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읽기] 분데스리가는 ‘종북리그’?

고단한 노동에 지친 많은 사람들에게 프로스포츠는 일상으로부터의 달콤한 일탈이자 위안이다. 증가하는 비정규직 비율과 계속되는 경제불황에도 한국 프로스포츠의 인기가 사그라들기는커녕 오히려 증가하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우리에게 익히 축구와 맥주의 나라로 알려진 독일에서도 프로스포츠의 인기는 대단하다. 특히 프로축구 리그인 분데스리가는 지난해 1800만 명의 유로입장객을 기록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1800만 명의 입장관객수와 경기 당44,000명의 평균관객 수는 유럽 전체에서도 으뜸이다. 우리에게는 조금은 낯선 분데스리가가 독일 국민들에게 이처럼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프로축구: 시장인가, 공공인가?

독일 프로축구와 영국 프로축구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답을 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바로 입장권 요금이다. 주위에 영국에 여행을 가 프리미어리그를 관람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입장권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상은 리그 총관객 수와 관객 수입에서도 분명히 입증된다. 2007/8년 리그 기준으로 독일리그의 평균관객수는 39000명이었고 평균 티켓가격은 25유로(36,600원)였던 반면, 영국리그의 평균관객수 36000명이었고 평균 티켓가격은 두 배에 가까운 42유로(61,500원)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가격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사진 : 도르트문트 구단 주식

사진 : 도르트문트 구단 주식

해답은 시장화에 있다. 일찍이 구단을 주식회사로 만든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주식회사 FC는 구단주 및 주주들의 “최대 이윤추구”라는 목표에 따라 운영된다. 이와 달리 대부분의 독일 프로구단들은 수출입을 관리감독하기 위해 주식회사의 “영업관리기구(Aufsichsrat)”를 부분적으로 도입한 ‘협회’로 운영되고 있다. 투기적 자본이 급작스레 구단을 인수해서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단기적 성과가 나지 않으면 감독을 마음대로 갈아치우는 일은 이제 영국에서 얼마간 일상이 되었지만, 협회원 총회와 이사회를 통해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독일 구단들에서는 이러한 ‘자본’의 전횡을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이 같은 독일 모델에 저항하여 구단을 주식회사로 전환, 주식을 발행한 구단도 있었다. 지난 이 년 연속으로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한 전통의 강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는 지난 2000년에 한 주당 11유로(약 16,100원)의 가격으로 13,500,000유로(약 197억원)의 주식을 발행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불과 1년 만에 1유로(약 1460원)가치의 휴지조각으로 전락해 버리고 구단은 오랜 침체기를 겪어야 했던 것이다. 이후 독일 구단들은 영국과 같이 전면적으로 시장화하는 방식보다는, 공공적이고 투명하면서도 불필요한 지출을 줄임으로써 수익을 최대화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게 되었다. 덕분에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절반도 안 되는 총수익(이는 프리미어리그의 엄청난 TV중계권료 때문)에도 불구하고 , 수익률 자체는 프리미어리그보다 뛰어날 뿐만 아니라 1부 리그의 18개 구단 중 적자를 내는 구단은 단 하나도 없을 정도로 튼실한 구조를 가지게 된 것이다.

선수도 노동자?

독일분데스리가 일정표를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 연말인 12월 중순부터 1월 말까지 6주 동안 경기가 없기 때문이다. 여타의 유럽리그에서는 길어야 2주뿐인 겨울휴식기(Winterpause)가 독일에서 이처럼 시행된 배경은 무엇일까? 사실 크리스마스부터 신년에 이르기까지 휴일이 연속되는 이 기간은 사업적 관점에서 보면, 소위 ‘대목’이다. 때문에 영국리그에서는 이 기간에 가장 촘촘하게 경기 일정이 배치되어 많은 관객들이 경기장을 찾는다. 오죽하면 독일에서는 한 주에 팀당 2경기 이상 배정되는 기간을 ‘영국주간(die englische Woche)’이라고 부른다. 사실 독일리그도 1985년까지는 겨울휴식기가 없었는데, 1986년 독일 프로축구선수협회(VDV)가 출범하면서 사정은 급격히 변화하게 된다. 이 기간은 추운 날씨로 인해 부상위험이 높을 뿐만 아니라, 한 명의 인간이자 노동자로써 가족들과 명절을 보내고자 했던 선수들의 요구가 관철되어 겨울휴지기가 도입된 것이다. 

사실상 노조인 프로축구선수협회가 출범한 이후로 독일 선수들의 권익은 눈부시게 향상되었다. 독일축구협회(DFB)와 독일프로축구협회(DFL)의 의사결정 과정에 선수대표가 참여할 수 있는 공동결정권(Mitbestimmungsrecht)를 얻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리그가 행정가와 자본의 논리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운영되는 것을 막을 수 있게 되었다. 보다 많은 수익을 바라는 리그운영진과 투자자들은 리그개편 (18개 팀에서 20개 팀으로 리그 확장)과 이에 따른 겨울휴지기 폐지를 지속적으로 요구, 압박해왔다. 예컨대 독일의 명문팀 바이에른 뮌헨의 회장 프란츠 베켄바우어는 겨울휴지기는 ‘호사(Luxus)’이며, 유럽 5대 리그 중 “18개 팀으로 운영되는 리그는 없다”며 계속적인 비판을 가하고 있지만, 선수들의 동의가 없는 한 겨울휴지기가 폐지될 것 같지는 않다.

지난 해에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뜨거운 이슈가 된 ‘노동자 공동결정권’은 ‘노동자 선수’ 들의 노력으로 분데스리가에 이처럼 굳건히 뿌리박혀 있다. 한국보수의 시각에서 보면 완전히 ‘종북리그’인 셈이다.

세계경제위기를 맞아 전세계 프로축구리그가 흔들리는 가운데, 분데스리가가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은 시장화뿐만 아니라 공공성을 중시하고, 자본의 논리뿐 아니라 노동자의 요구가 민주적으로 반영되는 분데리스가만의 독특한 시스템 덕분이다.

| 최동민
dmchoi0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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