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의 멘붕스쿨] 스무살의 멘탈붕괴

| 짱큰콩

  새내기의 2학기가 시작되었다. 1학기 때는 학교에서 짜 준 시간표를 받았지만 2학기 때는 내가 시간표를 짤 수 있다고 한다. 왠지 이제야 ‘획일성을 강요하는 교육현장’을 벗어난 진짜 대학생활이 시작된 것만 같다. 들뜬 마음으로 수강신청 방법 공지가 뜨기를 기다렸다. 원하는 강의를 장바구니에 담아두라고 한다. 마치 동네 할인마트에서 물건 사는 느낌이다. 내가 살 수 있는(?) 강의들이 뭐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생각보다 많은 강의가 있지는 않았다. 교양강의 축소의 현실이 와 닿았다. 필수 전공과목 두 개를 담았다. 이제는 내가 진심으로 듣고 싶은 강의들을 들을 수 있다! 신중히 하나를 택했다. 그리고 또 하나를 택했다. 끝났다. 끝났단다. 응? 나에게 남아있던 신청가능 학점은 6학점. 필수교양 하나, 선택 교양 하나, 단 두 개였다. 신청하기도 전에 이미 떡하니 시간표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저 말로만 듣던 ‘회계와 사회’가 원망스럽다. 내가 선택한 강의 수보다, 드랍도 못시킨다는 배달된 강의가 더 많다. 착잡한 심정이다.

학기는 시작 되었고, 그 강요된 풍경 속에 놓인 나의 입에선 절로 한숨이 나왔다. 옆에서도, 그 옆에서도 한숨소리가 나왔다. 교수님은 저 앞에서 홀로 강의를 하고 계시는데, 어째 맨 뒷자리 구석에 앉은 나에게 동기들의 얼굴이 더 잘 보였다. 일 년 전에도, 지금도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나에게는 내가 필요한 교육을 택할 능력이 모자란 것일까. 나는 지금 대학을 다니고 있는 게 맞는 것일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나는 이 대학의 학생이 맞는 것일까? 그런데 따지고 보니, 나는 자유롭게 강의를 선택하고 공부하는 것이 아니었다. 익히 배워 온 학생의 정의대로, 학교의 주인으로서, 정치적 주체로서 역할을 하려 했지만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생각했던 대학생도 아니었다. 그럼 난 뭐지? 멘붕이다. 스무 살, 또 다시 자아 정체성의 혼란을 다시 겪을 줄이야……. 고민해보았다. 한 가지 그럴싸한 답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나는 소비자인가?! 선불로 돈을 지불했고, 그렇게 해서 생긴 신청학점이라는 사이버 머니로 장바구니에 상품(?)을 담았고, 경쟁률만 잘 뚫는다면 교환도 할 수 있다 하고, 민원센터도 마련되어 있다 하고. 무엇보다, 기업처럼 운영되고 있는 이 학교 최고 높으신 분은 나를 ‘교육 서비스를 제공받는’ 손님으로 대접해주고 있다. 어느새 학교는 일종의 대형 할인마트의 모습으로 바뀐다. 몇 가지 정황을 살펴보니, 그래, 그럼 나는 소비자인가보다.

나는 소비자다. 여태 반 년 간 나는 소비활동을 해온 것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거 영 억울하다. 내가 소비자라고 한다면 적어도 상품을 사기 이전, 그러니까 등록금을 지불하기 이전, 충분히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최소한의 ‘약관’이라도 받아보고 동의할 권리가 있어야 했다. 혹은 이 자본주의 시장에서, ‘상품 선택의 자유’라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했다. 내가 소비자라면 말이다. 그래서 진짜 내가 소비자가 맞는지, 그러하다면 침해당한 상품 선택의 권리에 대해 보상받을 수 있는지, 한국 소비자원에 답답한 마음을 토로해 보았다.

“안녕하십니까. 한국 소비자원입니다. 올려주신 상담내용은 잘 읽어보았습니다. (중략) 학점을 취득하기 위해 필수로 수강해야 하는 강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임의로 수강생에게 선택을 요구하는(장바구니에 담아 놓는 등) 행위 및 사전에 공지 없이 강의를 축소한 행위에 대해서는 이의제기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되나, 본원은 피해보상 합의권고 기관이지 행정기관이 아니므로 이에 대한 시정조치를 요구할 권한이 없는 바, 해당 문의에 대해서는 <교육과학 기술부>로 문의해주시기 바랍니다.”

한마디로, “학생의 겪었다는 그 어려움은 참 안타까우나, 현재 중앙대학교의 ‘학칙’에 정해진 바에 따라 대학에서 하는 교육의 문제이므로 이것은 강매(강권에 못 이겨 남의 물건을 억지로 삼)가 성립되지 않습니다.”라는 답변이었다. 또 다시 멘붕이다. 그렇다면 나는 소비자가 아니다. 학생이 아닌 것 같아 소비자라고 생각하기로 했는데…. 내가 한 행위는 소비가 아니고, 내가 산 강의는 물건이 아니었다. 나는 이곳에 불만이 생기고 문제가 있을 때, 소비자 기본법보다는 학칙에 따르고 ‘교육과학기술부’에 문의를 해야 하는 ‘학생’이었다. 아니 상담원 선생 이건 또 무슨 말씀이란 말이오. 이제 겨우 나의 정체성을 찾았나 싶었는데 또 다시 원점상태, 멘붕으로 돌아왔다. 나는 이렇게 주변인이 될 것인가. 학생의 권리를 요구할 땐 손님이자 소비자로, 소비자의 권리를 요구할 땐 또 다시 학생으로. 내 앞에 던져진 것은 그저 이사장님•총장님의 ‘지침’뿐인가 보다.

나는 이렇게 지금까지도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 팀플도 과제도 시험도 코앞으로 다가오지만, 난 누구인가, 난 지금 어디 있는가 부터가 해결이 안 되어 늘 멘붕에 빠져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장바구니도 여러 번 담다보면 연륜이 묻어나는 것일까. 나보다 한번이라도 더 장바구니를 담아 보았을 주위 선배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다. 그냥 괜찮은 것 같다. 내가 이상한 걸까. 소비자로서도 학생으로서도 불합리하게 느껴지는 이 상황에서, 나처럼 불만을 터뜨리지 않고는 못 베길 듯한데 말이다. 오늘 밤에도 생각해본다. 나는 과연 소비자인가 학생인가. 그렇다면 당신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소비자?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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