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동문특집호’, 아무도 쓰지 않은 신문


| 짱큰콩

중대신문

여름방학의 절정이었던 8월 중순, 15만 동문들의 집 앞에 신문 하나가 배달됐다. 제호는 <중대신문>이었다. 발행 호수가 있던 상단에는 ‘동문특집호’라는 이름이 자리 잡고 있었고, 1면에는 이용구 총장의 커다란 사진과 함께 “혁신적 변화로 대학발전 모범이 될 것”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었다. 총 16면으로 구성된 각 지면은 ‘대학 발전’을 홍보하는 기사로 빼곡히 채워졌고, 후반부 세 지면은 모금에 참여해 준 ‘발전기금 및 약정자’ 명단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모든 기사 뒤에 바이라인(기사 끝에 붙는 기자의 기명 또는 서명)은 없었다. 그리고,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다.

바이라인은 보도에 대한 기자의 책임성과 전문성을 보증하며 독자에게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장치이다. 지금은 많이 보편화됐지만, 사실 군사정권시대만 해도 바이라인이 달린 기사는 흔치 않았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 이후 사주나 권력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기자가 독립적인 존재로 서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부터 바이라인 기재가 일반화되었고, 이는 오늘날 기자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요소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바이라인이 달리지 않은 기사의 전말을 알아보면 대부분 기자 스스로가 쓰기에 ‘부끄러운’ 기사이거나, 기자 스스로 썼다고 말하기 어려운 기사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불가피하게 익명을 사용하는 예외사례가 있다. 본지 <잠망경>과 2010년에 발간된 <대학개조선언>이 그렇다. 2009년 중앙대 교지편집위원회 <중앙문화>는 제58호에서 총장을 비판하는 만화를 냈다는 이유로 강제수거 당했다. 이어서 예산이 전액삭감 됐다. 교지편집위원회는 이에 항의하기 위해 무제호 <대학개조선언>을 준비했으나, 중앙대에는 ‘간행물의 발간은 총장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위헌적인 학칙이 있었다. 학생지원처는 제호 없는 간행물이어도 허가 없이 발간하면 징계하겠다고 경고했다. 결국 편집위원들은 익명을 사용해야 했다. 본지 <잠망경>이 익명으로 글을 쓰는 것 또한 같은 이유이다. 이는 위에서 말했던 정기신문의 갑작스러운 ‘바이라인 누락 사태’들과는 다른 맥락에서 봐야 할 것이다.

최근 <한국일보>에서 편집권을 둘러싸고 사측에 저항하는 기자들의 투쟁이 있었다. 사측은 일방적으로 편집국을 폐쇄한 후 급기야 자체적으로 신문발행을 강행했다. 바이라인은 없었다. 기자들이 없어 자사의 다른 매체 기사를 거의 똑같이 베껴 쓴 글들이었기 때문이다. 사측의 비리를 고발한 죄로 쫓겨났던 기자들은 새로운 기자 채용 공고를 보고 호소했다. 동료 기자 여러분, ‘부끄러운 바이라인을 남기지 마십시오.’ 기자의 양심과 편집권 독립을 위해 동료 기자들의 협조를 부탁한 상징적 메시지였다.

“부끄러운 바이라인을
남기지 마십시오”

2002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미국 신문 중 하나인 <워싱턴포스트>에서 기자들이 노조파업을 할 때, ‘바이라인 스트라이크’라는 것을 진행한 적이 있다. 기사를 쓰되 바이라인을 모두 달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파업이었다. 신문에 바이라인을 달지 않는 것이 곧 해당 신문의 신뢰도에 큰 금을 가게 할 수 있으며, 이는 사측에서도 원치 않는 일이었기에 사측은 곧 협상 테이블을 마련했다. 언론에 종사하는 이들 모두가 기사의 기명을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는 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일보>와 <워싱턴포스트>의 기자들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다르긴 했으나 그들에게 ‘바이라인’은 똑같이 최후의 보루였던 셈이다.

얼마 전 추석연휴에 주류 언론이라 불리는 매체들의 지면에 특정 추석선물을 홍보하는 광고가 마치 정식 기사인 양 1면에서부터 실린 일이 있었다. 기사들 끝에는 바이라인이 누락된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는 ‘언론사는 언론인 종사자(편집자•기자) 등에게 보급행위 및 광고, 판매를 요구해서는 안되며 언론직 종사자도 그런 요구를 받아선 안된다’라고 명시된 ‘신문윤리강령’에 어긋나는 일이다. 심지어 기사 작성 단계에서 해당 매체의 기자들이 참여하지 않기도 하며, 심지어 그 제작 시스템조차 제대로 모르는 경우도 허다했다. 추석 특집 제작에 참여한 <동아일보>의 한 기자는 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구체적인 프로세스는 잘 모른다’는 답변을 했다고 한다.

“우리가 만든다고 보기가 어렵죠”

그런데 이 황당한 일들이 어쩐지 익숙하게 들린다. ‘동문특집호’ 또한 <중대신문> 현직 기자들이 자체 제작한다고 보기 힘들다. 대외협력팀에서 일종의 ‘외주’를 주는, 즉 신문제작을 ‘아웃소싱’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현직 기자 외에 이미 신문사를 떠난 전직기자들이 참여하기도 한다. 학기 중 보도된 기사를 재활용해서 만들기도 한다. 대외협력팀과 ‘연계’해서 만들기에 기사 소재를 자체적으로 생산한다고 보기도 힘들다. 이에 대해 <중대신문> 편집장은 “자체적으로 만드는 신문이 아니기에 바이라인을 달지 않는 것이며, 제작하는 우리도 딱히 우리가 만드는 느낌이 없어서 (동문특집호) 제작에 있어서 큰 문제의식을 느끼지는 않았다”라고 답했다.

편집부국장은 동문특집호의 예외적 성격을 고려할 때 정기 발행되는 <중대신문>과 구분할 필요가 있다면서 “사실 학교 소식지로서의 역할도 대학언론이 담당해야 할 부분이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동문특집호를 받아본 동문들이 그것이 정기 발행물과는 다른 특별판이라는 생각을 못할 수도 있고, 단순 소식지로서만 기능하는 것에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지금까지 동문들에게서 그런 연락을 받은 적은 없다”라고 답했다.

진실보도 하겠다는 그 선언

“쇄신하겠다”는, “단순히 드러난 사실 이면의 ‘진실’을 보도하겠다”는 <중대신문>의 선언이 무색해지는 지점이었다. <중대신문>은 동문특집호를 “어디까지나 특집호”이기에 예외적 사례라고 규정하길 바랐다. 따라서 기자로서 단순 인력 제공에 거리낌이 없었고 구성원들은 동문특집호 제작에 대해 갈등하지 않았다. 학기 중에 일어난 각종 사태들과 일방적 구조조정의 모순을 파헤치려던 모습들은 온데간데 없었다. 학교 발전기금을 모으자는 일념으로 그동안 <중대신문>이 취재하던 수많은 사건들은 묻은 채, 본교의 ‘무한한 발전’을 기원하고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잘 돼 가고 있음을 홍보하는 데 급급한 기사들은 기만적이기까지 했다. 대체 여기에 그들이 말한 ‘진실’이 있기는 한 것일까. ‘특집호’든 정기 호수를 붙여 나오든, ‘중대신문’이라는 제호를 달고 나온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들이 소속된 신문사에서 발행하는 언론매체인데, 그들은 ‘우리가 쓰지만, 쓴다고 보기 어렵다’며 모순된 말을 반복하고, 사태의 중심에 서 있음에도 뒤로 한 발짝 빠지려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제작에 깊이 참여하지 않는 기자들의 경우 제작시스템에 대해 잘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으니, 과연 이것이 소속 기자들 자신의 신문이 맞을까, 의문이 들었다.

90년대 <중대신문> 편집장을 했던 동문 A씨는 “동문특집호는 90년대 후반부터 발행했다”고 말하면서, “당시 학교 발전기금 모금이 절실한 상황이어서 <중대신문>도 그 취지에 공감하며 일을 시작했다. 성격은 사실상 홍보지였다”라고 말했다. <중대신문>은 87년도 편집권 독립 투쟁을 했고,지금의 국장단 체제가 만들어졌다. 중대신문 출신의 또 다른 동문 B씨는 “이전에도 국장단 체제가 있긴 했다”면서 “다만 87년 이전에는 편집간사 정도의 역할이었고, 이후 학교 측의 요구를 필터링하는 역할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중대신문>이 ‘정론지’를 추구하려는 경향이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B씨는 “<중대신문>이 앞으로 어떤 시도를 하든지 지금 같은 시스템에서는 계속 그런 상충되는 문제(정론지 추구와 홍보지라는 성격)를 가져갈 수밖에 없다고 본다”고 답했다. 나아가 “지금 기자단이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얼마간 해 나갈 수는 있겠지만, 사실 그게 얼마나 오랫동안 재생산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면서 “<중대신문> 내부 시스템 자체에서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한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론’하는 대학언론

<중대신문>은 분명 나날이 변화하고 있다. 기계적 중립에 대한 고민의 흔적과 조금 더 심층적인 보도를 하고자 하는 모습들이 지면 곳곳에서 드러난다. 때문에 더욱 더 그들은 알아야 한다. ‘특집호니까 그래도 된다’는 단 한 번의 ‘예외적’ 외면 때문에 그동안 쌓아올린 매체 신뢰도에 큰 금이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언제든 바이라인을 빼거나, 혹은 이전 기사와 상충되는 논조의 글을 실을 수도 있는 언론이 계속해서 독자의 신뢰를 받는 일은 힘들다.

2010년 10월 11일 <중대신문>의 한 기자는 지면에서 말했다. “이데올로기 없음은 ‘생각 없음’을 의미하며 기자를 그저 ‘소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중대신문> 기자들이 이데올로기를 갖고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을 때, <중대신문>은 소식지가 아닌 정론(正論)으로서 제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중대신문>이 애초에 소식지 역할을 자임했다면 선배 기자들이 편집권 독립을 선언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비판과 감시의 대상을 선택하는 것과 모든 비판적인 관점을 제거하는 것은 다르다. 대학언론을 소식지와 엄연히 분리해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만약 동문특집호의 소식지로서 성격과 <중대신문>이 현재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면, 동문특집호가 ‘예외’라고 주장하면서 책임을 피하기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새로운 변화를 꾀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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