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바통타-치

캡처2

| 짱큰콩

다큐멘터리 <탐욕의 제국>을 보았다. 영화는 여고생들의 졸업식 장면으로 시작한다. 마냥 신나 보이는 목소리와 표정들이 한창 이어진다. 그때 어떠한 불쾌한 소음이 장면 사이를 비집고 나온다. 하얀 공간에 몇 몇 사람이 지나간다. 그들의 전신을 감싸는 하얀 방진복은 두 눈 위치에 난 구멍만 빼면 어떠한 빈틈도 없어 보인다. 하얀 방진복, 하얀 방진모, 하얀 마스크를 쓴 여공들. 이들 대부분은 여고 실업반을 졸업하자마자 삼성 반도체 공장에 들어왔다. 방진복을 입고 하루 12시간 ‘클린룸’에서 일한다. 기숙사가 있고 남들보다 높은 임금이 나온다기에 묵묵히 일해 왔다. 영화는 이 모든 설명을 ‘설명’하지 않는다. 자막도 나레이션도 전혀 없다. 오로지 살아있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들의 증언과 투쟁의 과정을 담은 영상이 전부다. 그 사이의 공백, 차마 드러나지 않은 너머의 무언가는 오롯이 관객의 몫으로 남는다.

감독은 말하는 것 같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여기 그들이 살아있음과 그리고 죽은 이들 자체가 증언인데 다른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느냐,고 말이다. 마치 아우슈비츠처럼. (실제로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들 사이에서 그 방은 아우슈비츠라 불린다고도 한다.) 주 증언자는 세 명이다. 故황유미씨, 故김경미씨, 한혜경씨. 2007년 백혈병으로 고인이 된 故황유미씨는 그 존재와, 생전에 기록해둔 다이어리로 말한다. 살아있는 이들의 증언이 계속되고, 그 중간 중간 다이어리의 전문이 화면 가득 나타난다. 거기에는 처음 일을 시작할 때의 떨림부터 이후 겪는 아픔까지 모두 담겨있다. 그것이 주는 정서적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故김경미씨는 다큐멘터리 촬영이 계속되던 와중 돌아가셨다. 2년, 멀쩡했던 사람이 시름시름 앓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버리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다. 병원에 입원한 故김경미씨는 영화의 후반부 어딘가부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궂은 날씨, 장례 차량이 도로를 맴돌았다. 故김경미씨의 남편이 그 자리에 앉아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철저한 관찰자적 시점의 시각은 때때로 너무 답답하지만, 그만큼 숙연하게 한다. 감독의 시선에 따라 우리 또한 잠자코 지켜 볼 수밖에 없다. 한혜경씨는 뇌종양에 걸려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두 다리로 몸을 지탱하기도 힘들다. 노래를 좋아하지만 더 이상 부를 수가 없고, 재판 자리에서 겨우 만난 삼성 임원에게 하소연하지만 그는 묵묵부답이다.

故황유미씨의 아버지, 故김경미씨의 남편, 한혜경씨의 어머니를 비롯한 남은 가족들의 투쟁은 계속된다. 한국사회에서 ‘삼성’을 상대한다는 것은 개인에게 너무나 버거운 일이다. 게다가 근로복지공단이 그 사이에서 떡하니 버티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대한 보상을 하고, 산재보험 및 산재의료 등의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됐지만 실상은 다르다. 보상 건수를 하나라도 줄이기 위해, 산재를 당한 노동자들과 재판에서 붙는다. 승소하면 포상금도 내려온다. 산재 피해자들은 대기업뿐만 아니라 근로복지공단과의 싸움도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먹먹한’ 영화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주는 슬픔만 충분히 느끼고, 궁극적 메시지는 날려 보내곤 한다. 이 영화가 다루는 문제의 궁극적 문제는 무엇일까. 대기업과 ‘발전’에 대한 맹목적 신뢰? 신자유주의 경영논리? 어쩌면 우리 모두 동조자일지 모른다. ‘무노조 성공 신화’ 자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산재’를 너무 쉽게 개인화시킨 것은 아닌지. ‘공공기관’일수록 더 ‘효율성’을 따져야한다는 논리는 애초 ‘공공기관’의 목적을 이탈시키기도 한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가만히 앉아 ‘안타깝다’라는 ‘편안한’ 시선을 보내기보다 생각과 행동을 전환하는 것이다. 故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는 언제 어디서나 ‘제대로 된 노동조합이 있었더라면 우리 유미는 백혈병으로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앞이 깜깜한 분들을 위해 마침 소개해줄 단체가 있다. 단체이름은 ‘반올림’이다. 반도체 노동자 인권 모임이다. ‘산재 진상규명’과 ‘노동기본권 쟁취’라는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얕은 단계에서의 후원부터 직접 활동까지 가능하다. 영화는 끝났지만 영화 속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수많은 증언이 눈과 귀를 통해 다가왔다. 남은 것은 어떠한 단계에서든 실천하느냐, 외면하느냐 둘 중 하나일 것이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