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세상을 바꾸는 첫 걸음, 연대

| 고구미

나의 목표는 ‘바쁘게 사는 것’이었다. 뭐든지 열심히 하면 내 꿈도, 미래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남들보다 잘하는 것을 찾으려고, 남들보다 잘하려고 발버둥쳤다. ‘좋아서 하는 것’이라는 말로 포장하여 남들에게 조금 더 그럴싸해 보이는 나를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그때 나는 열정적이었고, 꽤 인정받는 학생이었다.
대학에 들어와서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과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했고, 이것저것 해보고 싶었던 활동들에 기웃거렸다. 하지만 생각보다 대학은 그리 낭만적인 공간이 아니었고, 나는 다양한 문제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구조조정, 노동조합, 파업, 징계… 생소한 단어들이 대학에선 끊이질 않았다.

입학 직후부터 몇 개의 학과가 폐과될지 모른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소문은 입학한 지 두 달만에 현실이 되었고, 나와 함께 입학했던 4개 학과 13학번들은 마지막 새내기가 되었다. 학생들은 끊임없이 소통을 원했지만 학교 측은 “당사과 학생들과는 이야기할 수 없다”고 거부했다.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총장실 점거를 택했다.

시험기간이었던 당시에 나는 망설여졌다. 첫 시험을 잘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과 가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겹쳤다. 결국 공강시간에 잠시 들렀다. 그곳에서 듣는 이야기는 충격의 연속이었고, 학과와 꿈에 대한 열정을 토로하는 학생들의 이야기에 총장실을 나오는 내내 울었던 것 같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총장실에 쭈뼛쭈뼛 앉아있다 오곤 했다.

학내 문제는 그치지 않았다.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부당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투쟁에 나섰다. 학생들은 ‘비와당신’이라는 지지모임을 만들었다. 그분들의 존재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않았던 나에 대한 부끄러움이 크게 느껴졌다. 함께 문제를 해결해나가고자 ‘비와당신’에서 서포터즈를 하며 다양한 투쟁에 연대하고 있다.

그렇게 알게 된 것이 ‘연대’였다. 그동안 경험해봤던 ‘봉사’와는 달랐다. 도움을 주고 받는 관계가 아니라, 동등한 위치에 선 주체로써 함께 힘을 모으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는 노력이 있었다. 생소했던 ‘연대’의 의미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연대’는 익숙하지 않다. 한 친구에게 “연대란 뭐라고 생각하니?”라고 물으니, “연세대?”라고 답했다. 연대는 우리에게 이리도 생소하다.

A가 B를 돕는 방식의 봉사가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장 눈 앞에 놓인 일만을 해결하려는 시도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개인의 상황을 개선시키는 것에 갇혀버리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많은 사람이 함께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A가 B를 돕고 B가 A에게 되돌려주는 방식만이 아니라, B가 C와, C는 D와, D는 또 A와 함께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연대’의 힘이다.

다른 학교 노동조합에서 우리학교에 와서 노동자들을 응원하는 것, 밀양의 할매, 할배들이 울산 희망버스에 함께하는 것. 한때 총장실을 점거했던 학생들이 총장실을 점거 중인 청소노동자들을 지지방문하는 것. 이것이 모두 ‘연대’가 만들어 낸 경험이다. 나와 조금 다르거나 같은, 혹은 앞으로 겪을지도 모르는 문제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과 함께하며 힘을 보태는 것이다.

연대는 삶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킨다. 경쟁논리와 기업정신으로 가득한 캠퍼스에도 사람냄새가 난다. 얼마 전, 새내기들과 함께 캠퍼스를 지나가고 있었다. 건물 안에 계시던 청소노동자들이 나를 보시곤 지나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셨다. 1년 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학생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출근시간보다 2, 3시간 먼저 나와 일해야 했던 분들이 이젠 당당히 학교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여전히 많은 곳에서 연대가 이뤄지고 있다. 2월 25일 총파업엔 노동자뿐 아니라 대학생, 청년, 청소년 등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밀양에는 여전히 많은 이들이 방문하여 송전탑을 막아내기 위한 싸움을 하고 있다. 그외에도 많은 사람들의 힘을 필요로 하는 문제는 너무나 많다.

앞으로도 우리는 많은 사건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럴 때마다 함께 할 것인지, 아닌지를 고민할 것이다. 우리를 갈등하게 만드는 상황들도 있을 것이다.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신념들이 학점이나 취업에 가려지기도 한다. 아르바이트와 시험공부에 밀려 정치적인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버리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여러분들에게 함께하자고 이야기하고 싶다. 나의 고민이 무엇인지, 그래서 어떤 것을 원하는지를 함께 나누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 첫 걸음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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