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악칙’도 ‘학칙’이다?


| 하이브리드

 최근 서강대학교가 ‘정치적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행사를 학내에서 열 수 없다’는 내부 방침에 따라 방송인 김제동씨의 토크콘서트 행사를 불허했다. 카이스트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총장 퇴진을 촉구하는 문화행사를 준비하던 학생들에게 학교가 불허 방침을 내 놓은 것이다. 카이스트는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허가하지 않은 행사를 진행할 경우 추후 학칙에 따른 절차를 밟을 수 있다.’며 엄포를 놓았다. 두 학교 모두 학교 측 방침의 근거는 ‘학칙’이었다.

이런 일은 이미 중앙대에서는 익숙한 것이다. 2010년 학교의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했던 학생들은 징계를 받고 학교를 떠나야 했다. 작년에는 학교 정문 잔디밭에서 ‘200인 중앙인 원탁회의’를 열었던 학생들이 학생상벌위원회에 출석요구를 받았다. 학교를 잠시 떠났던 징계학생들은 결국 돌아왔고 이제 학교는 평화롭다. 지나간 일은 이제 지나간 일일 뿐, 학교에서 역사는 쉽게 잊혀진다. 그러나 우리가 잊거나 말거나 역사는 우리 곁에 있다.

유신의 유산, 학칙의 위헌 조항

서강대와 카이스트, 그리고 중앙대에서 학생들의 집회의 자유를 억압했던 학칙 조항들은 사실 유신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조항들은 박근혜 후보가 사과를 하든 말든 여전히 안녕하시다. 박정희 정권은 유신을 선포한 후 ‘유신 철폐’를 외치는 학생들을 탄압하기 위해 학도호국단을 만들었다. 이후 대학에서 학생들의 자치활동은 불가능했고, 학생들은 대학의 운영과 결정에 전혀 참여할 수 없었다.

박정희 정권 몰락 이후 전두환 정권은 학생들과 시민들의 격렬한 반발에 학원자율화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85년, 학도호국단은 폐지되었다. 그러나 당시 문교부는 학도호국단을 폐지하고 학생회를 부활시키는 대신 몇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학생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학생지도위원회를 설치하며 학생 대표가 교수회의에 참석할 수 없다는 등의 항목을 반드시 학생회칙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부활한 학생회는 반쪽짜리 학생회일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에게는 표현의 자유와 평등한 피선거권이 보장되지 않았으며, 학생회는 여전히 학교의 지도를 받아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 또한 학교 운영에 직접 참여할 수 없는 절름발이 주체로 남아야했다.

이후 87년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 구성원에게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권리가 아주 당연한 것으로 보장되면서 유신의 유산인 학칙은 사실상 사문화되었다. 80년대 후반 이후 비로소 학생들은 학교의 주체가 될 수 있었으며 스스로의 권리를 주장하고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2010년, 군사 정권이 학원 통제를 위해 30~40년 전에 만들었던 학칙이 이곳에서 부활했다.

중앙대에 남아 있는 유신의 흔적

최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정진후 의원은 전국 4년제 180개 대학 학칙을 분석한 정책 자료집을 발간했다. 이에 따르면 여전히 학도호국단 시절의 학칙이 남아 있는 학교가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중앙대학교도 예외는 아니었다. 중앙대 학칙을 살펴보면 제 5절 65조 2항은 “학생단체 또는 학생의 모든 정기, 부정기 간행물은 지도교수의 추천과 총장의 승인을 받아 발행하며 간행물의 편집을 위하여 지도교수를 둘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또한 65조 1항에서 “교내광고, 인쇄물의 부착 또는 배부”를 사전 신고하게 되어 있는데, 학생홍보물게시에 관한 시행규칙 제 7조 1항을 보면 “허가를 받고 게시한 홍보물을 고의로 훼손한 학생이나, 허가 받지 아니하고 무단으로 홍보물을 게시한 학생은 학칙에 의거 징계한다.”고 되어 있다. 세부적인 규칙을 보면 사실상 게시물에 대한 사전 허가제를 실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학생들의 정치적 표현 행위나 자치적 언론활동을 위해서는 ‘승인’을 받아야 하므로 학칙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학칙은 위헌의 소지가 있고 학생 자치를 위축시킬 위험이 크다.

또 다른 문제는 포괄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학칙을 학교가 운용과정에서 자의적으로 활용하곤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지난 원탁회의의 경우 집회 사전신고를 하려 했으나 학생지원처에서 신고를 받아주지 않았고, 결국 “미허가 집회”라는 이유로 징계에 회부될 뻔 했었다. 또한 학생상벌에 관한 시행 세칙 제 5조를 살펴보면 제 1항에서 “학생신분을 벗어난 행위를 하여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킨 자”를 징계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학생 신분을 벗어난 행위가 어떤 행위인지,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이 어떤 행위인지는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이런 모호한 규정들은 대개 학교 측의 자의적 해석에 따라 학생 자치를 억압하기 위한 근거로 활용되곤 한다.

대학 당국은 ‘학생은 학교운영에 관여할 수 없으며, 학내 학생활동은 철저하게 학교 당국의 통제 안에서 하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그리고 이를 관철하는 수단이 바로 학칙이다. 학칙을 엄격하게 적용하겠다는 것은 결국 대학을 독단적으로 운영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군사 정권이 남겨 놓은 유산이 이제 학교 당국에게 자의적 집행과 학생 자치활동 탄압의 근거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악칙’을 벗어나기 위하여

문제가 있는 학칙은 반드시 개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재로선 학생들에게 그럴 권리가 없다. 학칙 개정안은 각 부서장만이 제출할 수 있으며, 그 최종적인 승인은 오직 이사회에 달려 있다. 따라서 학교 측이 언제든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위헌적 학칙이 개정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우리에게 보장된 헌법적 권리를 위해, 학교 안에서 우리가 학교 운영의 주체가 되기 위해 학칙개정운동이 반드시 필요하다. 실제로 숙명여대에서는 2010년 학칙개정운동이 일어나 비민주적인 학칙을 개정하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학생들에게 강제되는 위헌적 규칙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고칠 수 없게 되어 있는, 지금의 학칙은 ‘악칙’이다. ‘악칙’도 ‘학칙’이니 언제까지고 따라야 할 것인가? 아니면 나의 기본권을 보장해줄 수 있는 제대로 된 ‘학칙’을 가지기 위한 행동에 나설 것인가? 학생 자치를 위협하는 학칙이 아니라 학생자치를 더욱 장려하는 학칙을 상상해보자. 누구나 자유롭게 공공의 공간에서 발언하고, 두려움 없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학은 가능하다. 유신시대는 지나갔다. 우리는 더 이상 학교 본부의 독재를 두려워하거나 용인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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