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토크] 낙태에 관한 몇가지 물음

 녹취해제 고구미, 정리 율이

 

“지난 10월 28일 열린 자유인문캠프의 ‘다큐나이트’에서는 조세영 감독의 <자, 이제 댄스타임>이라는 다큐가 상영되었다. <자, 이제 댄스타임>은 한국 사회에서 어디에나 있지만 잘 보이지 않는,‘낙태’라는 경험을 둘러싼 ‘평범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솔직하게 담고 있는 작품이다.”

 

상영이 끝난 이후에 조세영 감독과 시네 페미니스트 손희정을 중심으로 낙태 문제와 작품에 대한 열띤 시네토크가 한 시간가량 이어졌다. 여기서 나온 이야기 중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을 여기에 일부 싣는다.

 

왜 ‘낙태’인가?

조세영 감독(이하 ‘조’): 이 작품 전에 만들었던 다큐가 성폭력 관련 다큐였다. 이 작업을 하면서 제작 단계에서 왜 이런 주제를 하냐고 질문을 들으니까 고민이 들었는데, 생각해보니까 성폭력 자체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다. 낙태 자체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관심이 있었던 것은 ‘인간’이었다. 고통스러워하는 인간이 있는데, ‘왜 고통스러워할까?’ 이런 질문이 가장 중요했다. 여성주의라는 프레임에서 많이 배운 것도 있다. 낙태 문제도 낙태 자체만의 이야기라기보다는, 낙태를 둘러싸고 우리들이 놓여있는 관계망들의 문제를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 태아의 ‘생명권’?

조: 기획 단계부터 영화의 방향 몇 가지는 명확했다. 한 가지는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결정권이라는 프레임 자체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낙태에 대한 선입견이나 인상들, 가치들이 있고 그것들을 걷어낸 상태에서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은데, 낙태에서 생명권 대 선택권이라는 이야기가 계속 나왔고 그런 틀을 벗어나야만 새로운 논의를 할 수 있겠다는 이야기가 내부에서 나왔다. 그리고 공적 자리에서 낙태라는 이야기는 언제나 ‘타자’들의 목소리를 통해서만 나왔다. 누군가의 생명권과 결정권을 이야기하는데 늘 (당사자 아닌) 타자의 이야기가 등장했다. 공적인 자리에 당사자들을 불러세울 수 있을 때 새로운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영화에 출연할 사람들을 공개 모집했다.

손희정(이하 ‘손’): 생명권 대 선택권을 넘어설 수 있는 어떤 프레임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낙태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낙태를 단순히 여성의 선택 문제라고 생각하면 절대로 ‘생명권’을 이길 수가 없다. 어떻게 ‘생명’을 이길 수 있겠는가? 이 다큐가 보여주는 것은 낙태가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고, 여성들의 굉장히 많은 맥락 속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낙태는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 정말 선택하고 싶지 않은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논의는 생명권과 선택권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사라진다.

낙태를 둘러싼 다양한 문제가 있다. 중요한 한 가지는 태아가 뱃속에 생기는 순간부터 여성의 몸과 태아의 생명이 일치되거나 지속적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태아의 생명권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생명에 대해 다 꺼내놓고 고민해야 한다. 여성의 생명과 태아의 생명을 하나로 연결시켜서 바라볼 필요도 있다.

한국의 경우 여성주의 운동의 결과 여성이 사회적인 선택권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긴 80년대 이후, 이런 움직임에 반대하면서 생명권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했다. 결국 낙태에 관한 이런 프레임은 낙태를 범죄라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프레임에 끌려가는 것이다. 이것은 (여성의 다양한 경험을 담지 못하는) 법이라는 차가운 언어에 따라 사고하는 것이자, ‘선택’이라는 자유주의적인 관점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 이것은 국가가 어떻게 사람의 몸에 개입해 오는가에 대해 인권의 측면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

 

낙태와 한국사회

손: 낙태라는 개념 자체는 한국사회에서 일종의 ‘전쟁터’였다. 낙태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국가 발전을 위한 것인지, 생명을 죽인 것인지에 관한 개념이 2~30년 사이에 바뀌었다. 우리 어머니 세대가 아이를 낳던 70년대에는 낙태가 범죄가 아니었다. 따라서 영화 앞부분에서 아주머니들이 (낙태에 대해) 하하호호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80년대 이후 다시 범죄화되면서 낙태는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하는 이야기가 되었다. 90년대 무렵부터 출산율이 떨어지니까 다시 낙태를 범죄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낙태가 얼마나 무자비하게 생명을 죽이는 것인지에 대한 다큐나 성교육 등이 당시에 폭발했다. 특히 90년대 이후 낙태는 차가운 과학의 언어와 만나면서, 태아에 ‘생명’이 있고 감정이 있다는 이야기로 초점이 맞춰지기도 했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 낙태는 굉장히 보편적인 경험이지만 한편으로 너무 특수한 것으로 숨겨진 이야기이기도 하다. 누구나 경험했지만 나눌 수 없었기 때문에 고립된 경험이었던 것이다. 이 작품은 (이런 변화로) ‘범죄’를 저지른, 하면 안 되는 것을 저지른 못된 사람들이라는 편견 때문에 ‘가시성’을 획득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얼굴을 보란 듯이 보여준다. 나는 이 영화를 정치적으로 만들어주는 장면이자 한국 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가운데 하나가 바로 ‘모자이크 벗겨지는 장면’(낙태를 이야기하는 여성들의 얼굴이 드러나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이 장면을 통해 그 얼굴들과 우리가 대면하게 되면서 고립되고 숨겨진 낙태라는 것이 사실 얼마나 공적이고 정치적인 일인지 드러난다.

 

수만 가지 낙태의 경험

손: 저는 정말 가까운 사람이 낙태를 하고 다음날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정말 아무렇지 않게 그냥 ‘괜찮아?’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넘어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는 더 많이 들어줬어야 할걸 하고 생각한다. 실제로 아무렇지도 않은 일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낙태에 대해 찬성이냐 반대냐는 질문을 많이 받지만, 수천만 가지 낙태가 있고 경험이 있다. 때문에 단순하게 찬성과 반대로 나눌 수는 없을 것 같다.

조: 저는 틀린 결정은 없다고 생각한다. (낙태를 하든 안 하든) 그 사람의 선택이 늘 옳다고 생각한다. 해를 끼치건 아니건. 다만 그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할 때 좀 더 자신에게 이로운 선택을 할 수 있게끔 (사회적인)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에 대해서 우리가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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