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칼럼] 피곤함이 피곤한 사람들

| 대학원생

일어나서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페이스북에 접속한다. 간밤에 새로 업데이트 된 소식들을 훑고 지나간다. 친구가 올려놓은 재밌는 글, 이성친구와 기념일사진을 올린 녀석에게 ‘좋아요’도 눌러준다. 정치적인 기사를 링크 걸어놓은 친구는 그냥 지나친다. 맨날 올리는 그런 얘기, 어차피 보지도 않는데 차단을 해놓을까 싶다가 귀찮아서 그냥 둔다. 학교에 가는 지하철에서는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한다. 어제 있었던 프로스포츠 경기 결과를 쭉 확인한다. 연예인들의 가십 얘기도 꼼꼼히 읽어본다. 정치, 경제, 사회 기사는 클릭해보지도 않는다. 그런 건 뭐 하러 보나 싶다. 귀찮은데…

이게 오늘 아침 내 모습은 아닌가? 사소한 일상의 단면 같지만, 많은 사람들은 은연중에 정치를 기피하고 혐오하고 있다. 한 번 만나 본 일도 없는 사람들과 SNS를 통해 친구를 맺고, 내 인생에 크게 상관도 없는 연예인들의 일상에는 관심이 많지만, 정작 세상을 바꾸고, 내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정치에는 무관심하다. 왜냐하면 ‘피곤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피곤한 일이 많은 세상이다. 대학에만 진학하면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다는 부모님과 선생님의 말씀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과제는 많고, 팀플하면서 조원들과 다투는 일도 지친다. 학교 시험만 해도 머리 아픈데, 월말마다 토익시험도 봐야하고, 부모님께 용돈 타 쓰는 일도 눈치 보여서 아르바이트도 해야겠고, 피곤하다. 그렇게 해서 졸업을 하면 뭐하나. 선배들 보니까 취직하는 것도 어렵더라.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그런데 ‘정치’까지 신경을 쓰라고? 정말 피곤한 얘기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정치’에 관심을 가지라는 건 어쩌면 무리한 요구일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아도 피곤한 세상인데, 진지하게 고민하고, 내 일이 아닌 일에 관심 가지며 에너지를 쏟는 일을 하고 싶지는 않다. 누가 옆에서 진지한 얘기를 하면 오글거리고, 듣고 싶지 않다. 가치판단을 해야 하는 일 자체가 피곤한 일이 되어버렸다. 결국 우리에게는 ‘옳고’ ‘그른’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 대신, ‘좋고’ ‘싫은’ 감정만 남게 되었다. 직관적이고 즉흥적인 ‘감각’만 남았다.

덕분에 현장에서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참 편해졌다. 나쁜 짓을 해도 국민들이 크게 관심 갖지 않으니 죄책감 같은 것을 느낄 필요가 없다. 부정한 행위로 권력을 차지하더라도 몇몇 관심 갖는 사람들만 적당히 막아내면 된다. 어차피 그 관심이 오래 가지도 않는다. 피차 피곤하고 귀찮은 일이라는 걸 아니까. 그리고 유별난 누군가가 부정행위를 끈질기게 추적해오면 다른 부정행위를 터뜨리면 된다. 그렇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피로도를 높이고, 결국 사람들에게 이 일이 ‘옳고 그른’ 문제로 남기보다는 ‘좋고 싫은’ 문제로 귀결시킨다.

예를 들어, 선거 과정에서 권력기관이 개입했다는 것을 수사기관이 밝혀냈는데, 이 문제의 ‘옳고 그름’을 판단해 내도록 국민들에게 전달하기보다, ‘우리 편’과 ‘남의 편’으로 갈라놓고 ‘좋고 싫음’을 판단하게 만든다. 쉽게 넘어오지 않으면, 정보기관에 보관 중인 기밀문서도 공개해 버린다. 이 문제 역시 ‘옳고 그름’의 문제이지만,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좋고 싫은’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노동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어느 사업장에서 파업을 한다고 하면, 노동현장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한 ‘옳고 그름’을 판단해내야 하는데, ‘파업은 싫은 것’이라는 ‘좋고 싫음’의 문제로 귀결시킨다. 학교라고 다를까. 구조조정과 같이 당장 내가 당할 수 있는 일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이를 ‘옳고 그름’의 문제로 판단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학교발전은 좋은 것’이라는 ‘좋고 싫음’의 문제로 끝이 난다. 학생회 선거를 보더라도, 최근 몇 년간 기존의 반운동권 총학생회장단이 학교에 잘 보여서 두산그룹에 채용됐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이런 일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는 것은 귀찮은 데 반해, ‘운동권은 싫은 것’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왜 운동권은 안 되는지, 왜 반운동권 총학생회는 필요한지 누구도 고민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피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곤한 현실은 결국 내 문제가 된다. 필자의 후배 중에 운동권을 싫어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은행에 비정규직으로 취업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구조조정으로 인해 해고를 당하고 말았다. 그 이후 은행의 비정규직 노조와 함께 복직을 위해 싸웠는데, 자신도 본인이 그렇게 당하고 나서 지금처럼 변할 줄 몰랐단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학교에서는 3년 전에도 구조조정으로 폭풍이 몰아쳤었다. 그때 구조조정 대상이 아니라고 안심했던 학과 중에 3년 후 지금 구조조정의 희생양이 된 학과도 있다. 또 3년 후에도 나는 아니라고 안심할 수 있나?

지금 이 순간 정치에 관심 갖는 것, 지금 당장 내 눈앞에 펼쳐진 현실이 아니더라도 ‘옳고 그름’을 분별해내는 것, 지금 내 현실이 조금 피곤하더라도 그 피곤함을 극복하는 것이, 훗날 정말 피곤한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계속 피곤하게 살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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