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의 멘붕스쿨] 고객님, 행복의 나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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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님, 행복의 나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우리

나는 주말이 되면 등산복을 입는다. 등산복을 입은 나는 동네 뒷산이 아닌 백화점 에스컬레이터를 오른다. 여름방학 시작과 함께 백화점 등산복 매장에서 알바를 시작했다. 지방에서 올라와 생활하다 보니 방값에 공과금, 생활비까지 만만치가 않았다. 생활비라도 내가 벌어서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알바를 찾았다. 주말만 일할 수 있는 나에게 일당 5만원이라는 조건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오늘도 즐거운 쇼핑 되십시오.’
오전 10시 반 안내방송과 함께 백화점의 하루가 시작된다. 매장청소부터 손님응대, 재고정리, 수선 맡기기, 택배 부치기까지 다양한 업무를 그때 그때 해낸다. 서서 일하는 것을 제외하면 힘들지 않은 작업들이었다. 유독 손님이 없는 우리 매장은 때때론 무료하기까지 했다. 매장이 여유로울수록 매출에 대한 압박은 심해졌다.

다리가 퉁퉁 부었다. 알바를 시작하고 주말마다 찾아오는 증상이다. 점심시간 1시간, 저녁 간식시간 30분, 중간 중간 티타임 30분을 제외해도 최소 8시간 이상을 꼬박 서서 일해야 한다. 첫날 다리가 아파 몸을 비비 꼬는 나에게 매니저는 서서 일하는 것 외에는 힘든 것이 없으니 이만한 일도 없다며 열심히 해보라고 격려했다.

백화점에서 일하면서 앉아서 일하는 사람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앉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연히 한 기사를 보게 되었고, 나는 알게 되었다. 나에게도 ‘때때로 앉을 권리’가 있었다!

2008년 9월부터 백화점, 대형마트 등에 장시간 서서 일하는 노동자를 위한 의자가 놓기가 시작되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 80조(의자의 비치)는 ‘사업주는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근로자가 작업 중 때때로 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해당 근로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의자를 갖추어 두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것이 ‘때때로 앉을 권리’다. 당시 서비스연맹에선 ‘서서 일하는 여성에게 의자를’이라는 구호로 ‘의자 캠페인’을 벌였다. 캠페인이 확산되면서 노동부는 실태조사에 나섰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의자는 매장에서 한참 떨어진 휴게실에 마련되어있다. 창고방에 마련된 휴게실엔 쇼파가 4개 놓여있다. 남녀의 구분도 없다. 먼저 와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가 된다. 처음엔 뭔가 꺼림칙해서 이용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마저도 빨리 자리를 맡지 않으면 쉴 곳이 없으니 저녁시간까지 반납해가며 잠시나마 휴식을 취하곤 했다.

그렇다고 쉬고 싶을 때마다 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티타임’이라는 이름으로 마련된 휴식시간에만 쉴 수 있다. ‘때때로 앉을 권리’가 있지만 누릴 수 없다. 다리가 아파 참기 힘들 때면 화장실을 간 김에 변기뚜껑을 내리고 앉아 있기도 하고, 창고에서 짐을 꺼낼 때 잠깐 앉았다가 일어나기도 했다. 흡연자들은 담배를 피우는 김에 흡연실에서 잠시 쉬었다 온단다.

만약 휴게실이 아닌 곳에서 앉아 있다가 매니저나 백화점 직원들에게 들키면 주의를 받거나 따로 교육을 받아야 한다. 얼마 전엔 매장 직원들이 계단에 앉아 간식을 먹다가 적발돼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때때로 앉을 권리’는 좀처럼 개선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행사장은 더욱 열악하다. 난방 시설도 미흡하고, 지나쳐가는 손님과 관리하는 직원들이 많기 때문에 잠시도 숨돌릴 여유도 없다.

알바를 시작하고 한 달쯤 되던 때 행사장에서 단기알바를 하게 되었다. 등산복 매장에 있을 때보다 훨씬 바빴다. 출근시간도 30분 앞당겨졌다. 매장오픈 전에 미리 행사장에 판매대를 설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패점때는 판매대 정리를 위해 자연스레 퇴근이 늦춰졌다. 평소보다 환경도 열악했고 시간까지 늘어났지만, 3일만 버티고 나면 짧은 여행이라도 다녀 올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일주일 뒤, 문제가 생겼다. 그동안 월요일 점심마다 꼬박꼬박 주급을 받았지만 행사장에서 일한 임금은 일주일이 지나도 지급되지 않았다. 매니저에게 연락을 했지만 조만간 연락을 주겠다는 답변 뿐이었다. 연락은 오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났다. 일주일을 더 기다리란다. 또 다시 일주일이 지났지만 임금을 받을 수 없었다. 백화점을 찾아갔지만 그 브랜드는 행사가 끝난 후였다. 연락이 오길 또다시 기다릴 뿐이었다.

얼마 후,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왔다. 나와 같은 행사장에서 일을 했다는 아주머니는 “나는 돈을 못 받고 있는데, 학생은 돈 받았어요?”라고 물었다.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답변만 받고 있다고 말하자 아주머니는 브랜드와 백화점 본사에 민원을 넣을 것인데 동참할 수 있냐고 물었다. 다음 날 같은 브랜드에서 일했던 사람들과 함께 브랜드 본사에 전화를 걸었다. 백화점에 입점을 원하고 있던 브랜드 과장은 이미지가 실추될 것을 염려해 ‘조만간 입금해줄 테니 백화점에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입금은 되지 않았다.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브랜드 본사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내가 당신이 일을 했는지 안 했는지 어떻게 아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참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대타로 나간 알바라고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매니저는 며칠 전부터 연락도 되질 않았다. 하지만 일주일 동안 브랜드 본사에 끈질기게 요구를 한 끝에 급여를 받아낼 수 있었다. 3일치의 급여를 위해 한 달이 넘는 시간동안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 여행의 꿈도 여름방학과 함께 끝나버렸다.

근로계약서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래 일할 생각도 아니고, 잠시 알바를 하는 것 뿐인데 굳이 써야하나’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았을 때 돌아오는 피해는 나의 책임이었다. 단 며칠간이었지만 나는 분명 일을 했는데, 그 대가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몹시 억울했다. 만약 함께 돈을 받아내자고 요구했던 아주머니가 없었다면, 나는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고 돈을 받을 수 있었을까.

일하기 전에는 몰랐던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3개월 남짓 아르바이트를 하며 겪었던 문제들이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수많은 알바생들이 백화점에서, 커피숍에서, 음식점에서, 다양한 일터에서 겪고 있는 문제들일 것이다. 누군가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를 알지 못해 오늘도 고통받고 있을지 모른다. 또 다른 누군가는 업주에게 일한 돈을 떼이고 전전긍긍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일을 시작하기 전 나에게 ‘백화점’이란 선물 같은 곳이었다. 일년에 몇 번, 엄마 손을 잡고 쇼핑을 하던 화려하고 평화로운 공간. 하지만 그 화려한 공간 속에는 남모를 고통들이 숨어있었다. 백화점은 나에게 ‘즐거운 쇼핑’을 하라고 말하지만 앞으로 백화점을 찾는 내 발걸음이 즐겁지만은 않을 것 같다.

백화점에서 행복한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누군가를 끊임없이 감시해야 하는 백화점 직원들, 매출의 압박에 시달리는 매니저들, 손님들의 ‘진상’까지 받아줘야 하는 알바생들, 고단한 일터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이 소비뿐인 손님들까지. 모두가 웃고 있지만 그 속에는 즐거운 소비도, 즐거운 노동도 없다. 3개월 간 알바를 하면서 내가 얻은 것은 몇 푼의 일당이 아니다. 화려한 모습 이면에 숨겨진 치열하고 고단한 노동의 현실을 볼 수 있는 눈이었다. 내게 백화점은 더이상 선물 같은 곳도, 화려한 공간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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