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그래도 오프사이드가 아니다

| 김펄프

11월 15일, 한국과 스위스가 국가대표 축구 평가전을 치렀다. 결과는 한국의 극적인 역전승이었다. 2006년 월드컵 이후 7년만의 설욕전이었다. 그런데 스위스 전을 앞두고 주목받은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신문선 명지대학교 교수다.

그는 2006년 월드컵 이후 해설계에서 거의 버림받았다. 당시 한국과 스위스 경기에서 있었던 ‘애매한’ 상황에 대해 스위-스를 ‘두둔’하는 입장에 섰다는 이유였다. 한국 선수 한 명이 수비 과정에서 공을 한국 골대 쪽으로 찼고, 마침 그쪽에 서 있던 스위스 선수가 그 공을 받아 득점한 상황이었다. 이때 스위스 선수의 위치가 오프사이드 위치였기에 부심이 오프사이드 깃발을 들었다. 이를 본 한국 선수들은 자연히 수비를 멈췄다. 그러나 득점은 그대로 인정됐다. 주심이 경기를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은 졌다.

축구 규칙에,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더라도 같은 팀이 아닌 상대 팀이 공을 넘겨준 경우에는 오프사이드를 불지 않는다. 특히 이 상황에서 한국 선수의 킥은 굴절됐거나 한 상황이 아니었다. 주심은 이 상황을 정확히 봤고, 부심의 판정에도 불구하고 경기를 멈추지 않은 것이다. 경기 이후 한국엔 엄청난 분노가 끓었다. 심판의 오심이라거나, 스위스의 ‘돈질’이라거나, 당시 피파 회장이 스위스 사람이라는 이유로 편파적이라는 비난들이 남발했다. 피파에 10만 명이 서명하면 재경기가 가능하다는 낭설이 떠돌았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지독하게 비난받은 것이 신문선이었다. 그는 이 상황에 대해 오프사이드가 아니라고 얘기한 것이다. 그는 한순간에 ‘매국노’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에게 합리적인 것은 ‘우리나라’ 같은 게 아니었다. 오직 합의되고 명문화된 ‘룰’만이 합리적인 것이었다. 그는 그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아니, 굽히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왜냐고? 룰이 그렇게 정하고 있으니까. 다른 요소는 그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요즘 한국사회는 광기에 휩싸여 피파에 청원을 넣겠다던 당시 사람들을 자꾸만 떠올리게 한다. 과거엔 ‘진실’만이 무기였다. 명확한 진실은 해석의 여지를 두지 않았다. 진실은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보여지는’ 것이었다. 진실이 권력이었다.

요즘은 명확한 진실을 두고도 해석이 시도된다. ‘국정원이 정치댓글을 달아 대선에 개입했다’는, 이미 밝혀진 진실에 대해서도 ‘그것을 개입으로 볼 수 있느냐’ 따위의 해석이 끼어든다. ‘노무현이 NLL을 포기한다는 발언이 대화록에 없다’는, 이미 대화록이 다 공개돼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진실도 “’NLL 문제 치유’라는 말이 곧 포기 아니냐”면서 해석을 요구한다. 대학이라고 다른가. ‘학생회는 학교법인과 별개의 학생자치단체로서 비법인사단에 해당한다’는 명백한 법원 판결문을 두고도 학교본부는 해석을 요구한다.

근대가 그토록 신망했던 합리성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여전히 찾아볼 수 없다. 합리성을 의심하는 포스트모던 철학이 유행이라지만, 사실 이 나라에는 의심해야 할 합리성이라는 대상조차 없는 것이다. 그러니 한국에서 포스트모던은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든다. 갈릴레이 갈릴레오의 시대도 아닌데, 신문선은 여전히 ‘그래도 오프사이드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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