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슬픔을 끌어안는 법

 | 설미

초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가 고등학교 때 왕따와 집안의 불화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때 느꼈던 지독한 우울함과 무력감은 아직까지도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친구의 자살 소식을 들었을 때 계속해서 생각했습니다. 그 친구는 누구 때문에 그렇게 죽어야 했을까. 그리고, 나는 무얼 했는가, 분노했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 한 마디조차 저는 쉽게 떼지 못했습니다. 이런 우울함을 저는 말 그대로 툭툭 ‘털어’ 냈습니다.

제가 가졌던 트라우마처럼 다들 트라우마 하나씩은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것을 과거의 아픔으로 여기고 거쳐 지나갑니다. 힘든 일이 지나간 이후에는 ‘잘 참았다’ 스스로 다독이며 정신적으로 성숙하고 인내할 줄 아는 상태가 되었다고 생각하겠죠.

우리는 지금 ‘세월호’라는 집단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라는 참혹한 상황 앞에서 당연하게도 모두가 조심스러워집니다. ‘그들’의 슬픔은 지속될 것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어 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는 공감이나 애도를 말하는 것‘조차’ 할 수 없습니다. ‘생존 00명 사망 000명 실종 00명’이라는 무심한 숫자 앞에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축제 취소와 가려진 모순

세월호 사건 이후 지역 축제들이 우후죽순 취소되었습니다. 지역 축제뿐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행사’가 숨을 죽이고 있습니다. 여행가려던 사람들은 와르르 여행을 취소했고, 대학 총학생회들은 연달아 축제를 취소하거나 연기했습니다.

중앙대학교 총학생회도 얼마 전, “가슴 아픈 소식이 들려오고 있는 가운데 축제를 계속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라는 입장을 내면서 축제를 2학기로 연기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축제를 취소하는 대학생들에게 ‘개념 있는 대학생’이라 칭찬하고, 컴백을 미루는 아이돌에게 ‘개념돌’이라는 호칭을 붙여줍니다. 물론 학교 안이든 밖이든 즐겁게 놀기 위한 축제가 가장 많고, 사회의 맥락에서 벗어난 축제는 비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축제를 단지 노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공감과 치유의 축제는 가능하지 않아집니다. 예술가는 붓끝으로, 가수들은 목소리로, 춤추는 사람들은 몸짓으로 감정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이 예술이지만, 축제를 취소하는 것이 ‘개념 있는 행동’이라는 인식은 예술을 유흥거리로 단순화시킵니다. 감정을 표현하고 타인들과 공감하며 건강하게 집단적인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건강한 축제를 기대해보지만, 그런 축제는 아쉽게도 아직 한국에서 찾아보기 힘들어 보입니다.

더욱이 대다수의 축제들이 세월호 사건이 아니라 다른 문제 때문에 취소되는 것처럼 보여 찜찜하기도 합니다. ‘뷰티풀민트라이프2014(이하 뷰민라)’는 성금을 기부하고 치유의 축제를 열겠다는 취지로 행사 진행을 고수하다가 돌연 취소되었습니다. 뷰민라는 공연장 세팅까지 완료된 상황에서 공연장을 대관해주는 고양문화재단의 일방적인 통보로 모든 일정이 취소되었습니다. 뷰민라측과 상의 없이 고양시는 “세월호 참사로 인해 공연이 취소됐다”는 내용의 공지를 하루 전에 올렸습니다.

1주일도 채 남지 않은 지역축제를 기획자들과 협의도 하지 않고 예산을 끊는 방식으로 취소하는 것은 세월호 사건의 원인이 되었던 기존 사회의 ‘갑질’과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자신들의 이익과 살아남을 방법만을 챙기고 다른 문제들은 생각하지 않아 얼룩져 있던 그 모습 말입니다.

즐거운 축제와 잊힌 기억

세월호 사건은 곧 잊힐 겁니다. 10월이 오면 우리 학교도 예년 그래왔듯 ‘즐거운’ 축제를 하겠지요. 세월호 사건으로 연기된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말입니다.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은 기존처럼 수련회 또는 수학여행을 가게 될 겁니다.

세월호 사건을 애도하는 기간이 지나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 일을 잊어버리고 일상으로 돌아가 버릴지도 모릅니다. 지금 우리는 세월호 사건을 충분히 추모해야 합니다. 하지만 나아가서 우리가 일상에서 그들을 잊지 않고 애도할 수 있는 방법, 우리의 삶과 세월호 사건을 분리시키지 않는 방법을 고민해야합니다. 무엇이, 왜, 그들을 피해자로 만들었는지 계속해서 진단하며 이 애도를 어떻게 일상에 스며들어 다시는 같은 일로 피해자를 만들지 않게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축제가 줄줄이 취소되면서 침묵으로만 애도가 가능하다는 무언의 메시지가 모두를 감싸고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것을 보고, 심지어 그냥 살아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죄책감을 느낍니다. 동시에 자꾸만 무기력해집니다. 하지만 이런 죄책감과 무기력함을 떨쳐내려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들이 남기는 건 결국 이 사건이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뿐일 테니까요.

일상과 분리돼 무기력했던 시간은 금방 묻혀버립니다. 세월호 사건을 잊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다른 방식의 애도는 없을까요. 단지 일상 속에서 침묵하는 것 말고, 다른 상상력을 불어넣어 우리의 공간 안에 애도를 녹여낼 수는 없었을지 아쉬움이 듭니다. 지금의 슬픔을 기억 속에서 완전히 덮어두는 것은 가장 빠른 해결책일 수는 있지만 가장 좋은 해결책은 아니지 않을까요?

끝나지 않은 사건과 개별적 연대

많은 사건들이 그랬듯 일상이라는 핑계로 세월호가 잊힐까봐 덜컥 겁이 납니다. 곧 있으면 모습을 드러낼 월드컵과 지방선거로 인해 세월호 침몰이라는 사건이 ‘도대체 뭐가 문제였는지’, ‘그때 감정은 어떠했는지’ 기억이 흐려질까 걱정되기도 합니다. 세월호 참사를 만들어낸 이 사회는 여전히 견고한 듯 보여 무력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상에 휩쓸리다 곁에 잠깐 치워두었던 세월호는 우리 현실의 단면입니다. 세월호 사건 직후 매일매일 접하는 ‘안전사고’에 관한 뉴스보도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현실을 보지 못하고 있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지하철 참사, 세월호로 이어지는 ‘사건’들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일시적인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바꿔야 할 현실입니다.

고향에 내려가는 길, 서울역에서 본 사람들 중 절반이 세월호 뉴스에 귀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몇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우리라고 다른가요. 하루에도 몇 번씩, 웃다가도 눈물이 왈칵하고 나고, 노래를 듣다가도 멍해집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울컥하는 슬픔은 아마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겁니다.

이 집단적인 트라우마가 지나가고 우울함 또한 곧 사라질 겁니다. 하지만 저는 사람들이 우울함을 지나 툭툭 털어내고 각자의 일상을 너무나도 잘 살아가는 상태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 슬픔을 마주하면서 정말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합니다. 집회에 참여하는 방식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노래를 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함께 세월호 사건을 잊히지 않게 합시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던 바로 그 당시에도 우리의 일상은 그 사건과 함께 존재했기 때문에 우리는 1-2달간의 분리된 추모가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며 그들을 추모하고 기억해야 합니다. KBS의 젊은 기자들이 기성언론에 반기를 들었듯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세월호 참사가 생겼던 원인을 풀어나가야 합니다. 다시 우리가 이 슬픔을 기억할 때 ‘세월호 참사’만이 아니라 우울의 연대로 기억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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