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망경을 읽고] 돌아갑시다. ‘너, 나, 우리’ 그 보통의 존재로

돌아갑시다. ‘너, 나, 우리’ 그 보통의 존재로

| 설미

매주 일요일 밤 11시 반에 시니/혀노의 웹툰 <네가 없는 세상>을 꼬박꼬박 보고 있다. 지구에 ‘너(you)’라는 단어의 개념을 잊어버리는 전염병이 퍼지는 어이없는 설정을 진지한 그림체로 그리고 있는데, 재밌다. 이 웹툰에서는 사람들이 ‘너’라는 단어를 잊어버리면서 상대방에 대한 어떠한 개념도 사라진다. 즉, 살인, 강도, 강간 등 각종 범죄를 죄책감 없이 저지르고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만 움직이면서 결국에는 사회도 무너지게 할 수 있는 전염병이 지구에 퍼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웹툰을 보면서 갑자기 우리가 생각났던 이유는 왜일까? 바로 옆에 있는 과가 사라진다는 소식이 들렸고, 본관 앞에 천막이 설치되었고, 사람들에게 ‘관심 가져주세요’ 부탁했다. 하지만 관심을 얻어내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중앙대학교 학생, 교직원, 학교 측은 마치 그들의 머릿속에서 ‘너’라는 개념이 사라진 것 같았다. 아니다. 나아가 이 무서운 전염병은 ‘너’가 아니라 ‘나’까지 지워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초등학교 때 글씨연습을 할 때 읊었던 ‘너, 나, 우리’라는 말이 입가에 맴돈다. 지금 학교에는 휘청거리는 ‘나’가 있고 뿌옇게 흐려져 버린 ‘너’가 있다. ‘우리’는 사라진 걸까?

너나우리

이런 상황에서 <잠망경> 7호는 ‘너’를 보여주고 우리를 만들려고 고군분투하며 글을 쓴 흔적이 보였다. 1면에서 7면까지는 ‘너’와 ‘나’를 보여주었고 8면부터는 새내기 교양학교와 다른 단위와의 네트워킹, 합의와 연대를 통한 ‘우리’를 보여주었다. 특히 2013년에 일어난 구조조정의 현실과 왜 이번 구조조정이 다시 문제가 되는지 조목조목 설명해주었던 글이 좋았다. 기억에 대해 짚으며 우리 현실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한 글도 흥미로웠다. <당신과 나의 선언>은 사뭇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구조조정이라는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느라 몇몇 글이 눈에 띄지 않아서 조금은 아쉬웠다. 다양한 문제들이 학우들을 괴롭히는 만큼, 필진들이 더 많이 더 깊이 다룰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봤으면 하는 비판은 애독자의 귀여운 투덜거림으로 봐줬으면 한다.

이번 <잠망경> 7호를 읽고 처음 든 생각은 ‘친절해졌다’는 것이었다. <잠망경>과 <중앙문화>는 사회학과 과방이 주 배포처인지 발간 날 한 뭉텅이씩 과방에 놓여 있곤 하는데, 일단 펼쳐들기 전에 긴장한다. 잠망경은 매번 내 속에 있던 안일함을 불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잠망경은 발간되자마자 가방 속에 자리 잡지만 심호흡을 하고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는 날에 다시금 펼쳐들 수 있는, 조금은 묵직한 신문이다. 이렇게 불친절하게 불편함을 툭툭, 고민도 툭툭 던지던 <잠망경>이 요즘은 조금 친절하게 불편함을 논한다. 예전에는 글에서 깊은 빡침(?)이 느껴졌다면 지금은 ‘해치지 않아요^^’라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조금은 무뎌진다. 나는 <잠망경>이 나를 더 불편하게 해 정신적 마조히즘을 즐길 수 있게 해줬으면 한다.

서두에서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당신과 다른 사람을 억지로 묶어놓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단지 너도 나도 우리도 모두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문제는 ‘나’나 ‘너’ 혼자서는 바꿀 수 없다. 그리고 우리를 만드는 일은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되는, 그냥 ‘너’를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내일부터는 소음이 들리면 볼륨을 높이는 대신 이어폰을 빼고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자. 그리고 손끝에 집중하기보다 ‘네가 없는 세상’을 다시 바라보자. 타인을 진정한 눈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진짜 ‘우리’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너’를 바라보고 우리가 될 수 있는 길에 <잠망경>이 앞으로도 꾸준히 다른 ‘너’들을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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