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마스터키가 열지 못한 문

| 주덕

 

분명히, 존재감은 있었다. 서울캠퍼스 곳곳에서 마스터키 총학생회(총학)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 홍보물에, 가끔은 대자보에, 심지어는 사과문에 총학과 그 산하 기구의 이름이 등장했다. 캠퍼스 안팎으로 다사다난했던 올 한 해 동안 마스터키 총학은 적어도 목소리를 내주었다. 개인적으로 그 목소리에 동의하는지 않는지는 차치해두고, 우선 그들이 학우들을 의식하고 반응했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처음부터 마스터키 총학이 표방한 정체성은 뚜렷했다. 첫째, 총학은 비정치적이어야 한다. 둘째, 가장 작은 총학으로서 일상복지에 집중한다. 마스터키 총학은 두 가지 원리원칙에 벗어나는 법이 없었다. ‘정치적’이라고 판단한 사안에서는 차라리 발언하지 않는 것을 택했다. 반면 일상복지 확충에는 적극적이었다. 출마 당시 내세운 30여 개의 공약은 대개 일상복지에 역점을 두었다. 임기를 마무리하는 현재 공약 이행도를 살펴봐도 일상복지 부문이 가장 두드러진다. 정치적 사안에 한눈팔지 않고 학내 살림살이에 힘쓰는 총학. 이것이 마스터키 총학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총학의 상(像)이라면 스스로에겐 만족스러운 1년이었다고 평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이 설정한 지향점이 오히려 마스터키 총학의 한계를 분명히 드러냈다는 역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본부와 갈등을 빚기보다 대화와 협력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행보에 집중했다. 어쩌면 그런 행보야말로 ‘비정치적인 방법’이라 여겼을지도 모른다. 대화와 협력, 분명 중요한 미덕이다. 문제는 마스터키 총학이 본부를 오로지 협력적 파트너로서만 대했다는 점이다. 최대한 본부와의 충돌을 피하려는 노력은 곳곳에 묻어났다. 예컨대 지난 5월 무기한 연기된 ‘교육환경개선을 위한 총궐기’는 하나의 촌극으로 회자될 정도다.

당시 마스터키 총학은 총궐기에 앞서 8대 요구안을 발표했다. 요구안은 ▲민주적인 등록금 심의위원회 구성 ▲교양과목 다양화 ▲구조조정 시 충분한 논의가 가능한 협의체 마련 등 총학이 제시한 7대 요구안에 추가로 각 단과대별 요구안을 취합해 8개 조항으로 구성됐다. 총궐기는 요구안을 본부에 관철시키기 위해 마스터키 총학이 선택한 방식이었다. 총학은 총궐기 홍보에 전력을 다했다. 별안간 캠퍼스를 뒤덮은 수많은 플래카드는 그 방증이었다. 하지만 이는 총궐기 하루 전날 말끔히 철거됐다. 마스터키 총학이 총궐기를 무기한 연기시킨 까닭이다. 무기한 연기의 이유는 “본부가 8대 요구안에 대한 공식적인 답변을 전달했기 때문”이었다. 마스터키 총학은 이를 두고 “총궐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본부에서 긍정적인 답변을 내준 점은 상당히 고무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순진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 순박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본부를 이렇게나 신뢰하고 존중하는 총학이라니!

마스터키 총학이 총궐기라는 강력한 수단을 포기하면서, 교육환경개선운동은 형식적 차원에 그쳤다. 이는 이후 본부와 합의한 사항을 살펴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우선 민주적인 등심위 구성은 사실상 좌절됐다. 대신 “등심위 개회 전 학생지원에 관한 예산 반영을 적극 돕”는 것으로 조율했는데, 내용이 모호할뿐더러 실질적으로 등록금을 인하시키는 효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 구조조정 사전 협의체 구성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진행 중인 구조조정 사전과정에서 마스터키 총학의 재량권은 의견수렴 기간을 연장해달라는 대자보를 붙이는 것에 그쳤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바란 것이 아니다. 다만 마스터키 총학의 행보에는 늘 한 걸음이 부족했다. 본부가 거부 의사를 밝히면 그저 순응했다. 학우들의 의견을 본부에 전달하는 소극적 역할에 만족했다. 결과를 고려하지 않았다. 과정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고무적”이라고 자화자찬했다. 이것이 비정치적이고, 가장 작은 총학생회의 소임이라 생각한다면 나는 단호히 ‘틀렸다’고 말하겠다. 학우들이 마스터키 총학에 건 기대는 그렇게 모호하고 소박한 합의로 거래될 수 없다. 본부의 반대에 대항해 한 걸음 더, 한 번 더 학생들의 의견을 강조했더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크다.

할 말은 많다. 학생회비 도난 사건이나 미흡했던 축제 진행, 총여학생회 폐지 등 이야기하고픈 것이 투성이다. 하지만 이젠 아쉬움은 접고 다음 총학을 생각해야 할 때다. 제57대 총학생회 후보로 ‘ON-AIR’ 선본(정후보 한웅규, 부후보 정찬모)이 단독 출마했다. 이번 선거는 4년 만에 단선으로 치러진다. ON-AIR 선본은 굵직한 공약을 내세웠다. 하지만 ‘D+학점 의무부과 폐지’ 등 실현 가능성이 낮은 무리한 공약들을 걷어내면 이전 총학과 큰 차이점을 찾기 어렵다. 구조조정, 등록금 등 최근 몇 년간 중앙대가 직면한 위기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그 어느 총학도 이를 구체적인 성과로 이끌어내지 못했다. ON-AIR 선본의 공약은 이렇듯 과거 총학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요컨대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등심위에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시키겠다는 공약이 그렇다. 전문가 자문에는 높은 비용이 따르고, 등심위에서 학생이 갖는 권한이 미비하다는 점 등 애초부터 구조적인 문제를 고려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역시나, 공약(空約)이 될 우려가 크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총학생회’라는 이름에 걸맞은 총학다운 총학이 정말이지 보고 싶다. 학생들과 유리되지 않고, 학생대표라는 이름으로 본부 앞에 당당한 총학을 뽑고 싶다. 그런 압도적인 존재감을 가진 총학을 올해는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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