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나비가 바다를 건너는 법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 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公主)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어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 김기림, <나비와 바다> –

삼월달 바다가 공주처럼 지친 나비들에겐 너무 새파랗습니다. 새파란 바다를 나비는 힘겹게 날아왔습니다. 이제 더는 바다를 만날 일이 없다고 생각했건만, 그래서 저 파란 것이 청무우 밭인가 했건만, 이 또한 새파란 바다라는 사실을 날개를 펼친 후에야 나비는 깨닫습니다. 그러나 벚꽃 피는 사월 오고 녹음 짙어지는 오월 올 겁니다. 삼월달 바다는 꽃이 피지 않아 서글펐지만, 사월달 바다는 아름답고 오월달 바다는 포근할 겁니다. 그날까지 나비는 나는 법을 잊지 않기만 하면 됩니다. 너무 일찍 물결에 절어버린 날개를, 나비들이 다시 활짝 펼쳤으면 좋겠습니다. 절은 날개는 곧 마릅니다. 바다는 무섭지만 다시 한 번 함께 날면 됩니다.

20대가 ‘88만원 세대’로 명명된 것이 2007년입니다. 그 이후 20대가 88만원 세대라는 명칭을 떼기 위해 시도한 일들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기업의 인재양성소로 전락한 대학을 거부하기도 해봤고(김예슬), 기초학문을 말살하는 구조조정에 반대해 60M 타워크레인 위에 올라가기도 해봤습니다(노영수). 반값등록금 공약 이행을 요구하며 거리를 가득 메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바다는 녹록치 않은 상대였습니다.

“바다는 무섭지만 다시 한 번 함께 날아보자.” 그 한 마디 전하고 싶어 <잠망경> 새내기 특별호를 만들었습니다. 되도록 다양한 내용을 담으려 노력했습니다. 중앙대학교가 기업화된 일련의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2008년 이후 지속된 대학의 기업화 움직임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를 다뤘습니다. 대학 기업화에 대한 저항의 장으로서 ‘새터’의 본래 의미를 되찾고 싶었고, 저항의 매체로서 ‘대학 언론’의 의미를 재고하고 싶었습니다. 대학사회 곳곳에서 무기력함이 팽배한 지금, 저항의 움직임을 다뤘습니다. 구별 짓기의 무의미함을 얘기하고 싶었고, 그보다는 연대의 가치를 모색하고 싶었습니다. 간판, 서열, 스펙으로 이어지는 끊임없는 구별 짓기의 노력이 결국 ‘멘붕’으로 귀결되는 과정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연대의 가치를 다뤘습니다.

나비가 날지 못한 건 바다가 너무 넓어 중간에 추락할까 두려워서입니다. 나비 한 마리를 바다는 얕봅니다. 그러나 한데 뭉친 나비 무리를 바다는 두려워합니다. 지친 나비는 등에 업고 함께 날면 됩니다. 함께 무리지어 날면 어느새 발밑에서 청무우 밭을 발견할 수 있다고 저희는 믿습니다. 13학번 나비 여러분, 함께 날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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