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자치 진단] 인권복지위원회를 위한 근본적 비판?

인복위

| 세안세다 

인권복지위원회(이하 인복위)의 역량에 대한 학내의 의문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8월, 인복위는 사물함 배정 사업을 늦게 공지하는 등 미숙한 진행으로 학생들에게 질타받았다. 크게 놀랄 일도 아니다. 올해 3월에는 총학생회 자체 홈페이지를 통해 사물함 배정을 진행하다 서버가 다운돼 혼란을 빚은 적도 있다. 학생들은 인복위에게 책임을 물으면서 질타하고, 인복위는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사과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결국 인복위 임명 시스템을 바꾸자는 얘기까지 나왔다. 총학생회가 임명해 전학대회에서 인준하는 현행 방식을 바꿔 학생들이 직접 선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권복지위원회,
반복되는 질책과 사과

학생들은 인복위가 ‘정확’하고 ‘신속’하게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장학금을 받고 업무를 수행하는 인복위가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소비자방식의 불만이다. 기존의 일상 사업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더 넓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가 인복위에 가지고 있는 불만과 문제의식이 너무나 협소한 것은 아닌가? 모두가 ‘실무’ 처리가 미흡하다고 지적하지만, 그 문제는 인복위가 처한 큰 문제 중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부일지도 모른다.

현재 인복위는 크게 도서관 사물함 관리와 일상 사업을 주 업무로 삼고 있다. 일상 사업에는 의혈지킴이 관리, 한가위 귀향버스 운영, 복지장학, 교육 사업이 있다. 인복위는 교육 사업의 일환으로 한국사 시험이나 운전면허, 토익 특강 등을 저렴하게 수강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외에도 연초마다 학교 다이어리를 제작·배포하고, 셔틀버스나 학생식당 운영에 대해 의견을 수렴하고 반영하는 업무를 한다.

과거에는 앞서 언급한 역할뿐만 아니라 생리대 자판기 설치사업을 벌이고(97년), 복지시설공동관리위원회의 구성해 시설문제에 개입하는 등 다채로운 사업을 벌였다(98년). 흑석동 주민들도 참여할 수 있는 수족침 특강, 한자어휘 특강을 개최해 지역공동체 발전을 모색하기도 했다(99년). 또 <한겨레신문사>와 함께 언론인 홍세화 특강을 개최하고(08년), 도서관 사물함을 외주업체에서 학내 관리로 변경해 사물함 요금인하(08)를 추진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방호원 겨우내 난방과 관련한 처우 개선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고(09) 인권영화상영제를 개최하는 등 정치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인권복지위원회,
어떤 역할을 하고있나

그러나 인복위는 이제 관성적인 사업을 수행하는 데 급급할 뿐이다. 더 이상 인복위의 역할이나 지향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현재 55대 인복위원장 이동건 씨(경영학부)는 인복위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 “인권복지위원회라는 이름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면서, “복지 부분은 다른 학생회에서도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인복위라고 해서 인권과 복지 차원에서 일을 한다기보다는 학생들을 위해 보다 나은 일을 한다”고 말했다. “인복위 차원의 지향점이나 방향성을 따로 갖고 있지도 않고 이에 대한 인수인계를 받은 적도 없다”는 것이다.

인권센터가 하는 역할과의 차별성을 묻는 질문에는 “인권센터가 인권에 관련한 업무와 상담, 피해학생을 보호하는 일을 한다면 우리는 실무를 담당하고 있다”고 답했다.

50대 인복위원장 송준영 씨(신문방송학부)도 “학생들이 학생회에 대한 존재감을 인식하고 신뢰를 가질 수 있도록 애썼지만, 하는 일이 교직원이나 동사무소 직원을 연상케 하다 보니 지향점을 혼동하고 착각하는 어려움을 겪었다”고 인복위의 한계를 토로했다. 결국 인복위 스스로가 학교 행정을 대행하는 것을 자신들의 역할로 한정짓는 실정이다.

이들에게도 사정은 있다. 현재 인복위는 인복위원장까지 총 5명으로 구성돼 있다. 때문에 일상적인 사업을 수행하기에도 역량이 부족하는 것이다. 다른 것을 고민할 여유가 있다 한들 따로 배정된 예산도 없다. 인복위가 진행하는 모든 일은 학생지원처에게 확인과 결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학생자치기구로서 재량권이 없는 것이다.

텅 빈 ‘인권복지위원회’라는 명칭

게다가 매번 관성적인 업무만 해내는 것에 급급하다 보니 사람이 남지 않고 다음 인복위에 역할이 제대로 이어지기도 어렵다. 학교 구성원들의 무관심도 문제다. 인복위가 자치 기구로서 어떤 정체성을 갖고 어떤 방향을 꾀하는지 관심 가지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저 자신에게 필요할 때마다 실무역량에만 주목할 뿐이다. 때문에 누구도 인복위에 ‘인권’과 ‘복지’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고, 인복위도 그에 대답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오늘날 중앙대에서 ‘인권’과 ‘복지’는 그저 교육 사업이나 도서관 사물함 관리에 멈춰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의 감수성 또한 이 정도에서 그쳐 있으니 학내에서 인권과 복지에 관련된 문제가 발생해도 무던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참정권을 위해, 인종차별을 받지 않기 위해, 성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해, 노동권을 위해 치열한 삶을 산 이들이 역사 속에 있었다는 것을. 그들이 치열하게 꿈꿨던 것이 바로 ‘인권’과 ‘복지’였다. 오늘 인복위의 ‘인권’과 ‘복지’는 무엇인가? 관성화된 인복위가 중앙대 학생사회에서 ‘인권’과 ‘복지’라는 단어의 의미를 오염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저 방관하고 있다.

다시 채워나가야 할
‘인권’과 ‘복지’

인복위의 역량에 대한 최근의 문제제기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너무나 협소하다. 그럼에도 반길 만하다. 지금이 기회다. 누구도 질책하지 않고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던 근본적인 문제를 환기해 볼 때다. 우선 인복위 업무를 학생지원처 업무와 정확히 구분 짓는 데서 시작하자. 학교 행정차원의 업무는 교직원이 맡아 인복위의 과중한 업무를 덜어내고 사업 역량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인권과 복지에 대해 깊이 사유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낼 역량 말이다.

장애인 학우들의 이동권 문제가 될 수도 있고, 강의실 문제나 수업시수와 관련한 교육권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경영경제관 신축으로 인한 자이언츠 및 대운동장 사용에 대한 문제처럼 공간의 사용권과 관련된 문제일 수도 있다. 무엇이 됐든 인복위는 학내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학생자치의 차원에서 나름의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인권’과 ‘복지’에 대한 진지하고 깊이 있는 사유와 토론은 분명 학내에 새로운 흐름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런 흐름을 타고 인복위는 지속적이고 주체적인 존속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인복위는 총학생회 산하기구로서 실무능력만을 평가받고 있다. ‘인권’과 ‘복지’라는 ‘정체성’은 텅 비어 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 누구도 질책하지 않은, 그래서 누구도 사과하지 않은 문제를 생각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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