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망경을 읽고] ‘공론장 없음’의 상황에서

| 영인

 

지난 5월에 나온 잠망경 10호는 김창인씨 자퇴, 비판불가 커뮤니티, 학칙 개정 등 많은 이슈를 다루었다. 학교는 학칙을 개정하여 학생 자치활동을 제한하는 한편 내규를 통해 학생들을 관리하고자 했다. 중앙인 커뮤니티는 학교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표현한 이용자에 대해 접속불가 제재를 가했다. 대학의 급속한 기업화를 거부했던 한 학우는 학교의 지속적인 탄압에 못 이겨 자퇴를 선언했다.

이것들은 모두 공간과 시간이 다른 독립적인 사건들이지만, 내게는 이 사건들이 모두 동일한 맥락에서 읽힌다. 그것은 바로 ‘공론장 없음’의 상황이다. 대학 내 문제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비판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장을 이제는 찾아볼 수 없다. 대자보가 걸린 지 하루 만에 철거되고 온라인 커뮤니티 또한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는 상황에서, 점점 기업화되어 가는 대학에 제재를 걸 가능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구조조정을 놓고 학교가 시끄럽다. 대학은 학문단위 구조조정에 있어서 ‘소통 부재’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다. 중간고사 기간에 폭넓은 의견을 수렴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반영해 기간을 2주 연장하고,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도록 따로 게시판을 만들어 소통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언뜻 긍정적인 시도로 보이지만, 문제는 그다음이다. 기획처장은 구조조정에 대해 ‘소속 학문단위를 떠나 대의적인 차원에서 중앙의 미래를 위한 설계에 동참해 달라’고 말했다. 이 말을 계속 곱씹고 읽어봐도 뭔가가 불편하다. 대학이 얘기하는 대의는 과연 무엇일까. 소속단위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것은 이기적인 행위이니 대의를 위해서 소수는 희생되어야 한다는 말일까? 학문의 자유가 침해당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생존권을 보장해달라는 말이 ‘이기적’으로 비춰질 수 있음은 무엇으로 해석해야 할까.

11월 13일을 기준으로 이 공지사항 글은 조회 수가 5천 건이 넘었다. 그만큼 여러 학생이 이 글을 보았다는 방증이다. 대학은 학생들에 대해서 소통의 의지를 표명하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지만, ‘소속 단위를 떠나 대의적인 차원에서’ 논의해달라는 문장 앞에서 ‘소통’은 그저 형식적인 말로 느껴질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론장 없음’의 상황에서 이 모순을 지적할 가능성은 학내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가 발전하고 있는 것은 그 자체로는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소수의 목소리를 억압하면서 이루어지는 강압적인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학교의 위상을 높이고자 한다면 내부의 본질적인 문제부터 차례대로 풀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경영공과대학’을 지향하는 중앙대에 내부 구성원들의 비판적인 의견이 허용되는 건전한 공론장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러한 ‘공론장 없음’의 상황에서 나는 오랜만에 학내에 모습을 드러낸 이번 잠망경 11호가 무척이나 반갑다. 잠망경의 발간은 그 자체로 징후적인 현상이다. 잠망경의 모토인 ‘잠수함 토끼들’은 게오르규의 소설 <25시>에 나오는 토끼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잠수함의 산소농도가 희박해지면 토끼들이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수병들은 토끼의 상태를 보고 잠수함을 수면 위로 띄운다는 것이다. 학내 소통의 자유가 희박해진 상황에서 다시 돌아온 잠망경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공지사항 글을 보면 학교의 발전을 염원하는 댓글만큼이나 일방적 대학 운영에 대해 비판하는 댓글 또한 적지 않다. 구조조정에 대해 모두가 다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조용히 학교에 다니는 사람들 또한 나름대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이 현실에서 직접적인 표현으로 나타나지 않을 뿐이지, 모두가 중앙대가 말하는 ‘대의’를 염원하는 것은 아니다. 잠망경은 지금도 충분히 제 역할을 잘하고 있지만, ‘공론장 없음’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보다 학우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필요가 있다. 잠망경이 학우들의 보편적인 정서를 담아내면서 합리적인 공론의 장을 제공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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