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우리를 위해 청소노동자와 연대하다

| 빗자루

개강이다. 정신 없을 것 같다. 각 건물에 흩어져있는 강의실 위치도 익혀야 하고, 새로운 길 적응도 해야 하지, 그 와중에 수업도 열심히 들어야 하니 말이다. 그렇게 정신 없이 3월을 보내고 나면 날씨가 조금 따뜻해져 있을 테고, 그때 즈음이면 사람들과 ‘중앙마루’에서 삼삼오오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낮술을 마시기도 할 것이다. 어쨌거나 어느새 3월이 되었고, 찌는 무더위가 찾아오기 전까지 한동안 우리는 꽤 비슷한 일상을 경험할 것이다. 2014년 봄, 중앙대학교 캠퍼스라는 같은 시/공간에서 말이다.

앞에서 잠시 언급했던, 머지않아 우리가 함께 둘러앉아 봄의 흥취를 나누게 될 바로 그곳 ‘중앙마루’에서 작년 9월 27일 ‘중앙대 비정규직 노동조합’ 출범식이 있었다. 출범식에는 노동조합에 속한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그들을 지지하는 학생, 교수 등 여러 학내 구성원들도 함께 참석했다. 각지에서 모인 여러 대학 청소노동자들도 출범식에 와서 마이크를 잡고 그들을 응원하고 가기도 했다. 그동안 학우들의 여가 장소로만 쓰였던 그 ‘중앙마루’는 그날만큼은 엄청난 정치적 공간으로 변신했다.

선언문은 “유령이었던 우리, 용기 내어 여기 우리가 있음을 선언합니다”라고 시작했다. 비정규직 노동조합 출범 이전 중앙대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은 건물 내부 청소뿐만 아니라 외곽청소까지 감내해야 했다. 지하, 계단 아래 좁은 공간에서 휴식 아닌 휴식을 해야 했고, 업무량이 너무 많아 출근시간보다 2시간 정도 이른 5시부터 나와야 일을 끝낼 수 있었다. 계약서엔 “작업 도중 잡담이나 콧노래를 삼가며 휴식 시 사무실 의자 및 쇼파 등에 앉아 쉬지 않도록 한다”는 악법 조항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인간답게 살고 싶었던 청소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어 노동조건의 개선을 요구했다.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받게 해달라는 외침은 번번이 묵살되었다. 용역업체와 교섭을 체결하려고 시도했지만 매번 결렬되었고, 중앙대는 책임을 회피했다. 이에 노동조합은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파업에 돌입했다. 해결해주겠다고, 기다리라고 한 총장을 총장실에서 기다리던 청소노동자들은 ‘업무방해’이니 퇴거하라는 학교의 요구에 복도로 밀려났다. 거기서 다시 농성을 진행했지만 또 다시 나가라는 요구만이 돌아왔다. 결국은 건물 밖으로 나와 차디찬 바닥 위에 천막을 세우고 그곳을 지켰다.

청소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했던 시기는 마침 시험기간이었다. 학생들은 더러워진 학내를 보며 불평을 쏟아냈다. 하지만 청소노동자들이 쓴 “시험기간인데 청소 못해줘서 미안해요”라는 내용의 대자보를 보고 먹먹해진 마음으로 이내 수많은 지지를 보내왔다. 청소노동자들과 학생들은 그렇게 대화를 이어갔지만 중앙대는 청소노동자들을 외면하고 짓누르는 조치를 취했다. ‘파업 중인 청소노동자가 본관에서 퇴거하지 않을 시 교내에 대자보를 붙이거나 구호를 외칠 경우 1회에 100만 원을 배상하도록 하라’고 법원에 요청한 것이다.

많은 학생들이 ‘백만 원짜리 자보’를 붙이며 학교 측의 태도를 비판했다. ‘의혈안녕기금’을 만들어 청소노동자를 응원하고, 학교를 비판하는 자보, 피켓을 붙이거나 구호, 노래를 외칠 때마다 백만 원씩 채워 나갔다. 중앙대학생뿐만 아니라 타 학교 학생, 직장인, 사회운동가 등이 응원한 덕에 3억 원이 넘는 ‘의혈안녕기금’이 모였고, 총장에게 기금을 전달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이런 의문을 품을 것이다. “학생들이 도대체 왜 이런 일을 하는 거지? 그래서 뭐?” 대학 입시에서 벗어나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청춘’들에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의미 없게 여겨질 수도, 자신과는 상관없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학을 다니는 동안 ‘캠퍼스 라이프’와 공부는 잠깐이다. 일을 하고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는 것이 오히려 평생의 문제다. 그런 점에서 20대를 시작하면서 ‘노동’을 고민하는 것은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10명 중 2명은 백수라고 한다. 그러니 10명 중 8명 안에만 들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성공적인 취업을 위해서 옆에 있는 친구 9명 중 2명만 이기면 되겠다고 생각하시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20대 10명 중 2명은 백수, 나머지 2명은 재학 중인 학생들이다. 그러니까 실제로 취업을 하는 사람들은 10명 중에 6명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대학에 들어왔다는 점에서 적어도 우리 또래 간의 경쟁에서 10명 중 8명 안에는 든 셈이다. 그러니 지금처럼만 계속 경쟁하면 안정적인 미래가 보장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리 녹록치가 않다.

위에서 언급한 실제로 취업을 하는 사람들-10명 중 6명-사이에서 다시 상용직과 임시직 노동자로 나뉘게 되는데, 전체적인 비율로 따져보면 정규직(상용직)이 되는 사람은 사실상 6명 중 3명, 즉 50%에 불과하다. 비정규직은 말 그대로 정규적이지 않은 직업으로 기존의 직업보다 고용형태가 불안정하다. 매일매일 근무처가 바뀌는 경우도 있고, 나를 고용해 다른 곳에서 일하게 하는 간접고용의 형태, 몇 년마다 고용주과 계약을 다시 해야 하는 형태가 있다(물론 잘릴 수도 있다). 이렇게 비정규직이 당연시되는 사회에서 삶의 불안정성이 점점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정말로 무서운 이야기이지만 지금 당신 옆에 앉아있는 사람이 비정규직이 되지 않으면 당신이 비정규직이 된다. 이런 쳇바퀴 같은 경쟁구도 속에서 둘 중에 한 명은 불안정한 삶을 벗어나기가 힘들다. 아니 오히려 그 경쟁구도에서 살아남은 사람도 그 경쟁에서 ‘이긴’ 것이 아니다. 지금의 현실에서 나 혼자 잘 살겠다는 희망은 버리는 것이 좋다. 당신이 부모운을 로또로 맞은 것이 아니라면 당신의 노동은 항상 평가절하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우리는 남들을 밟고 자신만 잘 해보려는 노력보다는 함께 좋은 터전에서 살아볼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를 찾아보는 것이 옳다. 가난해지는 사람들은 끝없이 가난해진다. 계속 노동을 해도 가난해지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내 뒤로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경쟁에 이긴 자든 그 경쟁에서 도태된 자든 최소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앞서 언급했던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과 대학생의 ‘노동’은 별반 다르지 않다. 대학생은 단지 노동자로서 일하기를 몇 년 보류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학생에게 유리한 태도는 어쩌면 지금의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해결해 나가려는 태도인지도 모른다. 미래에 당신이 노동자가 됐을 때, 조금이나마 나은 조건에서 일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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