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의 멘붕스쿨] 리얼리스트를 위한 변명

gogumi

 

 

대학에 합격하고 기쁨을 누리고 있던 당시, 나의 대학합격 소식에 어른들은 저마다 조언 아닌 조언을 한마디씩 했다. “대학가서 놀 생각하지 마라. 학점은 1학년 때부터 관리해라. 어학점수도 미리 따놓고, 어설프게 집회 같은 데 다닐 거면 그 시간에 영어단어를 하나 더 외워라.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말고 네 실속을 챙겨라이상했다. 대학 가면 자유롭다며! 대학가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하고 싶은 공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걸 해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한다더니! 그런 말을 믿으며 지난 3년간 자고 싶은 거 참고,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버텼는데! 대학 와서도 공부, 공부, 스펙, 스펙, 취업, 취업이라고? 내 기대와는 달리 대학은 고등학교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보였다. 또다시 나의 밝고 희망찬 미래를 위해 조금만 더 고생하라고 한다. 이렇게 계속 불투명한 미래를 위해 현실을 투자하는 것이 끝날 수 있는 일일까? 계속 반복되는 변명인 것 같다. 내가 이런 의문을 가지는 것을 어른들은 아직 세상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게 정말 우리들의 현실일까? 나의 주체적인 선택이 아닌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한 삶. 나도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야 할까. 미래를 위한다는 말로 현실을 외면하는 게 현실적인 것일까 의문이 생겼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현실적이라는 건 무엇일까? 높은 학점, 토익·토플점수, 자격증, 공모전, 어학연수, 인턴경력 등 흔히 말하는 대기업 취직을 위한 조건들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고 3학생 중 90%가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생 54만 명 중에 4만 명, 단 7.4%만이 대기업에 정규직으로 취직한다고 한다. 정말 극소수다. 하지만 왜 다들 같은 길, 그 좁은 길을 향해 가는 걸까? 나는 이것이야말로 비현실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무엇이 현실적인 것일까 고민을 하던 중, 우연히 SNS에서 글 하나를 읽게 되었다.

“인간의 존엄을 버리지 않고 인간다운 대접을 요구하며 싸우는 것이 바보인가? 노예로서의 고통과 굴욕으로 가득 차 지루한 나날을, 아무런 의의도 보람도 기쁨도 없는 껍데기의 삶을 애걸하며 비루하게 살아가는 것이 바보인가? 오늘의 현실이 절대로 변화할 수 없는 영구불변한 현실이라는 미신에 사로잡혀 있는 ‘약은’자들이 참된 현실주의자는 아니다. 체념하고 굴종하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일 수 는 없다. 사막 한 겨울 벌판의 나무둥치 속에서 내일 화사하게 피어날 꽃잎을 바라보고 오늘의 꿈이 내일의 현실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고난의 길을 딛고 일어서는 사람이야말로 참된 현실주의자이다.”

전태일 평전에 나온 글이라고 했다. 전태일, 그는 6, 70년대 노동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며 현실을 바꾸기 위해 자기 몸을 내던졌다. 전태일의 분신은 당시 노동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내었고, 노동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상황은 바꿀 수 없는 고정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고정되어 영구불변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과거엔 너무나 당연했던 일이 지금은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여성의 참정권이다. 우리는 지금 여성의 정치참여를 당연한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100년 전의 여성은 투표를 할 수 없었고, 정치참여보다는 집안일이나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만약 지금 여성들에게 투표권을 뺏어가고 정치참여를 금한다면 순응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 현실은 바뀔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 대부분은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투쟁의 역사를 통해 쟁취한 것들이다. 한국의 경우도 생각해보자. 지금은 우리가 직접 대통령을 뽑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불과 25년 전에는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독재정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졌고, 민주화를 열망했다. 그래서 6월 항쟁이 있었고, 이를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할 수 있었다. 학생총회에 다녀왔다. 불가능할 것이라고 여겨졌던 학생총회가 7년 만에 성사되었다. 학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낀 사람이 늘어나고, 바꾸고자 하니 2000명의 의혈 학우들이 한 곳으로 모였다. 다함께 구호를 외치고, 투표를 했고, 우리의 이야기를 전했다. 대학의 정치적인 것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현실의 모습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혼자 이런 고민을 하며 너무 답답했다. 혼자 고민하기엔 복잡했고,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누군가와 이런 고민을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난 이 글을 쓰고 있다. 어른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현실을 우리에게 강요한다. 하지만 그들의 현실이 우리의 현실은 아니지 않은가! 나는 대학을 나와 안정된 직업을 얻는 것을 성공이라고 말하는 그들의 현실을 비현실이라고 말하고 싶다. 남에게 뒤처지지 않는 것이 삶의 유일한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현실은 바뀌기 마련이고, 바뀔 수 있다. 지금의 현실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누군가가 분명 있을 것이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도 있을 것이다. 과거의 현실이 현재의 비현실이 되고, 오늘의 비현실이 미래의 현실이 될 수 있다. 오늘의 꿈이 내일의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우리 함께 고민해보자!

| 고구미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