는 바란다. 내년 새내기들이 나와 같은 멘탈의 상처를 입지 않기를. 고등학교 시절에 가졌던 그 환상을 반의 반만큼이라도 간직할 수 있기를. 그래서 이렇게 바란다. 적어도, 내가 고등학교에서 배웠던 ‘상식적인’ 학생회를. 다양한 간식들과 핫식스 500개를 받아오기 위해, 후원 받을 회사를 알아보려 발로 뛰고 다이얼을 돌리기 보다, 다양한 강의들을 열고 안정된 수업권을 찾아오기 위해 발로 뛰고 토론하는 학생회를. 학생회장 자리에 나와서 몸을 사리며 본분을 다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을 대변하며 학교 측에 강력한 목소리도 낼 줄 알고, 동시에 학생들의 일상 속 편의 또한 외면하지 않는 진정한 대의 자치기구. 그게 2013년 내가 다니는 중앙대학교의 총학생회라면 좋겠다. 그러면 나의 이 붕괴된 멘탈도 조금은 회복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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