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칼럼]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탱

4월 어느날, 민속학과 학생으로서 듣는 ‘학문단위 구조조정 계획’은 익숙하면서 동시에 낯선 단어였다. 이렇게 모순된 말도 없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만큼 민속학과 학생들과 교수, 동문들에게 구조조정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을 잘 표현할 수도 없을 것이다. 내가 입학한 2010년, 입학식이 있던 날, 나를 비롯한 신입생들은 학과가 없어진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한 강의실에 모여 앉아 들뜬 마음으로 있던 신입생들은 한 선배로부터 이러한 이야기를 전달 받자 마치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시간이 많이 지났어도 그때는 생생히 기억난다. 그만큼 나를 비롯한 같은 학번 친구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다행히 과는 없어지지 않고 아시아문화학부에 편입되었고 이내 구조조정은 기억 속에서 잊혀갔다. 그러다 올해 2013년, 4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등장한 구조조정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을 다시 떠오르게 했다. 그렇지만 이번 구조조정이 주는 무게감은 그때와 비교도 안 되었다. 이렇듯 이번 구조조정은 익숙하지만 낯선 것이었다.

이번 년도 민속학과 학생회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4월 초 이렇게 묵직한 구조조정 소식을 듣고 그다지 절망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구조조정을 강행하겠다는 학교측과 이런 저런 대화를 서로 나은 방식으로 이끌어갈 여지가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년간 민속학과는 많은 변화를 해 왔다. 2년간의 치열한 요구 끝에 같은 아시아문화학부의 일어일문학과, 중어중문학과와 마찬가지로 6명의 특기생을 새로 받아들였고, 학과 명칭 또한 민속학과 같은 궤도에 있는 학문인 비교문화학이라고 개칭하기로 했다. 또한 올해 민속학 수업을 듣는 학생들도 작년 2개년과는 다르게 크게 많아져 30명 가까이 되었다. 구조조정 대상에 올라온 다른 학과들도 그렇겠지만, 학부제라는 현실에 안주하고 있지 않고 변화를 거듭했다. 더불어 학교측에서 내세우는 객관적인 근거는 ‘해당학과의 인원 선택율이 적다.’ 가 전부였기 때문에 대화로 잘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내 생각은 확고해졌다.

그렇지만 이러한 생각이 너무 순수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공식적인 창구를 통해 들은 것도 아니고, 순전히 구조조정에 대한 ‘소문’이었지만 중요한 일인지라 확실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더 기다릴 것도 없이 바로 다음 날 아침 9시, 인문대 학생회장과 함께 인문대행정실을 찾았다. 인문사회계열 부총장과의 직접 면담을 위해서였다. 의외로 면담은 쉽게 허가가 났지만, 제대로 된 면담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좀 더 정확히 상황을 설명하자면 정상적인 대화가 단 한 순간도 이루어질 수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구조조정에 후퇴는 없다. 무조건 폐과다.” “구조조정 대상과 어떻게 소통을 하느냐.” 등이 들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말이었다. 이것저것 준비해 온 여러 자료들은 모두 소용이 없었다. 1시간의 면담이 끝난 후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 이 사실을 학생들에게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리고 특히 신입생들에게 이걸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지 눈앞이 깜깜했다. 아마 내가 10년도에 느꼈던 그러한 당혹감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맘이 무거워졌다. 아무튼 확실해진 것은 소문이 사실이었다는 것과 구조조정이 폐과를 의미한다는 것, 그리고 학교측은 소통할 의사가 일말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 뒤로 하루도 쉴 새 없이 움직였던 것 같다. 만나도 아무 소용없는 부총장님과 만남도 성실히 했다(물론 대화가 아닌 만남이었다. 왜냐하면 부총장님은 앞서 밝혔듯이 구조조정 대상과는 절대 소통할 수 없다는 의사를 너무나도 확실히 밝히셨기 때문이다). 인문대 학생총회는 물론 총학생회가 주최한 학생총회를 성사시키기 위해 전력을 다 했고, 아시아문화학부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총회를 열어 상황을 과장 없이 성실히 알리기도 했다. 또한 학과 교수들과도 이야기를 해 폐과를 대체할 만한 여러 의미 있는 대안들을 만들어 나갔다. 이 모든 일들이 단 10일 만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만큼 쉴 새 없이 움직였고 개인적으로는 수업을 비롯한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했다.

결국 두 번의 총회를 성사되게 하였고 민속학과 측에서 제시한 여러 대안들도 서면으로 제안했다. 민속학과를 꼭 지망하고 싶다는 아시아문화학부 신입생들 18명의 결의서도 받았고 이틀만에 전 중앙대학교 학우 3000명 가량의 서명을 받았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소통은 고사하고 학교 어느 곳에서도 듣는 행위조차 하지 않았다. 그것이 주는 무기력함은 단지 나라는 개인 하나만의 것은 아니었다. 민속학을 공부해 왔거나 앞으로 공부하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들의 것이었을 것이다.

나를 비롯한 구조조정, 아니 폐과의 당사자들은 어쩌면 폐과의 여부를 일단 둘째 치더라도 누군가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주기를 간절히 원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여러 사람들의 꿈을 키워오던 학문의 공간이 하루아침에 누구와의 상의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이 주는 절망감이나 박탈감에 제발 귀 기울여주기를 말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학교의 입장이 한결같다는 걸 알자 우리의 목소리를 학교에 내는 데 온 힘을 다했다. 본관 앞에 천막을 쳤고 언론에 우리 사실을 알렸고 학우들에게 호소했다. 천막에 들어가 시간을 보낼 때마다, 회색의 크고 차가운 본관 앞에 초라하게 쳐진 천막은 우리와 닮아있다고 느꼈다. 학교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결국 학교는 학칙에 명시된 절차이자 해당학과 구성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기구인 평의회를 건너뛰고 이사회에서 폐과를 결정했다. 법원은 두 번의 판결에서 학교 편을 들어주었다.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것이 법의 간결한 판결이었다. 결국 11월 어느날, 법적인 투쟁을 포함한 구조조정 투쟁은 모두 마무리 되었다. 지난 7개월, 짧지 않은 시간이었고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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