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안녕의 나날들, 지금-여기의 우리

| 귀뚜라미

중앙대가 최악의 대학으로 선정되었다. 2014년 2월 25일, 서울시 금천구 가산동 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가 위치한 건물 앞에서 ‘대학, 안녕들 하십니까’의 주최로 대학생 40여 명이 ‘최악의 대학’을 뽑는 행사가 열렸다. 대교협은 전국 200여 개 4년제 대학의 총장단 협의체로 교육제도 및 운영, 학생선발제도 등 대학과 관련된 사항 전반을 논의하며 이를 바탕으로 정부의 교육정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사전공연, 성토대회, 최악의 대학 선발 순으로 진행된 행사는 시상식을 마지막으로 두 시간가량 진행되었다.

‘대학, 안녕들’은 현재 많은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생 교육권 무시, 무분별한 이익 추구에 대교협이 동조하고 있기 때문에 이날 행사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최악의 대학으로 선정된 중앙대의 경우 2008년 두산 재단이 학교를 인수한 이후 중앙일보 대학 평가에서 상당한 순위 상승이라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하지만 동시에 학내 구조조정, 학생징계, 언론 탄압 등으로 끊임없이 잡음이 일고 있다.

한 장의 대자보로 시작된 일련의 흐름의 가운데에 이렇듯 어떻게 봐도 ‘안녕하지 못한’ 중앙대가 있다. 그리고 청소노동자 파업에서부터 학교 측의 일방적인 대자보 철거, 끝내 최악의 대학으로 선정되기까지 방학 내내 고군분투한 ‘의혈, 안녕들 하십니까’가 있다. 2014년, 돌아오는 봄을 앞둔 지금 ‘안녕들’, 특히 ‘의혈, 안녕들’의 행보를 되짚는다. ‘의에 죽고 참에 살자’는 그들의 겨울은 얼마나 뜨거웠을까?

안녕을 묻다

2013년 12월 10일, 고려대에 한 장의 대자보가 붙었다. 작성자는 고려대 재학생 주현우(27·고려대 경영) 씨였다. 현우 씨는 “하 수상한 시절에 어찌 모두들 안녕하신지 모르겠다”며, 철도파업과 밀양 송전탑을 비롯한 사회의 주요 현안에 대한 자기 생각을 흰 전지에 한 자씩 손으로 꾹꾹 눌러 담았다. 이튿날 현우 씨의 대자보 옆에 또 하나의 대자보가 붙었다. ‘미친 세상에서 어떻게 홀로 안녕할 수 있겠느냐’는 내용이었다. “안녕들 하시느냐”는 현우 씨의 물음에 대한 “아니, 안녕 못하다”는 이춘희(25·고려대 정치외교) 씨의 답이었다. 춘희 씨의 대자보 이후 고려대에는 이에 호응하는 대자보 수십 장이 붙었다.

12월 13일부터는 이러한 흐름이 고려대를 넘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성균관대, 중앙대, 서강대, 서울대, 한양대 등 수많은 대학에서 안녕을 묻는 대자보가 걸리기 시작했다. 중앙대와 동양대에서는 교수들이 대자보를 붙이기도 했다. 고등학생, 파업 중인 철도노동자, 성매매 여성 등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도 흐름에 동참했다. 그야말로 ‘대자보 열풍’이었다.

대자보를 붙이는 것만으로 그쳤다면 ‘안녕들’은 그저 작은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여기에는 SNS인 페이스북과 직접행동의 힘이 컸다. 현우 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세 번째 대자보 작성자 강태경(25·고려대 철학) 씨와 함께 물음을 던지는 것을 넘어 직접행동을 결정했다. 이들은 12일 아침부터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자신들의 대자보 앞에 서서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어 냈다. 페이스북 페이지 ‘안녕들 하십니까’가 만들어진 날도 이 날이다. 만든 지 한 시간 만에 페이지 ‘좋아요’ 수가 1천을 넘을 정도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12월 14일, 현우 씨와 태경 씨 등은 고려대 후문에 모여 성토대회를 열었다. 최초의 대자보가 게시된 지 4일째인 이날 200여 명에 가까운 사람이 고려대에 모였다. 페이스북을 통해 소식을 접하고 온 사람이 다수였다. 이렇게 모인 사람들을 바탕으로 ‘안녕들’은 총파업 행사인 ‘응답하라 1228’, 765v 송전탑 건설을 막기 위한 ‘밀양 희망버스’, 최악의 대학을 뽑는 ‘두근두근 러시안 룰렛’, 총회 ‘안녕(安寧)’까지 수많은 직접행동을 만들어 나갔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절묘한 ‘앙상블’이었다.

의혈, 안녕들 하십니까?

12월 13일, 서라벌홀에 중앙대 최초의 대자보가 붙었다. 작성자 김대원(25·중앙대 독문) 씨는 인문학도로서 “배운 대로 주변에 있는 학생들과 청소 노동자 어머니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랑과 응원을 보내려 한다”고 적었다. 이 대자보를 시작으로 수 개의 대자보가 서라벌홀과 법학관 지하 1층에 나붙기 시작했다.

12월 15일, 법학관 지하 1층에 붙어있던 대자보 수 개가 방호원 A 씨에 의해 훼손됐다. 해당 대자보가 학교의 허가를 받지 않았고, 건물의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였다. 그날 저녁, 김규백 씨(24·중앙대 정치외교)는 페이스북 페이지 ‘의혈, 안녕들 하십니까’를 만들었다. 대자보 기록을 위해서였다. 규백 씨는 “학교는 학칙으로 각종 게시물을 사전에 허가받을 것을 강제하는데, 이는 사실상 검열”이라며 “학우들의 소중한 목소리를 모으고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의혈, 안녕들’ 역시 페이스북 페이지를 중심으로 사람을 모았다. 12월 18일, ‘의혈, 안녕들’은 중앙대 청소노동자들의 파업결의대회에 함께했다. 공식적인 첫 일정이었다. 당일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사전 공지를 보고 십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행사를 준비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의혈, 안녕들’ 페이지를 함께 운영할 사람들을 꾸려졌다. 이후 이들은 수차례 온·오프라인 행사를 기획하고 직접행동에 참여했다.

‘의혈, 안녕들’의 활동 중에서 대외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대자보 백일장’이다. ‘대자보 백일장’은 청소노동자들이 집회를 열거나 대자보 부착할 때마다 100만 원씩 걷겠다며 법원에 간접강제 신청을 낸 중앙대 본부에 항의하기 위해 페이스북 그룹인 ‘데모당’과 ‘의혈, 안녕들’이 공동으로 주최한 행사다. 시제는 ‘중앙대 청소노동자 투쟁을 지지한다’와 ‘불통 중앙대를 규탄한다’ 두 가지였다. 이날 행사의 장원은 김현우(20·서울대 언어학) 씨가 차지했다. 현우 씨에게는 ’더 많은 대자보를 쓰라‘는 의미로 대자보용 종이 100장과 펜이 부상으로 주어졌다.

‘의혈, 안녕들’의 목소리가 중앙대 안에서만 머물렀던 것은 아니다. 10여 명의 학생들은 밀양으로 향하는 희망버스에 오르기도 했다. 참가자 중 한 명인 강남규(24·중앙대 정치외교) 씨는 “밀양 송전탑 문제는 주현우 씨의 첫 대자보에도 나와 있는 문제”라면서 “우리가 안녕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참가 의의를 밝혔다.

_꺻뀬_뚡뀫_뉌뀳_뉌뀬_ⓤ꼱_듄넰_뚡뀫___꺻뀬_뚡뀫_뉌뀳_뉌뀬_ⓤ꼱_듄넰_뚡뀫__17

우리의 목소리를 막지 말라

‘의혈, 안녕들’은 고려대를 중심으로 생긴 ‘안녕들’ 이후 만들어진 여러 ‘○○, 안녕들’ 중에서 매우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곳 중 하나다. ‘의혈, 안녕들’은 페이지가 생긴 이후 이틀 걸러 한 번씩 온·오프라인 행사를 마련했으며, 최근에는 중앙대에 붙었던 대자보를 모은 책자를 발간하기도 했다. 이처럼 활발한 활동의 동력은 무엇일까? 그전에, 왜 ‘중앙대, 안녕들 하십니까’가 아닌 ‘의혈, 안녕들 하십니까’일까?

‘의혈, 안녕들’ 페이지를 함께 운영하고 있는 강석남(23·중앙대 사회학) 씨는 “의혈은 중앙대의 또 다른 이름이다”라며 “4.19혁명 때 돌아가신 선배 분들이 있어 지금의 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의혈은 ‘의에 죽고 참에 살자’는 교훈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이름”이라고 그 의의를 설명했다. 석남 씨는 “의에 죽고 참에 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안녕하지 못한 것 같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책자 발간을 주도적으로 이끈 강남규 씨는 ‘의혈, 안녕들’이 활발한 활동을 펼칠 수 있었던 이유로 두산의 재단 인수 이후 축적된 학교 본부에 대한 불만과 청소노동자 파업을 꼽았다. 그는 “두산 재단이 중앙대를 인수한 이후 학교는 많은 부분에서 확실히 발전했다. 하지만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고 지적하며 “효율성만을 강조하며 일방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이를 비판하는 학내 언론을 탄압하기도 했다. 학교와 학생 사이의 권력관계에서 학교가 일방적인 우위를 점하기 시작한 것이다”고 말했다.

또한 “이러한 상황에서 학교가 파업 중인 청소노동자들에게 자보 한 장, 구호 한 번, 집회 한 번마다 100만 원을 지급하라는 간접강제신청을 법원에 내자 많은 학생들이 청소노동자들과 자신들의 처지를 다르지 않은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물음과 만나면서 폭발력을 가지게 된 것 같다”고 남규 씨는 분석했다.

‘의혈, 안녕들’은 현재 봄맞이 문화제를 준비하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서다. 문화제를 함께 준비하고 있는 박혜민(20·중앙대 사회학) 씨는 서로의 안녕하지 못함을 나누는 것을 넘어서 주변에서부터 안녕하지 못한 상황을 바꾸길 원한다. 혜민 씨는 “중앙대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위헌적인 학칙을 개정하는 것이다”며 “이번 대자보 정국에서 드러났듯이 중앙대에서는 말하기 위해서는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학생도 청소노동자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 문제를 꼭 해결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 너, 우리

미국의 어느 인디언 보호구역 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막 부임한 백인 교사가 아이들에게 까다로운 시험 문제를 냈다. 특별히 어려운 문제를 냈다는 교사의 말에 인디언 아이들은 갑자기 책상을 가운데로 끌어당겨 한데 모여 앉기 시작했다. 교사는 부정행위는 안 된다고 아이들을 훈계했다. 그러자 인디언 아이들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교사에게 물었다. “저희는 지금껏 어려운 문제는 함께 힘을 합쳐야 해결할 수 있다고 배웠는데요?”

주현우 씨의 첫 대자보 이후 사람들은 저마다 서로의 안녕을 묻기 시작했다. “하 수상한 시절”에 안녕들 하십니까? 그리고 나아가 안녕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실천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다시 거리로 나서 서로 손을 맞잡았다. 안녕을 고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는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안녕하지 못했던 이유는, 실은 충분히 함께 하지 못했기 때문이니까. ‘나’와 ‘너’가 만난 ‘우리’로서 함께 하기. 이것이 문제 해결의 시작이자 끝은 아니었을까? 이제 3월, 당신의 안녕을 위해서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