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우연을 가장한 필연적 마주침, 자치

우연을 가장한 필연적 마주침, 자치

지난 5월 23일 목요일 저녁, ‘생활도서관 네트워크’가 주최한 <생도 살롱; 자치를 말하다>에서는 ‘자치’를 키워드로 발제와 토론이 진행됐습니다. 고려대학교 생활도서관 박원익씨, 노리단 양기민씨, 씨앗들협동조합 이환희씨, 민달팽이 유니온 권지웅씨와 함께 ‘잠수함 토끼들’도 토론에 패널로 참석해 자치에 대한 다양한 고민을 나눴습니다. 자치에 대한 우리의 고민을 나누고자 발제문을 요약해 소개합니다. 

| 덕배

자치의 의미를 사전은 ‘저절로 다스려짐. 자기 일을 스스로 다스림’ 등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외부와 완전히 고립되어 존재하는 공동체를 상상하는 것은 무척 힘들다. 그런 점에서 자치는 필연적으로 공동체, 타자 그리고 외부와의 사회적 관계를 전제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이에 더하여 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 자치는 ‘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활동하면서도 즐겁고 유쾌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끈질기게 그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자치와 ‘타자’의 관계

외부에 대한 의존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자치의 목표가 ‘자족’일 수는 없다. 자치는 기본적으로 공동체의 범위를 넓히지 않고서는 지속되기 힘들다. 우리만의 자치, 우리만의 공동체를 추구하다보면 그 공간과 범위가 점차 협소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확장하고 움직이려는 시도, 즉 ‘확장성과 운동성’을 담보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그렇지 않은 자치는 ‘해프닝’으로 끝나기 십상이다.

대학문제에 이해당사자로서 개입하는 방식은 공동체를 현실적인 이득에 대한 계산에 몰두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보편성을 추구하려는 시도가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최근에 폭넓게 일어나는 ‘협동조합’이라는 시도에 대한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협동조합’은 자치의 조건을 만들어 내기에 무척 요긴한 형식이지만, 자칫 그 지향의 방점이 ‘협동’이 아니라 ‘조합’에 찍힐 경우 최초의 운동성을 상실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다스린다는 원칙 아래, 우리는 어디에서든 자치를 시작할 수 있다. 대학이라는 단일한 공간 안에서도 학생회냐, 동아리냐에 따라 자치의 조건은 달라진다. 대학 밖에서는 당연히 더욱 다양한 조건과 마주치게 된다. 결국 자치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공간의 특성을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한다. 공간의 특성을 고려하는 것은 자치의 범위 때문이다. 공간이 달라지면 범위가 달라진다. 그렇게 자치의 범위가 달라지면 공동체의 중심적인 지향과 가치를 세우는 과정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자유인문캠프는 종종 배후를 의심받기도 한다. 아무런 재생산의 조건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지속되고 있으며, 또 어떻게 역량을 쌓고 있느냐는 의심이다. 자유인문캠프는 대학 안에서 가장 열악한 물질적 토대 위에 서 있다. 하지만 자유인문캠프의 조건은 대학 바깥의 공동체보다는 훨씬 나은 편이다. 학생이기 때문에 대학 내의 일정한 공간(강의실, 세미나실 등)을 임시로 점유할 수 있고, 매년 새로운 구성원들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대학 밖에서는 공간 사용에 많은 예산이 소모된다.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도 어려움이 많다. 대학 안에서는 열악하지만, 그래도 시장에 내던져진 공동체와 비교하자면 손쉽게 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상황. 이것이 자유인문캠프가 놓인 물적 조건이다.

이렇듯 그 공동체가 놓인 공간의 특성만으로도 공동체의 성격과 지향이 결정된다. 현실적인 조건과 이념적 지향 사이에 괴리가 생기는 순간, 그 공동체의 지속성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즉, 각각의 자원에는 특정한 대가가 따른다는 말이다. 토대를 벗어난 상부구조가 존재할 수 없듯, 대학의 자원과 구성원을 동원하는 동시에 완전히 대학에서 벗어나는 운동이 불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동의 규범’ 만들기

앞의 논의를 전제로 ‘어떻게 일상적인 타자들을 공동체 내부로 끌어들일 것인가?’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자. 과연 그들과 함께 공동의 규범을 만들어내는 것은 가능할까? 자유인문캠프가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면서 깨달은 노하우가 몇 가지 있다.

첫째, 참여자 모두가 완전히 평등한 책임과 권리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다. 소규모 공동체라면 이것이 제한적으로나마 가능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범위를 넓혀가는 과정에서도 과연 모두가 동등하게 참여하여 동등한 위치에서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이 가능할까?

활동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나누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수강생과 참가자들은 자유인문캠프에 대해 전혀 소속감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중 누군가가 진행단으로 함께하기 원할 경우, 자유인문캠프는 언제나 그들을 반길 것이다. 하지만 기획단으로서 함께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문제는 ‘지속성’이다. 쉽게 들어왔다가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열린 멤버십으로는 기획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다. 현실적인 조건을 고려하는 동시에 이전의 시도들을 계승해야한다. 공동체의 생존 가능성을 높여 나가기 위함이다.

둘째, 지향만큼 중요한 것은 역량이다. 흔히 자치를 꿈꾸는 사람들이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자치도 실력이다. 자치할 역량이 없으면 누군가의 통치를 받게 되는 것은 역사가 보여주는 자명한 사실이다. 과연 우리 스스로가 우리를 다스릴 수 있는지 스스로의 역량 자체를 냉정하게 평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교육 운동’

그런 점에서 자유인문캠프가 이야기하는 ‘자기-교육’은 자치를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매번 기획 과정에서 다음 기획을 위한 교육이 이루어진다. 기획을 하면서 기획력을 키우는 것이다. 동시에 실무에 대한 교육도 이루어진다. 수강생 관리, 인쇄, 디자인, 강사 섭외, 슬로건 선정, 진행단 운영 등은 무척 사소해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실무 능력이 성장하지 않았을 때, 우리는 확보한 조건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개인의 역량은 곧 공동체의 역량이다. 개개인의 실력을 확보하는 것, 자치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지점이다.

기획단들은 각자 관심 분야와 욕망이 다르다. 공동체는 각각의 분야에서 개인의 역량을 키워갈 수 있도록 충분히 배려해야 한다. 공동체 안에서 스스로를 교육하며 느끼는 희열과 성취감은 곧 활동의 원동력이 된다. 자유인문캠프는 이러한 ‘자기-교육’을 통해서 개인의 해방과 공동체의 해방은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이념적 지향을 높은 수준으로 공유하지만, 소수 개인의 희생과 헌신만으로 공동체를 오래 유지하기란 무척 힘든 일이다. 오히려 최소한의 지향만을 공유하더라도 각각의 구성원이 끊임없이 고양되는 공동체가 훨씬 건강하지 않을까?

적극적 네트워킹을 시작하자

자유인문캠프는 지속성과 함께 확장성, 운동성을 고민한다. 앞에서 언급했듯 내부로 수렴하는 자치, 그 범위를 협소하게 만드는 공동체는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유인문캠프는 다른 활동, 단체와 더욱 적극적으로 교류하고자 노력한다. 이때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연대나 네트워킹이 자율과 자발성만으로 유지된다는 것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핵심은 일상적인 마주침과 조직화다. 얼마나 자주 만나고 얼마나 많이 이야기를 나누느냐가 네트워킹의 성패를 좌우한다. 실질적인 연대는 단순히 지향과 취지가 공유된다는 이유로 ‘언제든 원할 때 참여하라’며 논의의 테이블을 열어놓는 것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완전히 지향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극적, 수동적으로 네트워킹에 임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먼저 손을 건네는 행위다.

타 단체가 주최하는 행사에 객체로서 참여하는 것을 네트워킹이라 부를 수는 없다. 그러한 형태는 ‘마주침’은 있지만 ‘조직화’는 없는 셈이다. 연대는 서로 각자의 동원 가능한 자원을 공동의 목표에 집중해보는 경험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는 우연을 필연으로 바꾸는 작업이기도 하다.

서로의 역량을 키워내는 연대, 책임감을 가지고 지속하는 연대, 먼저 다가가는 연대. 이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더 너른 자치의 공간, 더 열린 공동체, 지속적인 자치를 가능하게 하는 역량의 성장을 함께 이룰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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