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빨간조끼의 귀환

| 으헝

 

현대 인간사회는 분업이 고도화돼서 굴러간다. 사회가 효율적으로 운영되기 위해 분업이 발달한 것도 있지만, 그 이전에 우리의 일상생활을 만들어내는 각 기능들이 결합되는 관계가 형성되어 구조화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인간들은 사회에 나름의 기여를 하며 살아가고, 그러므로 타인의 존재를 전제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중앙대학교도 마찬가지다. 학문과 연구라는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대학이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기여가 있어야 한다. 연구하는 사람, 이들의 연구공간을 청소하는 사람, 건물 출입을 관리하는 사람, 행정적인 일처리를 도와주는 사람 등등.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학교가 마땅히 제공해야 하는 서비스로 여겨질 수도 있다. 등록금 내고 학교를 다니고 있으니 등록금이라는 지출비용에 포함된 것 아니냐는 의미다. 이러한 기여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자기 마음이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나의 학교생활은 타인의 존재를 전제로 이뤄질 수밖에 없고,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이러한 ‘사실’이 항상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청소노동자들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작년 말부터 올해 초에 걸쳐 청소노동자들이 투쟁하기 전까지 이들의 노동에 주목했던 사람이 몇 명이나 되었겠나.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교수, 교직원 등이 아니라면 ‘그 밖의’ 구성원들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청소노동자들의 투쟁도 일단락되면서 그 밖의 구성원들에 대한 그나마의 기억마저 희미해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상황에서 청소노동자들 투쟁으로 하나의 상징이 되었던 ‘빨간 조끼’가 다시 등장했다. 시설노동자들이다. 시설노동자가 하는 일을 쉽게 얘기하자면, 이들은 우리가 겨울에 히터를 틀고, 여름에는 에어컨을 켤 수 있도록 냉방기, 보일러 등의 기계를 다루는 일을 한다. 또한 화장실에 언제나 물이 공급되고, 학교 전체 어디든 전기가 항상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일도 한다. 말이야 쉽다. 하지만 이들의 일 자체를 쉬운 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여겨서는 곤란하다. 복잡한 기계 설비를 다루는 일은 우리가 에어컨이나 히터, 수도꼭지, 전등 스위치를 껐다켰다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기계 설비도 복잡할 뿐 아니라 각 건물마다 기계가 지닌 특성도 달라 이를 파악하는 것부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실제로 시설노동자들은 3년 이상을 근무해도 건물별 기계의 특성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의 노동은 학교에서도, 업체에서도 제대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숙련 기술이 필요한 일임에도 전기직 2명을 뺀 나머지 노동자들은 전부 비정규직이다. 대부분의 다른 학교에서는 안전문제와 연결된 시설관리 업무는 외주화하지 않는다. 외주화를 한 학교라고 해도 시설노동자들에 대한 대우 수준이 중앙대보다 못한 학교는 없다. 다른 학교와 비교했을 때 턱 없이 낮은 임금에, 그마저도 4-5년째 동결됐던 터라 중앙대 시설노동자들의 근속연수는 매우 짧다. 학교에 고용된 시설노동자의 수도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가족들을 부양하기에는 부족한 임금을 받아가며 높은 강도의 일을 오랜 시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3년을 일해도 건물별 특성을 알기 어렵다고 했지만 실제로 3년 이상 일한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이 사실은 시설노동자들의 노동조건 문제가 결국 학교의 안전, 학생들의 안전문제와도 직결될 수밖에 없음을 말해준다.

시설노동자들은 이러한 현실을 바꿔보고자 작년 9월, 청소노동자들과 함께 노동조합을 결성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 업체는 노사관계를 파행으로 몰아갔고, 올해 새로 선정된 업체는 학교의 눈치를 보기 바빴다. 갑을관계에서 임금 인상은 학교가 용역업체에 용역비를 인상해줘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6월부터 시작된 업체와 노조의 교섭이 결렬되고 9월에 서울지방노동위원회와 조정에 들어갔을 때가 돼서야 학교는 용역업체게 임금인상을 윤허했다. 임금인상의 수준이 시장경제에서 형성된 시설노동의 가격 수준은 물론이고 다른 학교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 이는 앞으로도 풀어가야 할 과제다. 그렇기에 우리는 장기적인 시야로 시설노동자들의 문제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들이 학교에 기여하고 있는 일들의 가치가 온전히 인정받을 수 있도록 말이다. 시설노동자들은 건물 지하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일하지만, 이것이 이들이 일하는 환경과 미래까지 어두워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한 학기에 한 번 등록금을 낸다. 이렇게 일괄적으로 포괄적인 서비스들을 구매하다보니 그 관심도 오래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이들의 노동은 우리가 등록금을 낸 그 이후에도 지속된다. 학교를 다니는 내내 이들의 존재를, 또 기여를 전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생활 자체가 이들의 기여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은, 나의 삶 또한 타인의 삶에 대한 분석 없이는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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