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권위에 시비걸기

| 설미

어제까지는 분명히 모르는 사이었는데 갑자기 하루 만에 입학식을 치르고 아직은 어색한 말인, ‘중앙대생’이 되어버렸다. 3월은 설렘과 기대의 한 달임에 분명하다. 각 과 학생회에서는 새내기가 입학한다는 설렘에 새터부터 바쁘게 준비할 것이고, 저기 위 기타 고학번 선배들, 복학생, 갓 선배가 된 13학번들까지도 새 구성원과 함께한다는 기대감에 두근거리곤 한다.

새터에 갔고, 다들 어색한 상태에서 통성명을 하고 지나가던 아무개에게 말을 건다. 술자리가 시작되면 과잠바를 입지 않으면 우리 과인지도 헷갈리는 사람들이 말을 걸고 “마시기 싫으면 마시지마 ^^”라는 영혼 없는 말을 던진다. 설상가상으로 이제는 X맨까지 등장해 ‘나 선배야. 이제 너네 내가 달라 보이지?’라고 내세운다. 정신 없는 눈치싸움이 계속되는 새터가 끝나고 돌아온 캠퍼스 곳곳에는 ”인사 잘 하는 예쁜 새내기가 됩시다”라는 어구가 과방 앞에 살포시 붙어있고, 과방이 더러우면 “후배가 있는데 이런 것까지 해야 돼?” 같은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새내기라는 위치가 뭔지. 다들 뭐 이리 바라는 것이 많은지 한숨이 내쉬어진다. 게다가 동기들은 ‘선배님께 왜 이렇게 예의가 없냐’라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동기들끼리의 기싸움도 장난 아니다.

대학이 배경인 드라마와 영화의 대부분에서 선배가 후배에게 ‘반말’하는 것은 익숙한 장면이기 때문에 ‘이게 무슨 문제야?’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내가 처음에 대학에 들어왔을 때 몇몇 선배들은 나에게 존댓말을 했다. 불편했다. 당연시되는 반말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는 나에게 선배는 후배라고 반말하는 것은 ‘권위주의’라고 말했다. 하지만 ‘권위주의 시대, 권위주의적 군사 문화’와 같은 말들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오히려 권위주의에 대해서 궁금해졌다. 왜 그 선배들은 (혹은 나는) 권위주의를 거부했던 것일까?

먼저 권위주의를 논하기 전에 권위에 대해서 정의 내릴 필요가 있다. 고등학교 때 익숙하게 배웠듯이 권위는 물리적 강제력이 아니라 적절한 권고로 타인을 동(動)하게 하는 힘이다. 이 힘은 권위를 가진 사람의 탁월한 능력이나 카리스마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동의에 의존한다. 이처럼 우리는 각 분야의 전문가에게 교수, 엔지니어라고 칭하며 ‘권위’를 인정한다. 하지만 이렇게 정당한 것에 권위를 주는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주어져있던 특징에 당연하게 권위가 입혀졌을 때, 그것은 권위주의가 되어 차별을 낳는다. 남성이 여성보다 권위자가 되었기 때문에 여성이 억압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었고, 연장자가 권위를 가졌기 때문에 연소자는 그에 따른 ‘예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대학교로 다시 권위주의 이야기를 가져와보자. 대학교에 들어오기 전 우리는 몇몇 소문을 접한다. ‘어떤 과에서는 그렇게 FM을 심하게 시킨다더라.’, ‘오티에 갔는데 큰 목소리로 하지 않으면 울면서 기합을 받을 정도라고 한다.’ 이와 같은 소문은 선배를 통해서, 대학 간 언니 오빠들을 통해서, 먼저 오티를 다녀온 친구를 통해서 전해진다. FM, 집단체벌 등 직접적으로 보이는 권위주의뿐만 아니라 사소하게 하는 한 마디-인사 잘 하는 예쁜 새내기가 됩시다-, 새내기를 아기 다루듯 하는 행동에 권위주의는 심어져 있다. 이런 문화는 학과, 학교의 선-후배, 동기간의 권위주의를 유지시키고 이 권위주의를 심지어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한다. FM이 노래방에서 소리를 빽빽 질러대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거나 권위주의적인 문화가 그냥 재미있으니까 해도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집이다.

이제 권위주의가 왜 문제인지는 알겠고, 대학교 안에서 어떻게 발동하는지도 알겠다. 하지만 ‘다들 저렇게 권위주의적인 질서를 따르고 있는데 어쩌라고? 나 혼자 도태되기 싫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괜히 불편함만 마음에 있고 해결하지는 못해 답답하다. 권위주의를 철폐하자는 둥 기 센 실천을 하면 더욱 좋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의 방식을 거슬러야 하는 이러한 실천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나 또한 어느 순간은 권위주의에 편입해 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래서 더욱 더 경계할 필요가 있다. 권위주의 문제에 맞서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권위주의를 가리키는 화살표가 타인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향하게 하는 것이다. ‘저 선배 권위주의적이야’라고 말하는 것도 때로는 필요하지만 스스로에게 얼마나 권위주의가 깃들어있는지 바라보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내가 살아가는 지금의 문화는 어떠한지, 내 주변 사람들의 모습은 어떤지, 나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환경에서 어떤 것을 제일 먼저 바꿀 수 있는지 고민하자. 자기 자신 안에 있는 그 권위주의 또한 예전과는 같은지(혹은 다른지) 더욱 긍정적으로 변했는지에 대한 잠깐의 생각은 권위주의에서 벗어나는 발걸음이 된다.

답이 너무 모호하다고? 아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답을 알고 있다. 지금까지의 낡은 권위주의를 없애고 치밀하게 스스로를 성찰해 본 이후 건강한 권위만을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것. 그리고 우리가 건강한 권위라고 생각한 ‘그것’에도 항상 의심을 품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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