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쫑긋쫑긋] 김태윤 감독을 말하다

| 세안세다

“문제가 끝나지 않았으니까 영화를  만든 거예요”

* 2014년 2월 6일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했다. 2007년 삼성 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세상을 떠난 고 황유미씨의 아버님 황상기 씨가 삼성에 맞서 딸의 죽음의 이유를 증명해 나가는 과정을 담았다. 개봉 후 상영관이 확보가 잘 되지 않는 상황에 단체관람을 하는 관객들에게 무대인사를 하러 온 감독 김태윤 동문을 대한극장에서 만났다. 그는 다짜고짜 일어일문학과가 구조조정으로 사라지지 않았냐고 물었다. 아시아문화학부에 일어일문전공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하니, 혹시 돈이 안 되는 학문이라 그런 거냐고 물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외에도 이것저것 학교의 상황을 하나하나 물어보는 그의 눈빛엔 학교에 대한 깊은 애정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본인 소개 부탁드려요.

뭐라고 소개해야 하죠? 본인 소개라. 저는 영화만드는 평범한 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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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도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여러 방면으로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했어요. 2학년 때는 중앙대 오케스트라 동아리 ‘루바토’ 회장이기도 했죠. 주변에서 안 어울린다고 생각들 하셨는데 그냥 좋으니까 좋은 걸 하고 싶어서 했을 뿐이었어요. 사회문제도 그중 하나였고요.

과 선배들하고 친했는데 소위 말하는 운동권 중에서도 좀 소수적인 사람들이었어요. 그 선배들이 좋았어요.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학창시절 선배들과 함께 봤던 노동영화들을 떠올리며 작업하기도 했어요. <파업전야>라든지, <청년 전태일>이런 거요. 이 사회에서 노동자가 무엇인가,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가, 88년의 <파업전야>와 2014년의 <또 하나의 약속>은 뭐가 달라졌는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여전히 노조가 없는 회사가 있고 여전히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잖아요. 달라지지 않아 더 슬픈 거죠.

삼성을 비판하는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우려가 많았을 거 같아요.
겁을 주는 거죠. 영화하는 사람들은 어쨌거나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고 함에도 불구하고 영화판을 대기업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네가 자본에 반하면 안 되고, 다음 영화 하기 힘들다’ 이런 이야기들을 하거든요. 심지어 물리적으로 공격이 들어올 수도 있다면서 조심하라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영화를 너무 많이 본거라고 비웃었죠. 그런데도 처음에는 저도 무섭고 겁이 나긴 하더라고요. 집 앞에 낯선 사람이 서 있으면 ‘혹시 미행당하는 건가?’ 아니면 ‘전화기가 도청되고 있진 않을까?’ 했어요.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로 우리에게 이런 두려움이 익숙해요.

반면 사회고발적 측면에서 영화를 기대하고 보신 분들 중에서는 갑-을 관계라든가 대기업의 횡포에 대한 부분이 오히려 좀 덜하다고 아쉬워하는 분들이 있어요.
삼성이 ‘절대악’으로 표현되는 거에 대한 경계가 있었어요. 삼성을 삶의 터전으로 해서 노동하는 사람들이 있고 가족을 부양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절대악’을 위해 부역하는 사람들인가?’ 라고 했을 때 그렇다고 표현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죠. 실제로 삼성에서 정말 많은 분들이 후원해주셨거든요. 간부급의 사람들도 해줬고요. 트위터 같은 데도 보면 작업환경이 실제로도 그랬다든가, 그때는 몰랐다든가, 냄새가 너무 심했다든가 하는 증언의 트윗들이 올라오고요. 또 영화 표현상의 문제로써 삼성을 ‘절대악’으로 그려내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죠.

말씀하셨듯이 <또 하나의 약속>은 제작두레라는 방식으로 모든 제작비가 시민들의 후원으로 마련되었잖아요. 사람들이 어떤 생각에 모였다고 생각하세요?
처음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할 때 ‘한번 써 보자. 쓰고 나서 무슨 일이 일어나나 해보자’ 라는 생각이었어요. 시나리오를 만들고 나니까 스텝이 붙고 배우가 붙고, 제작두레 했더니 후원이 들어오고, 개인투자자도 붙고 영화가 되고 나서 부산영화제에서 상영하니까 배급사도 붙고, 상영도 되고. 지금 어려움이 있지만 개봉도 되었잖아요.

세상에는 굉장히 거대한 힘이 존재하는데 그 힘이 존재한다면 반드시 다른 편에도 힘도 존재하는 법이에요. 다만 거대한 힘이 뭉쳐져 있다면 나머지 힘은 흩어져있는 거죠. 영화를 만들고 나면 흩어져있는 힘들이 뭉쳐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처음에는 막연했지만 구체화되는 과정에 있어 기분이 좋았죠. 사람들도 이 영화를 통해 ‘연대가 살아있구나’ 라는 걸 느끼는 것 같아요. 사람들에게 출구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고 8개월 동안 인터뷰를 다니고 산업재해나 반도체 등에 대해 공부하셨다고 들었어요. 그 과정들을 거치면서 영화에 어떤 내용을 가장 녹여내고 싶으셨나요.
단초가 되었던 건 아버님을 보면서 들었던 느낌들이에요.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라 말도 잘 못하셨어요. 초등학교도 안 나왔다고 하시더라고요. 근데 5년 계속 싸우고 집회 나가서 이야기하고 생각 정리해 가시면서 단단해지신 거예요. 아버님 보면 항상 즐겁게 웃고 계시거든요. 중간에 합의를 하고 돈을 받았다면 저렇게 웃을 수 있을까, 당당하게 살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이 내용을 영화에 담고 싶었고요. 분명 어려운 싸움이지만 그 분에게는 이 싸움이 대단히 힐링의 과정이었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영화를 만들면서 스스로에 대한 반성도 많이 들었어요. 잊고 있었던 걸 다시 기억하게 됐죠. 그 전까지는 영화 만드는 게 되게 재미없었어요. 창작자로서의 딜레마도 좀 있었고 한계도 있었고요. 아버님 만나고 내가 좋아하고 재미있고 마음에 와 닿는 이야기를 해야 그게 진심인거지, 돈을 주는 사람들에 맞춰서 흥행하기 위해 영화를 만드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더라고요. 인생이라는 게 어느 멘토가 나타나서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래봤자 도움 안 돼요. 결국엔 어떤 대상과 싸워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길을 만들어 나가고 하는 거죠. 그래야 자신의 인생이 생기는 것이고. 저 또한 황상기 아버님을 보고 늦은 나이에 깨닫게 되었어요.

영화에서 충분히 보여주듯이 <또 하나의 약속은>은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이잖아요. 이렇게 영화로 만들어져 스크린에 걸리면 현재의 문제들을 포장해 봉인해버렸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단 우려가 들어요.
문제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를 만든 거예요. 만약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했으면 만들지 않았을 거예요. 끝났는데 왜 만들어요? 그러면 인간승리 휴먼드라마가 되어버렸을 거예요. 도대체 이 싸움이 언제 끝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희생자들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이걸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었어요. 지금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기에 더 의미가 있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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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황유미 씨뿐만 아니라 삼성의 직업병 피해 제보 수는 180여 명, 사망자는 70여 명이다. 제보되지 않은 피해자들도 있을 것이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지난한 싸움의 시간동안 서울행정법원은 2011년 6월 23일 고 황유미 씨, 고 이숙영 씨의 백혈병은 여러 독성 화학물질 및 방사선 노출로 인한 업무상 재해라고 판정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과 삼성전자가 곧바로 항소하여 2014년 2월 현재까지도 항소심이 계속되고 있다.우리나라는 산재 입증의 책임은 노동자에 있다. 회사 측의 과실로 산업재해가 생겼을 경우 회사는 이 입증의 책임이 없어 문제를 회피하기 마련이니 노동자들이 산재를 인정받기란 정말 고된 일이다. 다른 증명이 필요 없다. 영화에 나온 대사처럼 ‘그들의 삶이 곧 증명이다’고 황유미씨뿐 아니라 스러져간 수많은 노동자의 죽음이 증명이다.

영화가 개봉하고 새로운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영화를 본 사람들, 함께 눈물을 흘린 사람들, 이들 모두에게 영화의 메가폰이 쥐어져 있다. 오는 3일부터 고 황유미 씨의 추모기간이다. 6일 6시에는 서울역 광장에서 추모문화제도 있다. 더이상 황유미 씨의 죽음이 외롭지 않도록, 지난한 시간을 싸워온 황상기씨의 걸음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가 함께 걸어갈 때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영화를 보기를 권한다. 만약 그 영화가 당신의 마음을 움직였다면 ‘반도체 노동자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의 싸움에 큰 연대와 지지를 부탁한다.

 

김태윤에게 ‘중앙대’란?
‘안타까움’. 학교 떠난 지 오래돼서 두산이 학교를 어떻게 가져갔는지는 과정을 잘 모르겠지만 처음엔 나도 환영했을 거에요. 학교도 좋아지고 건물도 새로 올라가고, 당연히 좋아했겠죠. 그런 게 뭐, 자본의 무서움을 모르는 거죠. 결국 학생회가 와해되면서 지금처럼 학교가 흘러가게 되는 거고. 그런 게 너무 안타까워요. 가끔씩 신문에 올라오는 중앙대 기사보면 도대체 말이 되나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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