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법원까지 간 구조조정 투쟁,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나?

| 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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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학기, ‘인문사회계열 구조조정’(이하 구조조정)은 중앙대 내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 학내 언론은 연일 구조조정을 주요 이슈로 다루었다. 여론은 확연히 나뉘었다. 구조조정 찬성 측과 반대 측 모두 한 치의 물러섬 없이 팽팽하게 맞섰다. 이사회가 학칙 개정안을 승인함으로써 해당 학과들이 폐과되자 극적인 분위기는 한풀 꺾였다. 구조조정이 사실상 마무리된 것이다. 2013년 2학기가 시작되었다. 아무도 구조조정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이제 구조조정은 소위 ‘한물간’ 이슈가 되었다.

그러나 중앙대학교 구조조정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아직 남아 있다. 구조조정 투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법원으로 장소만 달라졌을 뿐, 구조조정을 둘러싼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라 할 수 있다. 지난 8월 5일 법원은 공대위가 낸 학칙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공대위는 곧바로 항소했지만 1심의 판결을 뒤집기는 어려워 보인다. 학교는 변경된 학문단위를 반영한 2014학년도 신입생 모집 요강을 이미 발표했다. 공대위의 바람과 달리 이 사태가 반전을 맞이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일은 평가다. 학교에서 법원까지 끌고 간 구조조정 투쟁, 얻은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잃은 것은 무엇인가?

구조조정 투쟁,
학교에서 법원까지

4월 15일 김호섭 인문사회계열 부총장은 <중대신문>을 통해 “후퇴는 없다”며 구조조정을 단행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같은 기사에서 김 부총장은 아시아문화학부 비교민속학전공, 사회복지학부 아동복지전공, 사회복지학부 청소년전공, 사회복지학부 가족복지전공이 “같은 학부 다른 전공들에 비해 전공선택률이 매우 낮은 상황”이라며 학부제로의 전환 2년 만에 다시 메스를 갖다 대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학기 초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구조조정 괴담’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5월 2일 구조조정 해당 학과를 주축으로 공대위가 발족했다. 당일은 학교 측에서 주최하는 공청회가 예정된 날이기도 했다. 공대위는 발족식 직후 공청회 장소인 법학관 2층으로 이동하여 연좌농성을 펼쳤다. 설명회와 다를 바 없었던 당일의 공청회를 취소하고 학생·교수·학교가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협의체 구성을 촉구하기 위한 직접행동이었다. 학생들에게 막혀 공청회장으로 들어가지 못한 김 부총장은 공청회를 취소했다. 이후 김 부총장과 공대위는 면담을 가졌지만 서로의 입장차만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달 21일 학교는 구조조정이 “사실상 끝났다”라고 발표했다. 며칠 뒤 공대위는 본관 앞에서 천막 농성에 들어갔다.

구조조정은 학칙을 개정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현 중앙대 학칙에 따르면 학칙 개정은 대학평의원회(이하 평의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이에 평의원회는 학교 측과 당사자 간에 충분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등 절차상의 문제가 많으므로 심의를 할 수 없다며 학칙 개정을 위한 심의를 ‘유보’했다. 그럼에도 학교 측이 학칙 개정을 강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공대위는 6월 14일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뒤 총장과의 면담을 요청하며 총장실을 점거했다. 당일 저녁 이용구 총장이 학생들을 방문했지만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같은 달 18일, 공대위는 스스로 점거를 해제했고 이사회는 학칙 개정을 승인했다.

6월 22일 공대위는 법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의사를 표명했다. 7월 15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기자회견을 가진 공대위는 “이번 구조조정 관련 학칙개정안은 절차적으로 정당성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면서 “최후의 수단으로서 법정에 선다”라고 말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공대위는 법원에 대학 측의 학과구조조정 관련 학칙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8월 5일 법원은 공대위 측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대학평의원회의 ‘심의 유보’를 법원이 ‘심의 거부’로 해석해, 이것이 “심의권 남용에 해당”하고 “수업권과 신뢰이익이 침해될 급박한 위험이 존재한다는 점이 충분히 소명되었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것이 기각의 이유였다. 공대위는 현재 1심 판결에 대하여 평의원의 결정이 ‘심의 거부’가 아니라 ‘심의 유보’라는 점을 들어 항고를 진행 중이다.

법과 정치의 긴장 사이에서

‘정치의 사법화’라는 용어가 있다. 이는 대체로 헌법재판소와 같은 사법기관이 정치적 색채가 강한 문제에 깊숙이 관여하여 최종 결정을 내리고 궁극적으로는 정책 결정을 내리게 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최근 국정원 사태와 관련하여 주로 언급되는 특별검사제도나 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한 일들을 헌법재판소로 넘기는 현상 따위를 ‘정치의 사법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5·18 과거 청산, 대통령 탄핵, 행정수도 이전 등의 ‘논쟁적 사안’이 재판으로 마무리된 것이 ‘정치의 사법화’의 구체적 사례다.

정치에 대한 사법 개입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이러한 흐름의 중심에는 기성 정당들이 있다. 정당들은 첨예한 사안을 사법부로 떠넘김으로써 자신들에게 가해질 수 있는 비판이나 위험, 책임을 회피한다. 권력의 상실이 두려워 자신들의 역할을 방기하는 셈이다. 반면 최근에는 사회운동영역에서의 사법화 현상이 두드러지기도 한다. 사회운동만으로는 문제의 해결이 어렵다고 생각할 때 문제를 법원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역량의 약화를 법으로 메꾸기 위해서다. 이러한 ‘정치의 사법화’는 민주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시민에 의해 직접 선출되지 않은 사법기관이 정치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은 민주주의의 이상인 ‘자치’에 부합하지 않을 뿐더러, 공동체의 미래와 관련된 문제를 단순한 절차의 문제로 축소해 버릴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치의 사법화’를 끌고 오는 것은 물론 중앙대 구조조정 투쟁을 평가하기 위해서다. 구조조정 투쟁이 시작되자 학내의 정치적 지평은 이전과 확연히 구별될 정도로 확대되었다. 찬성 측과 반대 측 모두 대학의 의미와 미래를 두고 열띤 논쟁을 벌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공대위는 학내 구성원들에게 일방적인 구조조정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한 다양한 형식을 고민할 수 있었다. 성명을 발표하거나 지지 서명을 받는 것 외에도 문화제나 다큐멘터리 상영 등 투쟁의 형식을 다각화했다. 공대위는 이를 발판으로 본관을 점거할 정도의 역량을 쌓을 수 있었다.
반면 구조조정 투쟁이 학교를 떠나 법원으로 넘어간 지금, 대학 구성원들이 할 수 있는 논의는 무척 협소해지고 말았다. 공론장은 활기를 잃은 지 오래다. 이제 공적인 토론은 ‘법원이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 바란다’거나 ‘법원의 판결은 어떠할 것이다’라고 추측하는 선에서 멈추어 버린다. 구조조정의 절차적 정당성과 그 명분, 학내에 미칠 영향 등은 사법부에 의해 ‘YES or NO’라는 단답형으로 정리될 위험에 처했다. 구조조정이라는 정치적 사안을 사법부로 넘겨버림으로써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정치의 종언’을 막기 위해서

구성원들 간의 격렬한 갈등의 대가로 얻은 교훈이 실정법에 대한 이러저러한 지식에 불과하다면, 그 갈등은 결국 소모적인 것으로 기억되고 말 것이다. 학생사회는 올해 구조조정 투쟁을 통해 배운 것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전의 가정교육학과 폐지 당시와 달리 학생 사회가 역동적인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지만, 동원 가능한 모든 역량을 투여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의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 이는 현재 학생 사회의 정치적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과연 우리는 우리 문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할 만한 실력이 있는가?

우리는 지금까지 시도된 저항을 더 넓은 지지로 엮어 낼 수 있는 보편적인 담론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또한 더 이상 학생총회를 통해 학생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이끌어내고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총학생회를 선출해서도 안 된다. 우리가 더 많은 학생들의 서명, 대규모 문화제, 논리적으로 완벽히 준비된 대화와 토론, 물러서지 않는 직접행동을 결의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문제는 다시 중앙대와 일면식도 없는 사법부의 손으로 넘어가 버릴 것이다.

학교 역시 ‘밀어붙이기식 구조조정’은 극단적인 갈등을 일으킬 뿐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 학교는 소수의 구성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구조조정 방식을 재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학교의 푸념처럼 이후에도 교비가 변호사 선임비로 낭비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이사회가 절대적인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지금의 제도가 고쳐지지 않으면 구성원들 간의 반목은 결국 피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이 학생, 교수, 교직원으로 구성된 하나의 사회인 이상 갈등은 필연적이다. 갈등 과정을 건강한 토론을 통해 이끌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미래가 결정된다. 논쟁적 사안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법리로 환원해 버릴 때 갈등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봉합’되어 버린다. 이때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나오는 다채로운 논의들은 실종되고 만다. 민주주의란 갈등을 해결하는 정치의 연속이다. 따라서 우리는 정치를 포기할 수도 없고, 포기해서도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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