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학생회, 투명망토는 해리포터에게!

학생회, 투명망토는 해리포터에게!

| 단야

지난 4월 11일, 서울캠퍼스에서 전체학생총회가 성사되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결과였다. 안건 발제 후 투표가 진행되었다. 개표 결과 안건 4개 모두 가결되었다. 학생총회는 학생대표자들이 가결된 안건과 요구안을 본부에 전달함으로써 끝났다. 학생총회치고는 소박한 마무리였지만, 그 의미마저 소박했던 것은 아니다. 적어도 총학생회가 투명망토를 뒤집어쓰기 전까지는 그랬다.

예고된 구조조정이었다. 더는 무력하게 당할 수만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2년간 ‘식물 총학생회’에 적잖이 실망한 터였다. 학생총회를 시작으로 총학생회의 대응이 시작될 것만 같았다. 이번 구조조정은 이전과 다르게 진행되리라.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구조조정이 시작되었고, 총학생회의 존재감이 달라졌다. ‘일방적 구조조정’을 반대한다던 총학생회는 학생총회가 끝나자마자 ‘식물’을 넘어 ‘투명인간’이 되어 버렸다.

자취를 감춘 건 총학생회만이 아니었다. 사회과학대 학생회도 마찬가지였다. 개별 학과의 힘만으로는 일방적 구조조정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구조조정은 몇몇 학과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런 판단에서 ‘구조조정 공동대책위원회’가 출범했지만, 거기에 사회과학대 학생회는 없었다. 조재호 학생회장은 가족복지학과의 공대위 불참을 이유로 사회과학대의 참여를 유보했다. 지난 전체학생대표자회의 당시 학교의 일방적인 태도를 비판하며 학생들의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하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인 결정이었다.

총학생회가 ‘학생총회’ 이후 사라졌다면, 사회과학대 학생회는 ‘공대위’ 이후 사라졌다. 총학생회는 최고 학생의결기구인 전체학생총회에서 통과된 안건조차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 절차에 대한 집착에 비해 책임감은 없었던 셈이다. 사회과학대 학생회는 공대위 출범 전 학교와 몇 차례 면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공대위가 출범하고 대화의 주체가 공대위로 바뀌자 바로 손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가족복지학과의 공대위 참여를 독려하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총학생회와 사회대 학생회는 뒤늦게 공대위에 참여했지만, 실질적인 활동은 없었다. 자기 명의의 대자보 한 장 쓰지 않았다.

그들은 왜 투명망토를 뒤집어쓰게 되었을까? 혹 ‘당사자주의’의 딜레마가 아니었을까? 사회과학대 학생회가 가족복지학과의 불참을 핑계 삼을 수 있었던 것도 당사자주의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당사자 모두가 구조조정에 반대하지 않으면 자신들은 참여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총학생회 역시 같은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사자주의에 빠진 이들은 당사자가 할 수 있는 일과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엄격하게 구분하고자 노력한다. 선을 넘지 않기 위해서다. 과한 것은 부족한 것만 못하므로 선을 넘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문제는 이번 구조조정 당사자의 범위를 4개 전공만으로 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구조조정은 정원조정안, 인천캠퍼스 건립 등과 맞물려 큰 틀에서 추진되었다. 애초에 선을 긋는 것이 불가능한 학내 구성원 전체의 문제였다.

당사자주의는 소극적인 태도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남의 일을 내 일처럼 여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안이 첨예해질수록 발을 빼고 싶은 욕망은 커진다. 잘못했다가 욕이라도 먹으면 어쩌나 싶어 몸을 사리기도 한다. 그럴 때 과도한 개입을 막기 위해 그어놓은 선은 어느새 허울 좋은 핑계가 되고 만다. 그렇게 당사자들은 고립되고, 문제의 해결은 멀어져 간다.

벌써 6월, 공대위는 본관 앞에 천막을 쳤다. 학교는 구조조정이 ‘사실상 끝났다’고 선언했다. 총학생회와 사회과학대 학생회는 여전히 투명망토를 썼다 벗었다 하는 중이다. 그들이 어서 투명망토를 해리포터에게 돌려주고, 있어야 할 곳에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뽐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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