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읽기] 독일사회의 ‘헌법적 감수성’과 한국사회의 ‘안철수 현상’


| 최동민

 한국은 최근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과거사 발언으로 요란한 듯하다. 국가의 헌법을 파괴하고 유린한 5.16 군사반란과 유신독재 그리고 사법부의 최종판결을 통해 불법성이 확증된 인혁당 사건에 관해 “역사의 판단” 운운하는 모습에서 필자도 분노했고, 이러한 사건이 소위 ‘논란’이 되는 현실에 씁쓸했다. 이곳 독일에서는 적어도 ‘헌법적 가치’가 좌와 우, 보수와 진보를 넘어 시민 모두가 존중하는 공동의 가치로 존재하며, 이를 부정하는 대중정치인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독일에서도 헌법의 세부적 조항을 해석하고 개정하는 과정에서 보수와 진보의 입장이 갈리며, 이에 따라 정치적 진영이 구축된다. 그러나 독일에서 헌법 파괴행위는 이유를 막론하고 정당성 논란의 대상이 아니다. 헌법에 대한 존중은 나치를 경험한 전후 독일 사회에서 모든 국민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적 기준이기 때문이다.

헌법적 감수성과 반공적 감수성

박근혜 후보의 발언은 우리 사회가 반헌법적 발언에 대해 여전히 얼마나 관대한지를 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다. 물론 우리사회의 이러한 관대함이 비단 역사의 영역에 한정된 것도 아니다. 이는 강력범죄에 대한 대응을 놓고 최근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논쟁에서도 확인된다. 단적인 예로 성폭력이 사회적 문제가 되자 새누리당의 모의원은 대책으로 -공식석상에서- 물리적 거세 운운하며 ‘고환을 잘라버리자’라고 주장하였으며, 조선일보는 피의사실이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강력범죄자의 신원을 함부로 공개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사진을 내보내 편집장이 경질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이 모든 사건들은 우리 사회의 ‘헌법적 감수성’이 얼마나 둔감한지를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사건들이다.

이와 반대로 우리사회가 대단히 민감한 감수성을 지닌 부분도 있다. 바로 북한 관련 사안이다. 헌법적 가치가 유린되는 것에 침묵 혹은 묵인하는 국민들도 북한에 관련된 발언에 대해서는 사춘기 소녀의 민감한 ‘감수성’을 드러낸다. 남북평화촉구와 같은 상식적인 발언에 대해서도 ‘친북’, ‘종북’ 등의 딱지붙이기는 기본이고 간첩 빨갱이 등의 인신공격을 가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를 통해 드러나는 사실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가장 부족한 정치적 감성이 바로 “헌법적 감수성”이며, 가장 풍부한 감성은 “반공적 감수성”이라는 현실이다.

한국 현대사에는 이승만 선거조작 및 독재 그리고 박정희, 전두환의 쿠데타 등 헌정 유린의 아픈 흉터가 깊이 아로새겨져 있다. 그리고 이 흉터는 비단 역사적 기억뿐 만 아니라, 현대사를 살아온 동시대 우리 국민들의 의식 및 감성의 (분할)구조 속에도 깊이 각인되어 있다. 반공을 기치로 한 국가주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국가권력이 헌법을 유린하는 것은 기본이요,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일상이었기에, 우리 국민들 의식 속에는 ‘헌법적 감수성’보다는 ‘반공적 감수성’이 더욱 중요한 정치적 기준으로 각인되어 있다. 나아가 국가폭력 -최근에는 자본의 폭력-이 개인의 헌법적 권리를 침해하는 일에도 무척이나 관대하다. 이는 반공을 내세운 군사정권이 헌법을 부정하고 탈취한 자신들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수 십 년간의 선전선동을 통해 만들어낸 왜곡된 의식구조의 단면일 것이다.

‘상식’의 정치에 기대한다

물론 우리사회는 많은 진전을 경험했다. 87년 민주화항쟁을 통해 군사독재를 종식시킨 이후 지난 30여 년간 피나는 노력을 통해 제도적 민주주의를 구축했고, 헌법질서를 유린한 과거사를 정리하는 일에도 얼마간 성공했다. 또한 한국전쟁에 대한 기억도 칠십 여년의 세월 동안 흐려지고 탈이데올로기 세대의 등장으로 한국사회의 ‘반공적 감수성’의 민감성도 다소간 약화되었다. 요컨대 전쟁세대와 산업화세대를 거쳐 우리사회의 정치공간을 지배해온 키워드가 ‘반공’이었다면, 반공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나 ‘탈정치화’된 최근의 젊은 세대에게는 점차 ‘상식’이 중요한 키워드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안철수 교수가 “상식”과 “선의”를 무기로 내세워 정치적 지지를 얻는 데에는 이념논쟁을 넘어서는 ‘상식’의 정치에 대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유권자들의 바람이 적잖이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상식적인 사람’ 안철수에 대한 열광은 분명 ‘탈정치화’된 유권자들의 바람이 현실화된 정치적 현상이다. 우리가 이 현상에서 주목해야할 지점은 좋건 싫건 우리사회가 ‘이념’에서 ‘상식’의 프레임으로 이행하고 있으며, 안철수식 상식의 중심에는 많건 적건 그의 건강한 헌법적 감수성이 놓여 있다는 점이다. 물론 상식만으로 결코 사회적 모순을 개혁적으로 변혁시킬 수 없을 것이며, 이는 안철수 현상의 명백한 한계이다. 하지만 올바른 상식과 시민들의 건강한 “헌법적 감수성”이 부재한 사회에서는 진보정치의 밑그림이 그려질 백지(tabla rasa)조차 마련될 수 없다. 헌법에 근거한 합리적 공론장 위에서 작동하는 독일 사회를 바라보면서 안철수 현상에 주목하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