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인문대 선거 무산, 학칙에 짓밟힌 학생자치

| 버드나무

제4대 인문대 학생회장 선거가 결국 무산됐다. 선거를 4일 앞둔 11월 22일 저녁, 인문대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는 ▲후보가 당선됐을 시 학생자치 활동에 제약이 예상되는 점 ▲학교 측이 선거 결과에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경고한 점을 들어 선거 진행이 어렵다고 판단, 선거 연기를 결정했다. 앞서 낮에 있었던 조숙희 인문대학장과 선관위의 면담 자리에서 인문대학장으로부터 ‘선거를 강행할 경우 선거관리위원회 전원이 징계를 받을 수 있다’는 경고를 받은 직후였다. 선거는 내년 3월 다시 실시된다.

계열 ‘학칙’ … 학생회 ‘회칙’

인문대 학생회장 선거는 시작하기 전부터 파행의 조짐을 보였다. 구조조정에 반대하다가 징계 받은 경력이 있는 김창인 씨(철학과 09)는 인문대 학생회장 선거 출마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후보 등록을 한 주 정도 앞둔 어느 날 그는 인문사회계열 행정실(이하 계열)로부터 ‘안내’를 하나 받았다. 계열은 김창인 씨에게 선거에 출마하지 말 것을 권했다. 김창인 씨가 당선되면 새내기새로배움터 지원금이나 기타 학생자치활동을 위한 지원금 등 행정적 지원을 제공하지 않겠다는 말도 곁들였다. ‘학생자치기구 선거지도 내규 4조(이하 내규)’가 근거였다. 내규는 전체 이수 학업성적의 평균 평점이 2.0 이하거나 학사 및 기타 징계 사실이 있는 경우에는 학생회장 후보자로서 자격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두 사항 모두 해당되는 김창인 씨는 후보자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직 후보자 등록을 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선거관리위원회가 꾸려지기도 전에 받은 안내를 김창인 씨가 납득할 리 없었다. 안내를 받은 뒤에야 그는 후보자 자격을 제한하는 내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징계 이력과 학생 대표자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을 수 없고 학칙이 학생자치에 상위에 설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선거 출마를 강행했다. 11월 9일, 그는 한 해 동안 맡았던 철학과 학생회장 직책을 내려놓았다. 선거 첫 일정은 출마자가 공직에서 사퇴하는 것이다. 12일에는 인문대 학생회장과 각 학과 학생회장으로 구성된 인문대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로부터 후보자 추천서를 배부 받았다. 인문대 선거 시행세칙에 명시된 대로 재학 증명서, 추천서, 출마 소견서 등을 15일 선관위에 제출한 그는 후보 등록을 마쳤다. 선본 이름은 ‘런닝맨’, 김보현 씨(역사학과 12)가 러닝메이트였다. 선관위는 ‘런닝맨’ 선본 단선으로 선거가 치러진다고 공고했다. 인문대 학생회칙(이하 회칙)과 선거 시행세칙에 비춰 아무런 하자가 없는 정당한 절차였다.

하지만 계열은 후보자를 인정하지 않았다. 계열은 선거지도위원회(이하 지도위)를 꾸렸다. 선거지도위원회는 선거 과정에서 “자율적이고 민주적으로 (학생회장을) 공정하게 선출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인문대 학장과 각 학과장, 계열 행정실장으로 구성되는 기구다. 계열은 인문대 학생회장 선거가 ‘자율적이고 민주적으로’ 치러지지 못하고 있다고 규정한 것이다. 지도위는 후보자 등록 직전인 14일 선관위에 공문을 발송했다. “특정 예비 후보가 학칙 내규 제4항에 의거해 징계를 받은 전력이 있고 학점미달 사항이 있으므로, 선거를 진행하는 것이 학칙에 위반된다”는 내용이었다. 앞서 ‘안내’를 되풀이하면서 선거 중단을 요구한 것이다. 선거인 명부를 요청하는 선관위에게 계열은 ‘선관위가 학칙에 위배되는 선거를 진행하고 있으므로 명부를 내줄 수 없다’고 버티기도 했다.

선관위는 회의를 거쳐 선거 강행을 택했다. 선거인 명부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얻을 수 있었다. ▲학생회 선거는 학생회칙을 가장 우선으로 적용하므로 회칙에 따라 후보자는 결격사유가 없다는 점 ▲내규는 16년 동안 적용한 적이 없는 사문화된 학칙이라는 점 ▲내규의 적용 조항과 적용 시기, 적용 대상이 일관되지 않고, 올해 인문대 선거에만 적용하는 것이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점 ▲지난 7일 각하 판결을 받은 노영수 씨(독어독문학과 03)의 ‘총학생회 선거 후보자격 확인’ 소송에서 법원이 ‘후보자 자격을 확인하는 주체는 학교가 아닌 학생회’라고 명시한 점을 선관위는 선거 강행의 이유로 들었다. 그러자 지도위는 21일 선관위와의 면담자리에서 ‘선거 강행하면 선거관리위원 전원을 상벌위원회에 회부할 것’이며 지도위가 납득할 만한 안을 “납작 엎드려서” 만들어오라고 통보했다. 결국 22일 선관위 회의를 거쳐 인문대 선거는 무산되고 말았다.

‘각하’가 의미하는 것

이번 사건과 관련해 논쟁의 중심에는 노영수 씨의 ‘총학생회 선거 후보자격 확인’ 소송이 있다. 작년 9월 노영수 씨는 총학생회장 선거 출마를 준비하다가 내규의 존재를 알게 돼 출마를 포기해야 했다. 그 또한 2010년 구조조정에 반대하다가 징계 받은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출마를 포기했지만 학교법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길을 택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진행된 1심 결과는 패소였다. 노영수 씨는 항소했고, 11월 7일 서울고등법원으로부터 ‘각하(=소송을 취소함)’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학생자치단체로서 비법인사단인 총학생회가 위 선거를 직접 주관·실시하고 선거의 효력 역시 총학생회에 귀속되므로” 학교법인은 ‘총학생회 선거 후보자격’을 판단할 권한이 없다고 정리했다. 따라서 학교법인을 상대로 한 ‘총학생회 선거 후보자격 확인’은 소송 자체가 성립될 수 없어 ‘각하’한다는 것이었다.

승소도 패소도 아닌 ‘각하’ 판결은 인문대 학생회장 선거와 시기적으로 겹치면서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인문대 선관위는 <선거 무산 경위 보고>에서, 해당 판결이 “내규의 문제가 있다는 점과 학교본부에서 내규로 학생자치에 개입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을 확인해줬기 때문에 선거 강행을 결정했었다고 말했다. <한겨레> 또한 11월 22일 기사에서 참여연대 정민영 변호사의 말을 빌려 “형식상으로는 원고 패소지만 법원은 학교가 총학생회장 자격을 제한할 권한이 없다고 밝혔다”고 주장했다. 같은 판결문을 두고도 학교의 입장은 정반대다. 선관위의 이의제기에 대해 지도위는 “각하 결정은 본안 심의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므로 학교가 승소한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홍보실은 <한겨레> 기사에 대해 “판결문 어디에도 우리 대학 학칙 내규 등에 명시된 내용의 옳고 그름을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칙 또는 내규 등의 규정에 의거하여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판결문이 실제 담고 있는 ‘내용’과 각하 판결이라는 ‘형식’ 사이의 불일치가 빚어낸 논쟁인 셈이다. 하지만 한 해석은 너무 많이 봤고 다른 해석은 너무 적게 봤다. 실상 판결문은 ‘학교가 총학생회장 자격을 제한할 권한이 없다’고 밝히지도 않았고, ‘내규가 문제없다’고 주장한 것도 아니다. 이 문제에 올바르게 접근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왜 각하인지 보면 되는 것이다. 판결문의 핵심인 ‘이 사건 소의 적법 여부에 관한 판단’은 “원고가 이 사건 총학생회를 상대로 하지 아니하고 피고(학교법인)를 상대로 제기한 이 사건 확인의 소는 결국 확인의 이익이 있다고 볼 수 없어 부적법하다”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왜 학교법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법원은 묻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학교법인은 애초에 이해당사자에 끼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불량 학생 ‘찍어내기’ 학칙

결국 이번 사건은 학칙이 문제다. 이미 사문화돼 관 속에 들어간 학칙이 관을 깨고 나와 영향 력을 발휘한 것이다. 내규는 1997년에 제정된 이후 오늘까지 적용된 적이 없다. 내규를 벗어난 대표자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학생자치는 회칙 고유의 영역’이라는 합의가 학생회와 학교본부 사이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는 학칙이 되살아난 것도 모자라 회칙의 우위에 섰다. 최근 학내외적으로 자주 보도되곤 하는 ‘위헌 학칙’도 같은 맥락이다. 학칙은 간행물 발간·대자보·플래카드·집회 등을 허가제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상 사문화됐다가 다시 위세를 떨치고 있는 규정들이다.

규정 자체도 문제이지만, 학교가 자의적으로 규정을 적용하는 것이 더욱 큰 문제다. 이른바 ‘찍어내기’다. 지난 구조조정 때도 계열은 ‘구조조정 공동대책위원회’의 집회 허가 신청을 거부했다. 집회 목적이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것인데 계열이 어떻게 허가를 내주겠냐는 논리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인문대 선관위원 A씨는 “(계열은) 내규 조약 자체가 지켜지지 않았는데 특별한 조항만을 선별적으로 적용하였고, 사건 직후 학교 홈페이지에서 관련 내규 정보를 열람할 수 없게 삭제하기도 했다”면서 “이런 정황으로 봐서 내규가 ‘찍어내기’ 식으로 적용되고 있는 것 아니겠냐”고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결국 학칙이 개정되지 않는 한 이런 식의 ‘찍어내기’는 언제고 되풀이될 수 있다.

학교본부가 ‘안내’하고 ‘허용’하는 학생자치

학교본부는 이렇게 학칙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학생자치를 옥죄고 있다. 직접적인 무기가 바로 ‘징계’다. ‘학생상벌에 관한 시행세칙’은 ‘학생신분을 벗어난 행위를 하여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킨 자’에 대해서 징계를 내릴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학생신분을 벗어난 행위에는 ▲수업 및 연구활동을 방해 ▲학사업무행정을 방해하거나 지장을 초래 ▲기타 학생의 본분에 어긋난 행위 등이 포함된다. 이번 사건에서 지도위는 선관위의 선거 강행을 ‘학생신분을 벗어난 행위’로 규정하고, 선거를 강행하면 선관위원장을 징계하겠다고 엄포했다. 선관위가 선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선관위 전원 징계’의 압박을 물리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합의한 회칙과 시행세칙에 따라 학생자치를 실시하는 것을 ‘학생신분을 벗어난 행위’라고 규정하는 것은 어불성설 아닐까?

이번 인문대 학생회장 선거 무산은 단순히 인문대만의 일로 볼 수 없다. 그보다는 학생자치에 대한 학교본부의 ‘승리 선언’으로 봐야 한다. 학교본부는 더 이상 학생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학생자치가 약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학생자치는 학교본부에 의해 ‘안내’된다. 홍보실장은 중앙인 커뮤니티에 올린 글에서 ‘학생자치에 관한 이해’를 ‘안내’했다. 홍보실장은 “학생 자치는 학교가 정한 규칙 안에서의 자치가 되어야 한다”면서, “이를 이해하거나 인정하지 않은 채 ‘학생 자치이니 학생들이 합의하면 학교는 아무것도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인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학생자치는 학교본부에 의해 ‘허용’되는 것이기도 하다. 인문대 선거지도위원장이기도 했던 조숙희 인문대학장은 인문대 선관위원과의 면담 자리에서 “자치를 허용은 하는데, 문제는 학칙 내에서 해야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자치를 본부가 ‘허용’하는 영역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학생자치의 현주소가 이번 일로 여실히 드러났다.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것은 징후가 아니다. 학생자치가 무너지고 있다는 징후가 아닌, 학생자치가 무너졌음을 드러내주는 하나의 사건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학생자치가 언제까지나 ‘납작 엎드려서’ 있을 수는 없다. 중앙대에서 학생 자치에 허락된 땅은 이제 한 뼘 정도이지만, 다시 모든 땅을 되찾기 위해서는 한 뼘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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