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육담] ‘이것은 사적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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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사적인 이야기다’

| 문계린

2012년 여름, 피임약의 의약품 분류에 대격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일반의약품이던 사전피임약이 전문의약품으로, 전문의약품이던 사후피임약이 일반의약품으로 바뀔 거란 얘기였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6월 7일, 이제까지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던 사전피임약을 전문의약품으로 재분류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였다. 사전피임약 11종 모두를 의사의 처방 하에만 구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호르몬 함유량이 훨씬 높고 피임률도 복용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낮아지는 사후피임제만 의사의 처방 없이 구매할 수 있는 방침이어서 각계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나 또한 그 불만에 동참한 사람 중 하나였다. 여성이 남성과 엮이는 성애의 역사에서 여성 스스로 임신 여부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엄청난 혁신이었다. 콘돔은 12세기부터 남성용 피임기구였다. 양의 내장을 손질해 만든 초기 콘돔은 전적으로 남성의 선택에 사용 여부가 갈렸다. 여성이 자신의 생식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은 예수 탄생 이후 이천 년만의 기적이었다. 피임약의 발명으로 드디어 여성은 성애의 대가를 통제하게 된 것이다.

헌데 그 ‘불만’에 대해 찾다 보니 기묘한 심정이 되었다. 남한의 사전피임약 복용률은 1할도 안 됐다. 최저 1퍼센트에서 최대 2.5퍼센트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나는 그 사이에 속한 사람으로서 여성 보편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해 말하고 있던 것이다. 2퍼센트의 일원으로서 2퍼센트의 권리만을.

냉소적 인식은 금방 사그라졌다. 당장의 일이 급했기 때문이다. 다급하게 서명을 조직했다. 공개토론회에 참석한 적도 있었다.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나왔다. 그곳에서 배부한 자료집은 아직도 유용하게 쓰고 있다. 하지만 2.5퍼센트의 벽은 높았다. 우리는 2.5퍼센트였다. 자신이 임신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통제할 수 있는지 없는지 휘두를 수 있는 이는 2.5퍼센트였다.
지극한 소수의 벽을 느끼게 되는 순간은 순식간에 닥친다. 10년 전쯤, 영미권 성교육 서적이 잔뜩 번역된 때가 있었다. 각종 문화 개방과 자유주의적 성애관의 기초 위에 쌓인 일이었다. 성폭력 피해자는 영원히 성폭력 피해 경험의 악몽에 얽매이다 이윽고 성매매 시장에 뛰어들거나 성애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서사가 자연스럽게 깔린 기존 성교육 시장의 공급과는 영판 달랐다. 여성형 유방이 성장할 때부터 월경에 대처하는 방법까지 모든 것이 있었다.

특히 피임 파트가 남달랐다. 콘돔부터 자궁경부 캡까지 모든 것이 있었다. 당장은 쓸모없지만 언젠가는 유용할 정보들로 가득했다. 개중에는 페미돔이 있었다. 페미돔이란 여성의 질을 비닐로 감싸는 형식의 피임도구다. 여성형 콘돔이라 할 수 있겠다. 외음부를 덮어서 콘돔으로는 막을 수 없는 유형의 성병까지 효율적으로 예방해주는 제품이다. 더불어 남성의 주도 없이, 여성이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시행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인 것이다.

이것의 존재를 알게 된 지 10년도 넘은 최근, 한 번 실물이라도 보고자 찾아보게 되었다. 그런데 판매처가 영 마땅치 않았다. 약국에도 보건소에도 병원에도 없었다. 까닭을 알아보니 2000년대 중후반에 반짝 수입되었다가 수요가 없어 수입이 중단되었다고 한다.

병원과의 통화를 마치고 나는 2.5퍼센트의 벽을 떠올렸다. 남성에게 피임을 맡기는 것이 보편적인 구조에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어떻게 작용하며 도대체 어떤 위상을 지니는가? 피임을 위해 콘돔만을 사용하는 이들이 지천인데, 보다 더 나은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자기결정권을 말하는 일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사적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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