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새터, 대학문화의 흔적

 | 덕배

“어느 집단에나 그 집단만의 문화가 있다”는 것은 아주 당연한 말처럼 들린다. 물론 대학에도 대학만의 문화가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 문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는 난망하다. 오늘날 대학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대중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과연 대학 사회의 어떤 요소가 대학문화를 다른 문화와 구별되게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 속에서 흐릿하게나마 손에 잡히는 것은 ‘새터’라는 상징이다. 고등학교의 ‘예비 소집’이나 기업의 ‘신입 사원 연수’와도 비슷해 보이지만 ‘새내기 새로 배움터(이하 새터)’에는 여전히 대학문화의 고유성이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새터의 의미에 대해서 명확한 해석을 내놓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지금 한국 대학에서는 새터를 둘러싼 갈등이 매년 계속되고 있고, 중앙대도 예외가 아니다. 새터는 존폐의 위기에 놓였고 학생사회에서조차 그 의미가 부유하고 있다. 지금, 여기의 대학문화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현재 진행형인 ‘새터 문제’를 다시 한 번 꺼내 생각해볼 수밖에 없다. 80년대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새터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며 지금의 새터 문제가 놓인 지점이 어디인지 찾아가 보자.

새터의 시작과 부흥, 8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새내기 새로 배움터는 1980년대 중반 이후 한국 대학에 자리 잡은 행사다. 당시 대학문화는 곧 주류문화에 저항하는 ‘대항문화’로 설명되었다. 소위 ‘전통적인 대학문화’는 대학 고유의 민중지향적 문화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고, 대학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집단은 “학생운동권”이었다. 지금에 비해 훨씬 동질적인 문화 속에서 ‘대학생’은 비교적 단일한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당시의 새터는 과 단위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과 함께 학생운동의 전통을 전수하는 자리였다. 고등학교까지의 ‘주입식 교육’을 청산하고 주체적으로 사유하기를 ‘새로 배우는’ 자리라는 의미에서 새터라는 이름이 붙었다. 특히 중앙대에서는 4.19 혁명의 전통으로부터 전해오는 ‘의혈’이라는 호명이 가장 중요했다. ‘의혈’이라는 이름은 대학생이 사회의 부조리를 바꿔내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규범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 당시 새터는 대학생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였던 셈이다.

새터를 주관하는 것은 총학생회였다. 대체로 첫째 날은 학과 단위의 활동이 위주였고 둘째 날 밤에는 단과대들이 함께 준비한 중앙공연단의 무대와 ‘대동놀이’가 이어졌다. 단과대 학생회와 총학생회는 새터에서 등록금 인하나 교육 여건 개선과 관련된 ‘교육 투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새내기들은 대학 사회의 ‘정치적 주체’로 호명됐다. 특히 새터의 절정인 ‘대동놀이’에서는 서로 다른 단과대에 속한 학생들이 넓은 운동장에 나와 서로 손을 잡고 운동장을 뛰면서 집단의식을 고취했다. 이렇게 공유된 ‘집단적 경험’을 통해서 학생 운동의 정치적 공간이 창출될 수 있었다.

새터 변화의 과도기,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중반

‘전통적 대학문화’에 기반해 그 문화의 생성과 전수를 담당했던 새터는 90년대 중반 이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대학 진학률이 80%에 육박할 정도로 급격히 상승한 상황에서 더 이상 대학생들은 동질성을 유지할 수 없었다. 한국사회에서 대학생은 ‘엘리트 지식인’과 동의어가 아니게 되었다. 대학 사회에서 학생 운동권들은 점차 헤게모니를 잃어가고 여러 대학들에서 ‘비운동권 총학생회’가 당선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변화한 대학문화가 즉각적으로 새터의 형식을 바꾸지는 못했다. 이 괴리는 새터의 기능 약화로 이어졌다. 구성원의 문화적 배경과 정체성이 변화했으나 새터의 형식은 그대로였으니 혼란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새내기들에게 ‘정치적 문제’에 대해 학습시키려 하는 것은 당시의 ‘신세대’들에게 반감을 사기 십상이었다.

그러다보니 새터에서 상대적으로 중요해진 것은 ‘놀이’ 그 자체였다. 새터의 목표가 ‘친목 도모’로 축소된 것이다. ‘의혈’이라는 호명은 점차 희미해지고 그 이름만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으며,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소수의 운동권 학생회의 일방적 선전’으로 인식되었다.

한편에서는 서서히 새터에 대한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있었다. 그 문제점들은 주로 ‘안전 사고’나 ‘음주 문화’에 대한 것이었다. 뉴스를 통해 다들 한 번쯤 접해보았을 ‘사발식’ 문제나 ‘성폭력’ 문제가 대표적이다. 이런 사건과 사고들이 새터라는 상징과 결합하면서 대학 새터는 구시대의 악습이며 사라져야할 것이라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조금씩 확산되었다.

새터 존폐의 위기, 2010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2009년, 학교 재단이 두산으로 바뀐 이후 중앙대에는 변화의 바람이 몰아쳤다. 빠른 속도로 학과 구조조정이 진행되었으며 학내 비판적 언론과 학생 자치에 대한 탄압이 이어졌다. 새터도 이런 흐름을 피해가지 못했다. “총학이 주도하는 새터, 이제는 역사 속으로”, 2010년 2월 <중대신문>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2010년 이후로는 총학생회에서 주관하는 전체 새터가 사라졌고, 각 단과대들이 시기를 달리해 개별적으로 새터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의 새터를 한마디로 무엇이라 정의하기 힘들다. 그것은 대학문화의 변화에 의한 ‘정치의 소멸’이라는 위험과 학교 본부의 간섭과 재정지원 삭감이라는 ‘사라짐’의 위험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새터 없이, 이미 상업화된 축제에만 기대 대학문화를 상상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대학문화의 모습은 대학 사회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의사결정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친다. 소비문화가 지배하는 대학에서 학생들은 소비자일 수밖에 없다. 대학문화를 새롭게 만들어내지 않고서는 ‘대학다움’이나 ‘대학생다움’을 이야기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학생들이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있게 하는 계기들이 끊임없이 행정 서비스로 대체되는 중이다. 중앙동아리는 취업동아리와 스터디 모임으로 대체되고 학생회가 주최했던 국토대장정은 학교 본부의 주최로 두산 공장을 견학하는 국토대장정으로 대체되었다. 심지어 최근에는 ‘농활(농민학생연대활동)’을 ‘Farm stay’로 대체하려는 시도까지 등장하고 있다. 학교 측이 주관하는 각 프로그램들에는 봉사 시간 인정이나 학점 인정 혹은 아웃도어 의류 무료 제공 같은 혜택들이 따라 붙는다. 학생들은 그런 행사들에 참여하며 스펙도 쌓고 값진 경험도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각 행사의 ‘객체’로 머물 뿐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지금은 새터를 새롭게 만들어야 할 때다. 새터가 잃어버린 정치의 공간을 다시 복원시켜야 한다. ‘대학의 운영 주체로서 대학생’이 ‘교육 서비스의 소비자로서 대학생’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에서 학생 사회가 붙잡아야 할 공공공간의 하나로서 새터를 다시 보자. 2013년, 중앙대에서는 어떤 특유의 대학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그 시작점은 바로 새터일 것이다.

지금 새터에서는 어떤 행사가 기획되고, 어떤 유형의 만남이 이뤄지고 있을까? 우리가 함께 만나 각자의 이야기만을 늘어놓다 공허하게 헤어지는 것이 새터라면 새로 배울 것은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서로의 관심이 만나는 곳이 어디인지, 공동의 고민이 만들어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새터를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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