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여기 ‘대학언론’이 있다

한겨레

| 덕배

지난 8월 <잠망경> 편집위원회는 <시사저널>에서 주관하는 ‘제2회 대학언론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프레스센터로 향했다. 수상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다만 <잠망경>에게 던져진 질문이 하나 있었고, 그 질문에 대답함으로써 다른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였다.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사건의 전말은 대략 이렇다.

시상식 며칠 전 <잠망경> 편집위원회는 모 자치언론 기자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얼마 전 ‘대학언론상’ 장려상으로 선정된 기사를 보게 되었는데 <잠망경>과 관련된 내용이 있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얼결에 문제의 수상작 기사를 받아 보게 되었다. 기사에서 언급된 <잠망경> 관련 내용은 완전히 허구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문제는 기사가 허구를 바탕으로 “대학 언론이 과연 존재하기나 하는 걸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대학언론이 과연
존재하기나 하냐고?

기사는 대학 사회에서 제도화된 학보사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독자들이 신문을 읽지 않는 문제, 학교로부터의 편집권 침해, 예산 삭감과 발행 중단 등, 학보사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꼼꼼히 짚었다. 기사는 이어서 이런 상황에 대한 대안으로 시도되고 있는 자치언론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었다. 편집권 침해문제 때문에 만들어진 자치언론들 역시 “편향적” 성격과 “정치적 색채” 때문에 학생 사회의 외면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학보사와 자치언론 모두 위기에 처해 있으니 대체 ‘대학언론’이라는 것이 있기나 한 것이냐는 것이다.

명실공히 독립적인 대학 자치언론의 대표적 사례가 바로 <잠망경>이니만큼, 본지에 대한 내용이 언급될 수밖에 없었던 걸로 보인다. 기사에서는 <잠망경>이 공식 언론 매체 지위를 얻기 위해 학교 본부의 심사에 응했으나, 편향적 논조를 이유로 탈락하고 말았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물론 알다시피, 중앙대의 어떤 부처에서도 공식 언론 매체를 선정하는 ‘오디션’은 열리고 있지 않다. 백보 양보해서 그런 ‘오디션’이 열린대도 <잠망경>은 결코 학교 본부의 인정에 목 맬 이유가 없다. 나아가 지금까지 잠망경을 챙겨본 독자라면 잠망경은 그 ‘오디션’이라는 기획 자체를 공격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대학언론의 부재’를
몸소 증명하는 아이러니

수상작들은 총 7주에 걸쳐 주관 매체의 지면에 차례차례 실릴 예정이었다. 하는 수 없이 <잠망경> 편집위원회는 기사 내용에 대해 공식적인 항의를 하기로 했다. 시상식에 참석하게 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해당 기사를 작성한 학생 기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주관 <시사저널>의 실무자를 만나 의견을 전달했다.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시상식에 찾아와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들이 몇 더 있었다. 기사에서 언급된 또 다른 자치언론인 <서울대저널>에서도 기사 내용이 허위라고 했다. 기사에서 발언이 인용된 한 인터뷰 대상자는 자신의 의도가 왜곡되어 기사에 실렸다는 점을 전해왔다.

문제의 기사를 쓴 기자들이 대학 내의 자치언론에 대한 사실들을 모으면서, 최소한 해야 할 사실확인 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았던 것이다. 언론상에 응모하면서 언론의 기본적인 역할을 외면해버린 셈이다. 게다가 자신의 논지를 강조하기 위해서 특정한 부분만을 부각시키거나 인터뷰대상자의 의도를 왜곡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적 색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며, 가장 비겁한 “편향”의 대표적인 사례다.

결국, 기사에 언급된 당사자들의 정정요구는 모두 받아들여졌고, 기사 후반부에 주장하고 있는 ‘자치 언론의 위기’에 대한 모든 근거들이 사라져 버렸다. <시사저널>측은 해당 수상작이 기사로서 갖춰야할 기본적 조건들을 외면했다는 이유로 수상을 취소하기로 결정했고, 다행히도 해당 기사가 지면에 실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표면과 심층 사이의
무수한 질문들 중에서

기사 속에서 드러나는 기자의 목소리는 ‘이것도 문제, 저것도 문제이니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하는 한탄 섞인 질문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의 구체적인 시도들을 외면할 때에만 설득력이 생기는 한탄이었다. 이런 질문은 거대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라고 촉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인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역할을 방관해버릴 뿐이다. 냉소는 현실을 전혀 나아지게 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다 알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언론이 해야 할 역할일 수 없다.

수상작이 될 뻔한 기사의 말미에서 쓴 것처럼 “여러 방향에서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는 현실 진단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기사에서 언급된 것처럼 ‘학내 구성원 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학내 여론을 형성해 나가는 것이 대학언론의 정체성’이라고 대답한 인터뷰이들의 고민을 진지하게 밀고 나갔더라면 그 기자들은 정말로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질 수 있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이 사건에 대해 단 하나의 ‘해프닝’일 뿐이라고 말함으로써 그 의미를 삭제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이 사건의 원인을 심사위원의 부실한 심사로 돌림으로써 우리의 책임을 기성세대의 문제로 환원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다른 경로를 거쳐 해당 기사의 논지와 똑같이 대학언론에 문제가 많아서 그 갈 길을 찾기 어렵다는 결론을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동일한 사건을 통해서 제기되는 질문들은 표면과 심층 사이에서 무수히 많다. 이렇게 수많은 질문들 중에서 무엇이 건강한 공론장에 필요한 사회적 질문인가를 찾아내려는 치열한 시도가 바로 언론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그러니 모두가 문제라는 불변의 현실 속에서 이 사건이 단지 우리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을 새삼 확인시켜줄 뿐이라는 쉬운 비관은 하지 않기로 하자. 차라리 우리가 한 번이라도 ‘진정한 대학 언론’을 꿈꾸어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 편이 나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손쉬운 비관이나 냉소가 아니다.

언론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언론의 본질

현실의 수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현장을 떠나지 않는 기자들에 의해서, 우리는 대학 사회의 현실에 대해서 조금씩 더 알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해 보자. 편집권 독립을 위해 학교 본부와의 마찰도 불사하는 기자들, 어용매체가 되어버린 학보사 안에서 학생들의 시각을 담아내기 위해 애쓰는 기자들, 경직된 대학 공론장에 뜨거운 파문을 일으키기 위해 맨 손으로 새로운 매체를 만들어내는 자치언론들에 주목해야 한다. 이렇게 현실의 구체적인 대안과 노력들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할 때만 문제가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언론의 문제는 매 순간 안일한 태도와 타협하지 않고 싸우며, 저널리즘의 원칙을 지켜가려는 고집스러운 기자들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보자. 그런 대학언론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뒤에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해낼 수 있는 독자들이 있다고 믿어야만 한다. 독자들은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무엇이 저널리즘이고 무엇이 신문으로 위장한 값싼 전면광고인지 분간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우리가 알 수 있다면, 독자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알게 될 것이다.

이렇게 먼저 현실의 구체적 문제와 대안들을 꼼꼼히 살피고 나서, 다시 한 번 원칙에 대한 확신과 낙관을 잃어버리지 않는 출발점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그 위에 서서 지금의 대학언론을 바라보자. 누구보다 빠르게 소식을 전하는 것은 SNS나 인터넷 게시판이 해내고 있다. 학우 대중의 흥미를 자극해 빠져들게 하는 것은 상업적인 대중매체의 특기다. 학교 본부의 결정과 정책을 홍보하는 것은 홍보실이나 홍보대사가 충분히 할 수 있다. 학생들의 의견을 조사하고 반영하는 것은 학생회의 본분이다.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인가? 이제야 비로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연 우리가 꿈꾸는 ‘대학언론’이란 대체 무엇일까?” 하는 질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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