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일못’ 총학, 새로운 구상이 필요하다

| 김펄프

 

‘일 못 하는 사람 유니온’이라는 게 있다. ‘일 잘하는’ 사람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일 못 한다고 구박받는 사람들이 모여 넋두리를 늘어놓는 페이스북 그룹이다. 7월에 만들어져 어느새 회원 3,000명이 넘었다.

이들에게 ‘일 못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소개글을 빌려오면, “완벽에 대한 압력은 사라지고, 공동작업을 통해 서로의 일을 도우며 서로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 권장되는 사회가 바로 일 못 하는 사람들의 사회일 것이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얘기다.

하지만 총학생회까지 이런 의미를 찾을 필요는 없다. 최근 몇 년간 우리가 봐온 총학생회는 ‘일 못 하는 총학생회’였다. 심하게 말하는 이들은 ‘식물 총학생회’라고까지 표현한다. 총학생회 임기가 만료되는 11월이면 학내 언론들은 “공약이행이 미흡했다”는 보도를 연례행사처럼 낸다. 56대 마스터키 총학생회도 당연히 예외는 아니다. <중대신문>이 11월 10일 보도한 ‘마스터키 총학생회 공약 이행 점검’ 기사의 제목도 “가시적인 변화 있으나 공약 이행도는 다소 낮아”였다. 동작01 버스 캠퍼스 진입, 등록금 인하, 도서관 배석기 설치 등등 주력 공약들이 이행되지 못했다.

 

‘일못’ 총학생회의 변

총학생회도 할 말은 많다. 바쁘다. 겨울방학은 새내기새로배움터 준비하는 데 모두 쏟아 붓는다. 개강하면 새 학기 사업들 진행하느라 정신이 없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새 5월 축제고, 축제 끝나면 벌써 여름방학이다. 여름방학 지나고 개강하면 9월 말에 있는 마라톤 축제 ‘달려’에 온 역량을 투여한다. 임기 말인 10월을 레임덕으로 지내다 보면 어느새 11월이고 선거를 준비하고 있다. 일정은 이렇게 촉박한데 집행부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 활동하는 집행부원 개개인이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니다. 마스터키 총학생회 집행부원 18명 중 13학번과 14학번이 11명으로 61%를 차지한다(전학대회 자료집 기준).

막대한 권한을 부여받았으나 실질적 역량이 따라가지 못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총학생회장도 실무 일선에서 뛰지 않으면 안 된다. 당차게 내세운 공약을 차분히 준비하고 이행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공약 이행뿐만 아니라 이슈에 대해서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 학문단위 구조조정, 대자보 허가제로 대표되는 말할 권리의 침해, 등록금 인상, 교양과목의 지속적 축소 같은 이슈들은 매년 꾸준히 발생하지만, 총학생회의 대응은 늘 미흡했다. 총학생회를 굴리는 주체는 매년 바뀌고, 이들은 같은 이슈에 대해서 축적된 경험이나 데이터 없이 처음부터 새롭게 대응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에도 문제들은 계속해서 쌓인다. 대표성을 지니지 못한 학내 단체들이 개별적으로 대응하지만 효과는 크지 않다.

대책이 필요하다. 열정적인 집행부들이 학업을 던지고 학생회에 ‘올인’하는 것은 대책이 아니다. 지속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집행부원이 언제 어떻게 될지 불확실하며, 그런 열정이 다음 총학생회에서도 나타날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 ‘일 잘하는’ 총학생회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대자연’, 분담과 견제

참고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산하기구인 ‘대학행정자치연구위원회(이하 대자연)’이다. 2013년 3월 발족된 이 기구는 ▲등록금심의위원회(이하 등심위)를 대비한 자료 분석과 정보공개 청구 ▲매년 등심위 백서 작성 ▲대학 행정에 관한 자보 및 홍보안 내용 작성 ▲총장 선거 대비 자료 분석 및 보고서 작성과 같은 업무들을 맡는다. 실제로 서울대 본부가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과 황창규 KT 회장을 초빙교수로 임용한 것에 대해 작년 6월 정보공개를 청구한 바 있으며, 이를 본부가 거부하자 소송을 제기해 올해 6월 승소하기도 했다. 또한 올해에는 총장선출 과정에 적극 개입하고, 서울대 국정감사에 대비해 국회에 제출할 자료를 작성하기도 했다.

현재 대자연 위원장을 맡고 있는 양기원씨(서울대 서양사학과)는 “법인화 이후 서울대가 국립대도 사립대도 아닌 상황에서 (본부의) 정보 비공개나 전횡 등을 막을 방안들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이 대자연 발족의 배경이라고 말한다. 2013년 1월 개최된 등심위에서 이런 상황이 발생했고, 이에 대한 사후 대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김재원씨(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가 ‘단과대 학생회장 연석회의 운영위원회(중앙대의 경우 비상대책위원회와 같은 성격의 조직)’에 제안해 ‘대학회계투명화를 위한 TF’를 꾸렸다.

이러한 업무들을 총학생회 내부에서 진행할 수도 있었지만 대자연이라는 산하기구를 따로 구성한 데는 물론 이유가 있다. 양기원씨는 “총학생회를 대상으로 한 문제의식 환기가 용이해지고 동시에 총학생회 중앙집행위원회의 업무와 관계없이 비교적 업무 영역의 일관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독립성을 위해 위원장은 대자연 내부에서 선출된다. 총학생회에서 위원 일부를 파견해 견제하는 장치를 마련해, 대자연이 독립된 기구로 작동할 경우 예상되는 문제점들을 보완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대자연도 한계는 있다. “대학본부와의 마찰과 협상, 활동인원의 부족 등의 이유로 목표 만큼의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또한 위원장의 해임과 기구의 해산 권한이 총운위(중앙대의 경우 중앙운영위원회)에 있는 것이 문제다. 예산과 인력보충도 총학생회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어 불안정하다. 그럴 바에는 총학생회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의문도 대두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양기원씨는 학생회에 의견을 제출하고 사업을 이끌어가기에는 산하기구 형태가 수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도 ‘일잘’ 총학 좀!

양기원씨는 대자연이 학내에 충분히 반향을 일으키지 못해도 이미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등심위나 각종 강연, 회의 등에서 획득한 자료를 축적하고 보존하는 것만으로도 학생사회에 큰 도움이 된다. 이는 현재 대학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해 경험하지 못한 후속세대들에게 문제의 뿌리에 대해 알려주는 작업이 될 뿐만 아니라 비슷한 상황에서 행동의 지침으로 활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학생사회의 기록을 보전하고 후배들에게 계승하는 역할이다.

중앙대 학생사회도 이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위원회 구성을 논의해야 하지 않을까? 어떤 형태로든 총학생회의 업무량을 분담하고, 학생사회의 기록을 축적할 필요가 있다. 당장 또 다시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지만 정보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전 구조조정 기록도 언론보도의 형태로만 남아있는 실정이다. 그뿐만 아니라 말할 권리, 교양강의 문제, 열악한 강의실 문제 등등, 대부분의 문제가 마찬가지다.

물론 학내 사안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위원회를 꾸리는 것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어떤 제도든 구상 당시에는 무결해 보여도 실제 운영되면서 한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실패할 때 실패할지언정 지금은 뭐라도 새롭게 시도해보는 편이 낫지 않을까? 아무튼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니까. ‘일 잘하는’ 총학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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