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공간(空間)은 공간(空間)이다

| 세안세다

흑석동 골목골목마다 뭐가 있는지 채 알아가기도 전에 흑석동이 얼마나 먹을 게 없고 놀 곳이 없는지에 대한 푸념을 많이 들었다. “뭐가 없어”, “먹을 데가 없어”, “여기서 뭘 하고 노냐” 라는 말들은 기대했던 대학가의 환상을 어렵지 않게 무너뜨렸다. 내가 입학 전에 가본 대학가라고는 신촌이나 홍대 입구가 전부였고, 그 근방에는 3층 건물 하나 전체로 프랜차이즈 카페가 있다거나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있다거나 검색창에 넣으면 맛집 포스팅이 수두룩하게 달린다거나, 그런 것들이었으니 말이다. 그에 비해 흑석동은 뭐 이렇다 할 만한 구석들이 없었다.

생활공간으로서 흑석동

그러나 나는 이내 흑석동의 매력에 빠지고 말았다. 구불구불한 골목길, 들쭉날쭉한 높이에 알록달록 지붕을 얹은 집들, 한 사람 간신히 통과하는 축축한 바닥의 흑석시장. 그 안에서 40여 년 넘게 부침개를 팔고 떡을 팔아온 사람들. 과 잠바를 입은 대학생들과 일상적으로 섞이는 노인들. 백반 집에서 새어 나오는 밥 짓는 냄새. 20분 정도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바로 나오는 한강. 소박하고 투박하게 공간을 채우는 모습들이 참 따뜻하고 정겨웠다.

흑석동에 빠져든 가장 큰 이유는 생활 공간이라는 면에서다.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흑석동과 닮은 동네에서 자랐다. 집 앞 골목에서 친구들과 땅따먹기를 하고 할머니 손을 잡고 시장에 가 간식을 사먹는 게 나의 재미들이었다. 내가 14살이 되던 해, 동네가 재개발 된다는 소식에 우리 가족들은 이사를 갈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그 동네는 재개발되지 않았고 나는 이따금 그 동네에 놀러 간다. 나를 아직 기억해주는 사람들과 내가 살아온 삶의 기억들을 되짚어 밟아보는 순간들이 내겐 참 소중하다. 그래서인지 그런 기억들을 일상적으로 다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흑석동도 소중해졌다.

요즈음 대학들은 소비의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돈을 주고 먹거나 즐길 수 없으면 그 공간은 가치가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니 계속해서 높은 건물을 세우고 프랜차이즈를 채우고 테마오락공간들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공간들을 돈을 들이면 어디든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반면 흑석동과 같은 생활 공간은 그런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의 삶을 통해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다. 여기엔 오랜 기간 흑석동을 살아온 주민들의 몫도 있지만 고향을 떠나와 타지생활 하던, 하루의 반절을 머무르다 떠나던 나와 당신과 같은 중앙대학생들의 몫도 있다.

공간을 사유하는 사람들

내가 흑석동을 사유하고 더 풍부하게 마주한 데는 페이스북 페이지 <흑석동의 모든 것>의 덕이 컸다. 이 페이지에 칼럼 ‘흑석동의 어느 것’을 연재하면서 흑석동의 구성원과 재개발, 마을 공동체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하고 사람들과 공유하려고 애썼다. 그러다 보니 흑석동을 더 구석구석 걸어 다니며 마음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흑석동 마을 전시회 + 영화제 차곡차곡> 의 영화제 프로그래머를 하면서는 재개발에 의한 마을공동체 해체의 과정들, 마을을 지켜서 남길 수 있는 ‘낡은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사람이 자신의 공간에서 살아간다는 것, 그 삶의 기억을 지켜나간다는 건 이율배반적인 시대의 관점으로는 낡아 보이긴 해도 정말인지 중요한 일이다.

대학가를 소비의 공간이 아닌 삶의 공간으로 사유하려는 노력들은 다른 곳에서도 나타난다. 소비의 공간으로 가장 핫한 대학가 신촌에서도 이런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신촌에 근거를 둔 주민, 학생, 상인, 대학교수, 예술인들은 지난해 11월 ‘신촌재생포럼’을 만들었다. 자본에 잠식된 신촌의 문화를 되살리기 위해서다. 정치의 공간이었던 연세로의 ‘거리’로서 역할을 부활시키고, 도심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립’의 역할을 모색하는 게 그들의 목표다.

서울시립대를 다니는 학생들도 동대문구를 기반으로 마을공동체 ‘동네 활력소’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골목길을 직접 다니며 안전지도 어플리케이션을 만들기도 했다. 지금도 꾸준하게 마을공동체와 청년 사이를 고민하는 공부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달랐던, ‘서울의 겨울’

작년 겨울, 2주간 시청광장에 갈 일이 연달아 있었다. 한 번은 12월 19일 ‘안녕들 하십니까’ 전체 나들이로 ‘대국민 촛불집회’에 갔고, 한 번은 12월 28일 ‘총파업’에 가기 위해서였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광장을 매웠다. 이 광장 중앙엔 ‘서울의 겨울’이란 말이 몇 개 국어로 적힌 벽이 있는데, 그 벽 너머엔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스케이트장이 있다. 벽을 사이에 두고 한 쪽에선 촛불을 든 팔을 흔드는 사람이, 한쪽에서는 중심을 잡기 위해 팔을 흔드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촛불을 흔드는 사람이었고 벽 너머의 사람들이 궁금했다. 지금 저 사람들은 나와 내 동료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싶었다.

다음 주 새해가 된 6일날 친구들이 시청 스케이트장에 놀러 가자고 했다. 호기심이 동해 좋다고 했다. 같은 원을 계속해서 돌면서 내가 전에 왔던 광장과 지금의 광장이 정말 같은 곳이 맞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사람들과 함께 메웠던 공간과 가장 가까운 벽에 붙어 텅 빈 광장을 멍하니 들여다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날 어색해 하기도 했다. 저번 주까지만 해도 시청광장이 내게 정치의 공간이었는데 당장은 소비의 공간이 되어있었다. 벽 하나를 두고 ‘서울의 겨울’은 너무나도 달라져버렸다. 그 안의 나도 너무나 달랐다. 고작 한 개의 벽을 사이에 둔 똑같은 광장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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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空間)은 공간(空間)이다

공간은 ‘영역이나 세계’라는 ‘space’의 의미도 있지만 ‘아무것도 없는 빈 곳’이란 뜻이기도 하다. 흑석동이라는 공간은 비어있다. 이 공간을 어떻게 채우는 지는 당신의 몫이다. 당신이 이 공간에 대해 무엇을 사유하느냐에 따라 무엇이 채워지느냐가 결정된다. 공간(空間)은 공간(空間)이다. 시청광장의 ‘서울의 겨울’이 모두에게, 심지어 한 주의 간격을 두고 나에게도 다르게 다가왔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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