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정말 ‘부실선거’라도 괜찮아?


| 덕배

흑석과 안성에서 총학생회 선거가 모두 마무리되었다. 안성은 선거지도위원회의 선거무효 판정으로 깔끔하게 선거가 엎어졌고, 흑석은 ‘좋아요’선본의 당선이 확정되어 55대 총학생회가 출범했다. 이번 선거는 참 다이내믹했다. 양 선본간의 네거티브 공세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그러나 단연 압권은 안성 캠퍼스 선거지도위원회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였다. 과정이 어찌되었건 결과는 깔끔해 보인다. 중앙인 커뮤니티에서는 ‘정의가 승리했다’는 환호가 쏟아졌다. 그런데 이번 선거, 지나간 일로 덮어두기만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민주주의의 꽃, 선거의 기본 원칙에 대한 질문이 다시 필요한 시점이다.

아주 사소한 투표권 박탈

인문대와 사회과학대 전자투표에서는 문헌정보학과 학생의 소속단위 분류에서 오류가 발생했다. 투표 첫째 날은 인문대였다가, 둘째 날은 사회과학대가 되어버린 문헌정보학과 학생이 있었다. 상식적으로 중간에 선거인명부를 수정하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인데, 전자투표 관리 업체에서는 수정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이에 인문대와 사회과학대는 전자투표의 신뢰도에 의혹을 제기하며 재투표를 치렀다.

공대에서는 선거인명부에서 한 단위가 누락되어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 학생들이 있었다. 공대 선관위가 선거인명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이 원인이었다. 그 결과 안성에서 흑석으로 온 건설대 학생 110여명의 단과대 투표권이 박탈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러나 110명이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 것과 상관 없이 공대 단과대 투표는 유효했다. 공대 선관위와 공대의 양선본이 단대 투표를 유효로 인정하기로 ‘합의’한 결과였다. 이 학생들의 투표권 박탈에 대한 공론화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예술대에서도 공대와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다. 투표가 시작되고 나서 선거인 명부에 누락된 학생이 30여명 있다는 사실이 발견된 것이다. 그러나 예술대는 단과대 선거를 종이투표로 진행했기에 즉각 선거인 명부에 30명을 추가로 반영할 수 있었고, 투표는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이런 부실들은 1차적으로 투표 관리업체나 단과대 선관위의 문제다. 그러나 전자투표에서는 단과대 투표함과 총학생회 투표함이 하나의 서버에 함께 기록, 저장된다는 점에서 단과대에서 발생한 부실투표 문제는 총학생회 선거의 부실투표 의혹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궁극적으로는 중선관위가 책임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일부 학생들의 투표권 박탈이라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음에도 중선관위는 소극적이었다. 중선관위원장은 심지어 문헌정보학과 학생의 소속단과대 분류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바빠서 정신이 없었다.”라는 핑계로 해당 단과대 선관위에 이 사실을 알리지도 않았다.

마음 좋은 중선관위는 투표업체를 믿었나

전자투표는 시행된 지 올해로 세 번째를 맞는다. 이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일까? 작년 총학생회 투표에서는 중선관위가 투표 서버를 총학생회실에 두고 투표시간 외에는 랜 선을 뽑아 외부 접속을 차단하는 등 관리 감독의 책임을 다했다. 중선관위 성원들이 밤새 투표 서버를 직접 지키기도 했다. 그런데 올해는 이런 노력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서버는 학교 외부에 있었고 타 대학의 전자투표 시스템과 통합 관리되기까지 했다. 중선관위가 투표과정에 무책임하게 임했다는 것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사례다.

전자투표 서버에 임의 접속한 로그 기록이 공개되었지만 여전히 업체 측은 수정을 극구 부인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업체 측의 해명을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업체 측이 이야기한 것처럼 “소속 단과대 분류가 랜덤하게 잘못 이뤄진 것”이라면, 전자투표는 임의로 발생하는 문제를 통제할 수 없는 시스템인 셈이다. 반면 전자투표에서 문제가 임의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면 분명 누군가는 명부를 수정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 접속 기록은 있으나 업체는 아니라고 하니 그 주체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우리는 그 주체도 알 수 없고 수정이 이뤄진 범위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개표 전에 투표 중간 결과가 누군가에 의해 열람되었을 수 있다는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전자투표에서는 결과를 확인하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검증되지 않은 의혹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공론화되지는 못했지만 중앙인 게시판에는 투표를 하러 갔다가 “이미 투표했다”는 얘기를 듣고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 사례가 올라오기도 했다. 이런 제보가 있었음에도 중선관위와 투표관리 업체는 적극적으로 이를 파악하고 해명하려 노력하지 않았다.

내가하면 로맨스, 통진당이 하면 불륜?

투표 과정에서 이런 의혹이 있었음에도 선거는 정당화되었다. 부실이 있긴 했지만 총체적인 부실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후보 간의 득표차가 많이 났으니 괜찮다는 논리는 더 위험하다. 부실과 부정이 ‘있었느냐 없었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그 정도를 따지는 것은 부차적인 일이다. 우리는 지난 총선 이후 통합진보당에서 벌어진 부정선거 사태를 기억한다. 그 당시에 우리 사회가 주목했던 것은 부실과 부정의 정도가 얼마나 크냐가 아니었다. 부실과 부정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투표 자체의 신뢰도를 의심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이 통합진보당 경선과 중앙대 총학생회 선거에서 ‘신뢰도의 문제’를 따지는 방식은 너무도 달라 보인다.

이미 지나간 선거이고, 유효로 확정된 선거를 이제 와서 무효화하고 엎어버리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올해의 문제가 내년에 더 크게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안이한 중선관위의 선거관리와 대응, 업체 측의 임의 수정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이런 논의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임기를 마친 대표자들은 이제 한 명의 유권자로 돌아갔다. 그들의 책임은 이제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공중으로 흩어진 부실의 조각들은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는데 말이다.

전자투표는 투표소에 상관없이 어디서나 투표할 수 있기 때문에 전체 투표율을 올리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우리 학교처럼 본인확인부터 투표까지 모두 전자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국가에서도 선거에 전자투표를 도입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효율적인만큼 만일의 부정에 의해 전체 투표가 정당성을 잃어버릴 위험성도 크다. 서버에 데이터로 기록되는 방식이니 만큼 쉽게 수정이 가능하고 쉽게 열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투표에서 비밀이 보장되지 않을 위험은 오히려 종이투표보다 더 크다. 따라서 본인확인은 종이로 하고 투표한 학생의 서명을 반드시 받는 등의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 선거과정에서 의혹이 없었다 하더라도 개표 후에 전체 로그를 반드시 공개해야한다는 세칙 마련도 필요하다.

자치를 대행해드립니다

선거는 학생자치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다. 이를 주관하고 관리하는 것 역시 학생자치의 필수적인 요소다. 이처럼 중대한 일이므로 전년도에 학생들의 지지를 받은 대표자들이 중선관위를 맡게 되는 것이다. 중선관위는 선거운동 기간뿐만 아니라 투표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공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총학생회 선거에서 투표 과정은 모두 업체의 몫으로 돌리고 중선관위는 그 책임을 피한 것처럼 보인다.   내년 선관위는 올해 발생한 사태들을 충분히 숙지하고 방지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전자투표 시스템 자체에 대한 통제방안을 미리 모색할 필요가 있다. 전자투표는 투표 준비부터 개표까지 모든 과정이 업체에 맡겨져 있다. 투표과정의 투명성과 객관성을 담보한다는 명분으로 중선관위가 통제의 손을 놓아버린 것이다.

어떤 업체를 선정해서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는 무척 중요하다. 당연히 올해 문제를 일으킨 업체를 내년에도 똑같이 선정해서는 안 된다. 학생지원처가 업체를 선정하는 현재 관행을 개선하고 학생들의 대표인 중선관위가 직접 업체를 선택하고 계약을 맺을 필요가 있다.

우리는 점점 아주 중요한 것들을 전문가에게 맡겨두는 것에 익숙해진다. 학교 회계는 학교 본부의 직원에게 맡기고, 학교 구조조정은 전문 컨설팅 회사에 맡기고, 학내 청소와 방호는 용역 업체에게 맡긴다. 그러니 투표 또한 업체에 맡겨서 안 될 이유가 없는 것처럼 보일만 하다. 그러나 선거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그것은 결국 학생들이 직접 해결해야 할 문제다. 누가 대신 판단해주고 결정해주는 동안 우리는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학생자치는 누군가 대신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학생자치’가 아니라 ‘학생통치’가 될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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