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다시, 또 다시 ‘대학언론’

| 해경

대학에 들어왔다. 3월의 기대와 활기로 가득 찬 캠퍼스 곳곳 조금은 낯선 매체들의 발행물이 보였고, 스피커에서는 학내 방송사의 라디오 방송이 흘러 나왔다. 그제야 대학 안에도 언론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한 신입생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교지편집위원회 활동을 이제 2년째 이어가고 있다.
교지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과 가장 많이 나눴던 이야기 중 하나가 대학언론의 ‘위기’였다. 종이 매체는 그 생명력을 잃고 있다(혹은 끝났다). 학내 구성원이 학내 문제에 무관심한데 대학언론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다. 학교에 비판적인 매체는 탄압당한다. 기성 언론의 프로페셔널이 훨씬 더 좋은 컨텐츠를 생산하는 상황에서 대학언론이 설 자리가 없다. 이런 문제들이 대학언론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갔다.

실제로 많은 대학언론이 독자인 학생에게 외면 받고 있다. 학교에 비판적인 매체는 예산이 삭감되거나 발행을 중지당하고, 수거당하는 등 강력한 탄압을 받아야만 했다. 심지어 학생 사회 내부에서 공격받기도 했다. 대학언론의 영향력은 줄어만 갔다. 폐간하는 매체가 하나 둘 늘어갔고, 많은 매체가 학교 친화적으로 변해갔다. 현재의 대학 사회에서 대학언론의 역할과 의미가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했다. 그리고 그 역할과 의미를 증명해내야만 했다.

몇몇 언론들은 학교 본부와 학생사회에 자신의 ‘안전함’을 호소했다. ‘학교에 비판적인 기사를 쓰지 않는다. 학내 사안에 대한 학교의 입장을 잘 전달한다. 정치적인 색을 띠지 않는다.’ 대부분의 언론사가 학교의 재정 지원에 기대고 있는 현실에서 이들은 생존을 위해 언론으로서의 정체성과 타협해갔다. 학생들에게 읽히기 위해 학내 문제나 정치적인 성격의 글을 배제하고, 정보 위주의 글만 쓰거나 연예잡지의 구성을 답습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얼마간 생명을 연장했을지도 모른다. 당장은 학교와의 갈등을 피하고, 학생들이 책을 한 번이라도 더 손에 쥐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의 정체성을 포기한 대학언론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많은 언론이 학우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방법으로 대중성을 고민한다. 그 고민은 대학언론으로서의 정체성과 대중성 사이의 치열한 논의가 되어야 하지만, 기성 매체가 보여준 것을 답습하는 쉬운 방향으로 전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면에 ‘새내기 메이크업, 연애에 대한 진부한 분석, 맛집 투어’ 등을 싣는 것이 그렇다. 이런 소재들이 학생들의 관심을 한두 번 자극할 수는 있다. 그 효과가 얼마나 갈까. 기성 매체는 동일한 소재를 가지고 훨씬 세련된 컨텐츠를 생산하고, 이 컨텐츠는 스마트폰을 통해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학생들이 기성 매체를 놔두고 굳이 대학언론을 읽어야 할 이유가 없다. 대학언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미뤄두고 어설픈 대중성에 함몰됐을 때, 그것은 잘해봐야 ‘심심풀이 땅콩’이 될 뿐이다.

대학언론의 구조가 학교 본부가 개입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방향으로 변형되고 있는 흐름도 문제다. 학교 산하 기관으로 대학언론이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개입의 공간이 넓어진 만큼 학내에 문제가 생겼을 때 언론사들이 학교를 비판하기는커녕 학교의 입장을 대변해야 할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단기적으로는 자치의 영역을 일부 양보하고 학교에 종속되는 것이 안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바라볼 때 그런 언론들은 이용가치가 사라졌을 때 학교에 의해 언제나 제거될 수 있다. 안전을 위해 자치의 영역을 내주었기 때문이다.

2013년 1학기 인문·사회대의 4개 과(전공)를 폐과하는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2학기에는 용역업체의 부당한 노동조건에 맞선 청소노동자의 투쟁이 있었다. 교지 <중앙문화>는 투쟁의 현장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말할 곳 없어 가려져 있던 목소리를 모아 지면을 꾸렸다. 학내 구성원들의 입장에 서서 문제를 분석하고, 비판했다. 대학언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제대로 해냈을 때, 더 많은 학내 구성원들에게 문제를 알리고, 사회적 관심과 연대를 이끌어낼 수 있다.

대학언론은 학교에서 학내 구성원의 목소리를 공적인 장으로 실어올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이며, 얼마 남지 않은 학교 안의 비판자이다. 비판자가 부재한 공동체는 강자의 힘의 논리에 지배당하고, 그 안에 있는 부정의가 해결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안다. 학교 안에서 학교 본부를 끊임없이 감시하고, 부정의함을 비판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힘의 논리에 의해 억압받는 사람들이 없는지, 학교의 부정의함이 무엇인지 조사하고 분석하고 비판해야 한다. 그것이 대학언론이 잘할 수 있는 일이며, 해야만 하는 일이다.

정치적인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갈등을 피하기 위해 중립이라는 쉬운 길을 택해서는 안 된다. ‘중립’은 갈등 회피에 대한 합리화이자 가치 판단의 두려움에 대한 굴복일 뿐이다. 학교와 학내 구성원 사이에는 커다란 힘의 차이가 존재한다. 힘의 불균형 속에서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약자의 위치에 있는 학내 구성원을 대변하고, 학교를 비판하는 대학언론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다. 언론은 매순간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아니, 학교 안의 비판자로 역할하기 위해 대학언론은 매순간 정치적이어야 한다. 그것이 대학언론의 길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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