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해철이 죽었다고

| 천용성

올해 많은 사람이 죽었다. 큰 아빠 두 명이 죽었다. 배가 가라앉았다. 탑밴드 두 번째 시즌에서 ‘Don fantasy’를 멋지게 불렀던 시베리안 허스키의 유수연이 자살했고, 위대한 탄생의 앳된 모습으로 기억하는 권리세도 죽었다. 외로운 공주로 기억하는 김자옥도 죽었다. 그리고 신해철이 죽었다.

큰 아빠들의 죽음은 슬프지 않았다. 넷째 큰 아빠는 올해 초에 죽었다.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못했다. 정미소를 운영한다는 것, 아빠의 형이라는 것, 부여에 산다는 것, 딸 넷에 아들 하나가 있다는 것 정도. 둘째 큰 아빠는 죽은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몇 달 전 넷째가 머물렀던 장례식장에 일가가 다시 모였다. 나는 홍어 무침이 저번보다 맛있어졌다는 생각, 된장국이 아니라 육개장이었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 내 윗대의 ‘The Chuns’에는 무슨 저주가 내렸기에 해마다 하나씩 죽어가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신해철의 죽음은 달랐다. 나는 그에게 할 말이 있었다. 언제가 방송에서 그는 자신의 팬 감별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팬을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내 노래 불러봐”라고 말했다. 나는 그 방송을 들으며 그의 앞에서 “위스키, 브랜디, 블루진, 하이힐”로 시작하는 ‘재즈카페’의 도입을 부르는 상상을 했다. ‘재즈카페’보다는 ‘이중인격자’의 기타솔로를 부르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작곡을 시작하고 음악을 만들 무렵에는 신해철의 기획사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와 같이 방송에 출연하는 장면, 그가 나를 소개하는 장면 같은 것들을 상상했다. 하지만 이제 신해철은 없고, “그래 넌 내 팬 맞다”라고 말해줄 사람도, “얘가 우리 회사의 신인”이라고 말해 줄 사람도 없다. 나는 김첨지처럼 슬플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그를 ‘부모님과 선생님 어른들에게서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유일하게 해줬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나는 그를 온갖 시덥잖은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고 혼자 희희덕대던 사람, 아무도 관심 없는 고래 회충 ‘아니사키스’에 대해 며칠씩 이야기하는 사람, 말하기 싫은 날엔 노래로만 방송을 채웠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난 그런 것이 좋았다. 제멋대로 하는 것. 반항이 서투른 중학생이었던 나는 그의 노련함이 부러웠다. 늦은 시간, 또래들은 잘 듣지 않는 그의 라디오를 듣는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만들기도 했다.

그가 죽고 나서야 내가 그의 팬이었음을 새삼스레 알게 되었다. 나는 한동안 그를 떠나 있었다. 그의 말들은 너무 뻔하고 진부했다. 10년 전에 했던 말을 오늘 했고, 라디오에서 했던 말을 TV에서 했다. 신해철을 좋아한다는 것은 하루키를 좋아한다는 것만큼이나 구식 취향이 되어버렸다. 음악인으로서건, 방송인으로서건. 나는 그 취향을 숨기고 살았다. 그게 너무 미안하다. 나는 그를 이기적으로 소비했다.

신해철이 죽은 후 나는 아침마다 사무실에 앉아 그의 노래를 들었다. ‘일상으로의 초대’, ‘재즈카페’, ‘The being’ 앨범에 있는 ‘이중인격자’, ‘껍질의 파괴’등을 열심히 들었다. 후렴구나 기타솔로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집에 와서는 신해철이 출연한 방송을 보았다. 라디오스타 ‘노목들’ 특집을 보고, 속사정 쌀롱 ‘처음이자 마지막회’를 보았다. MBC스페셜 ‘신해철, 마왕이라 불리운 사나이’를 보고, 데뷔 무대 영상을 찾아봤다. 우습지만, 그러면서 문득, 그가 죽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신해철은 내 곁에 있던 적이 없다. 내가 신해철을 만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예전과 달라진 것은 없다. 파일만 잘 간수한다면 난 언제고 신해철의 라디오를, 방송을 음악을 다시 틀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끝도 없이 서러워졌다. 신해철은 죽었고, 이제 나는 그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이 다시 한 번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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