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망경을 읽고] ‘전가의 보도’가 된 징계, 일상화된 자기검열

‘전가의 보도’가 된 징계, 일상화된 자기검열

| 흑석동 잉여인간

‘부총장님 단호하네, 단호박인줄ㅋㅋㅋㅋ’
인문사회계열 구조조정으로 학교가 떠들썩하던 얼마전 아침에 해방광장을 지나는데 캠퍼스 곳곳에 붙은 플래카드가 눈에 띄었다. 최근 들어 보기 힘든 하얀 천에 손으로 직접 쓴 투박한 글씨가, 깔끔하게 디자인된 각종 기업 관련 플래카드 사이에서 시야에 확 들어왔다. 그 와중에 유독 눈에 띄는 플래카드가 바로 저것이었다. 한창 많이 쓰이는 인터넷 개그로 비꼬는 내용이었는데 저걸 보자마자 든 생각은, ‘저 사람들, 징계 받지는 않을까?’

내가 대학에 갓 입학했던 몇 년 전의 학교는 지금보다 훨씬 시끄러웠다. 구조조정은 광범위한 속도전으로 진행됐고 자연스레 일부 학우들의 반발도 격렬해졌다. ‘특히 더’ 격렬한 반대를 한 몇몇의 학우는 상벌위원회를 알리는 <중대신문>과 자보에 이름이 올랐다. 문제가 있다고 느끼지만, 나서지 않고 관망하는 군중 속의 한 사람이었던 나에게 그들의 이야기는 멀리 떨어진 사건에 불과했다. 내 일도 아니고 내가 뭘 어쩌겠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와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았던 그 사람 중 한 명이 우연한 계기로 한 다리 건너서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학내 징계가 나와 멀리 떨어진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고, 단체의 이름으로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을 실감했던 때가. 징계 당사자의 고통은 한 다리를 건너 희석되어 전해졌지만, 나는 스스로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단체의 힘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나는 조금이라도 학교 입장에 반대되는 의견을 겉으로 표할 때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하고 있었다. 가끔씩 ‘중앙인’에 학교에 대한 불만을 썼다가도 너무 격한 표현을 사용하진 않았는지 다시 읽어보곤 했다. 기사에서 지적한 ‘전략적 봉쇄징계’가 의도한 바가 최소한 나에겐 잘 먹혀들었다.

조금 덜 예민하거나 학교에 크게 불만이 없는 사람들은 이러한 징계를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지금보다 좀 더 어렸던 시절의 나처럼, 자기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내 구성원이라면, 수많은 징계 사태를 목격한 학우들이라면, 학교 본부에 대항하면 안 된다는 자기검열이 마음속에 크든 작든 조금씩은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을 공론화할 필요가 있지만, 지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검열의 잣대에서 자유로워지길 꺼려하고, 긁어 부스럼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걸 구조조정이 다시 이루어지는 적절한 시점에 새롭게 일깨워준 독립저널 <잠망경> 6호의 기획기사는 아주 좋았다.

기사에서 말했듯이 학칙은 변호인을 동반할 권리나 재심 여부를 규정하지 않고, 징계 사유에 대한 모호한 조항은 학내 구성원들이 ‘스스로’ 조심하게 만든다. 어떤 행위를 했을 때 징계 대상이 될지 알 수 없으니 자유로운 발언을 자제하고 학교에 대한 비판을 삼간다. 학교 정책에 대해 비판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학교 명예를 실추’하는 행동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징계의 철퇴’는 멀리 있지 않으니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쯤에서 의문이 든다. 앞서 말한 단호박 플래카드가 인터넷에 올라간다면 이 역시 학교의 명예를 실추하는 일이 될까?

학교 측과 학생들의 갈등이 격화되는 요즘, 몇 년 전의 일이 데자뷰처럼 떠오른다. 학교가 또다시 징계의 칼날을 벼릴까 걱정된다. 학우들의 몇 안 되는 의사표현 수단인 플래카드까지 철저한 자기검열에 묶이지 않기를 바라며, 또 다른 징계가 반복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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