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자고!


| 단야

  술이 문제다. 연일 술과 관련된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는 언론보도를 접하고 보니 술이 문제인 것이 확실하다. 그래서 경찰은 이름도 생소한 ‘주폭’을 척결하자며 캠페인을 벌이고, 보건복지부는 대학 내 음주금지 법안을 냈다. 그런데 술이 문제라면 술을 금지하면 될 것이다. 1920년대의 미국처럼 말이다. 하지만 술의 제조·판매를 금지하지 않는 것을 보니 술 자체는 무죄인 모양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술을 마시는 사람인가.

문제는 사회다. 사람들이 술을 많이 마시는 것도, 이 때문에 사건·사고가 발생하는 것도, 그리고 이 모든 문제를 법적으로 규제하려 드는 것도 모두 사회의 문제다. 사람들이 술을 ‘많이’ 마신다는 것은 술을 마실 일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사회적 안전망이 해체되는 만큼 사람들의 삶은 불안정해진다. 취업문은 좁아지는 동시에 비정규직은 늘어난다. 서울의 주택보급률은 100%를 웃돌지만 본인 소유의 작은 방 한 칸 가지지 못한 이들은 무수히 많다. 하늘 높은 줄 모르던 대학 등록금은 쥐꼬리만큼 인하되었고 장학금은 대폭 삭감되었다. 사회가 술을 권하는 것이다.

경찰이나 보건복지부는 캠페인과 법안의 주요한 근거로 술과 관련된 사건·사고를 내세운다. 이 같은 사건·사고는 일차적으로 당사자에게 그 책임이 있다. 하지만 이를 오직 당사자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흐리는 일이다. 사회의 불안정 수준과 구성원들의 불안이나 분노의 크기는 정비례한다. 이때 술은 사람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모르핀’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이나 분노의 진정한 원인이 사회에 있음에도 그것을 해결할 공적인 통로가 전무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주요 정당들은 자신들이 누구를 대표하는지, 어떤 이념과 정책을 가지고 있는지 경쟁하기보다는 자신들이 얼마나 깨끗하며, 상대정당은 얼마나 부패했는지를 선전하기에 여념이 없다. 실제로 그들은 정책적으로는 거의 유사하며, 따라서 차이점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회적 문제를 공적으로 해결할 통로로서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때, 사람들의 불안이나 분노는 자기파괴 혹은 타자에 대한 폭력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술의 역할이란 이성을 마비시켜 겨우 그 가능성을 높여주는 정도일 것이다.

이는 하나의 연쇄이다. 경찰의 캠페인이나 보건복지부의 법안은 개인에 대한 통제를 강화함으로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는 충분한 해결책이 되지 못할 뿐더러 문제를 확대재생산할 것이라는 점에서 위험하기까지 하다. 학교가 아니어도 사람들은 술을 마실 것이며 경찰의 통제가 강화된 만큼 술과 관련된 사건·사고는 음성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시 통제의 수준을 높이고, 감시의 범위를 넓힐 것인가. 이는 1984의 재현에 다름 아닐 것이다.

결국 이 연쇄를 끊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원인, 즉 사회의 제 문제를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웃자란 나무 몇 그루를 자르는 것이 아니라, 숲 전체를 가꾸는 것이다. 잘못을 개인에게 전가함으로써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무리들의 기만적인 시도는 어쩌면 후에 1920년대 공황을 앞둔 미국의 금주령처럼 무의미한 발악으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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