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쫓겨나는 카페, 쫓겨가는 기억들

| 율이

 

 

가을학기가 시작되자마자 학교 주변에서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학교 정문 앞 골목에 있는 카페 ‘데얼스 팩토리’(이하 데펙)가 더는 운영을 하지 않겠다는 공지가 데펙 페이스북에 올라온 것이다. 중대 정문 ‘하노이의 별’ 골목 구석에 2010년 조용하게 문을 열었던 데펙은, 맛있는 커피와 독특한 컨셉 그리고 지역과 연계한 다양한 사업들로 흑석커와 중대생들에게 사랑을 받던 공간이었다.

몇 년 되지도 않아 갑작스레 흑석동을 다시 떠난다는 소식에 아쉽다는 반응이 많았다. 데펙이 이렇게 급히 사업을 정리하게 된 것은 해당 상가 건물주가 일방적으로 퇴거를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일반적인 상가 계약주기가 5년임을 고려하면 이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데펙이 떠난 자리에는 거의 같은 인테리어와 컨셉으로 상호만 다른 카페가 들어왔다.

그런데 이런 광경은 어째 낯설지 않다. 우리는 이미 2013년에 쫓겨난 정문 앞 ‘화덕피자’와 ‘국수마당’을 통해 이런 모습을 이미 목격한 바 있다. 작은 공간에서 괜찮은 맛으로 나름 ‘맛집’으로 통하던 ‘화덕피자’는 바뀐 건물주의 일방적인 요구로 영업을 그만뒀다고 한다. 같은 건물 바로 옆에 자리를 잡고 역시 맛으로 입소문을 탔던 ‘국수마당’도 마찬가지다. 결국 ‘화덕피자’는 흑석동에서 사라졌고, ‘국수마당’은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시장 부근에서 다시 문을 열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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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들의 ‘현실’

사실 이런 문제가 흑석동만의 문제가 아님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이런 식으로 어떤 지역, 특히 대학가에서 학생들이 자주 이용하던 상점들이 몇 년 되지도 않아 금세 사라지고 다른 상점으로 바뀌는 풍경은 이제 너무나 ‘익숙’하다. 오늘날 서울의 대학가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자신이 정 붙였던 가게가 갑자기 이런저런 이유로 사라지거나 철거되어 비어있는 모습을 보면서 아쉽거나 씁쓸한 감정을 가진 적이 한 번쯤은 있을 테다.

이런 감정이나 경험은 상가 세입자에게도, 그리고 그곳을 이용했던 우리에게도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러나 엄연한 법의 논리와 시장의 논리에 따를 때 이런 경험들은 우리가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그렇게 인정해버리기엔 뭔가 찜찜하긴 하지만, 이제는 익숙한 이런 풍경 속에서 그저 ‘안타까워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현실’을 두고 부당하다고 말하는 ‘익숙지 않은 현실’ 역시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 이들은 한국사회에서 상가 세입자들이 건물주의 횡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매우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다고 주장하면서 건물주를 상대로 투쟁을 벌이고 있다. 올해 9월부터 재건축을 이유로 상가를 떠날 것을 요구하는 건물주를 상대로 싸워 이긴 안암동 고려대 앞 카페 ‘콩진호’와 ‘델마르’가 대표적이다.

 

익숙지 않은 또다른 ‘현실’

상가 세입자들의 싸움은 사실 이미 오래 전부터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2013년의 연희동 ‘분더바’와 방화동 ‘카페 그’ 철거 반대 투쟁, 2011년의 명동 ‘포탈라’, ‘카페 마리’와 동교동 ‘두리반’의 싸움, 그리고 2009년의 불탄 용산 남일당 건물. 이들이 보여주듯 상가 세입자와 건물주 혹은 재건축업자 간의 첨예한 갈등과 그 사이에서 세입자들이 놓인 처참한 상황은 우리 사회에서 이미 표면화된 문제였다.

싸움을 계속 이어가는 상가 세입자들이나 관련 전문가들은 ‘법’이 세입자에게 불리하다고 말한다. 상가 임대와 관련해 한국에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라는 법률이 있다. 이 법은 상가 세입자들의 영업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허점들이 많고 건물주에게 유리한 예외조항이 많아 올해 9월에 개정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물주들이 ‘합법적으로’ 세입자들을 거리로 내몰 수 있는 근거가 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오직 ‘한 사람’의 욕망

법적인 문제만큼이나 세입자들을 불안한 처지로 내모는 데에는 지역 상권에서 더 많은 이익을 얻으려는 건물주들의 탐욕이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홍대 앞에서 상수동으로, 상수동에서 연남동으로 끊임없이 밀려나는 소규모 자영업자들을 생각해보자. 세입자들이 열심히 장사하고 땀 흘려 만들어 놓은 상권을 건물주들이 빼앗아 임대료를 높인다. 또는 대기업 프랜차이즈에게 자리를 넘겨 특색있던 지역을 ‘그저 그런’ 동네로 탈색시켜 버린다. 이런 풍경은 우리 주변 대학가나 번화가에서 더 이상 낯선 모습이 아니다.

또한 이런 건물주의 욕망은 2000년대 이후 몰아친 부동산 광풍이나 뉴타운 열풍 같은 거대 규모의 재개발, 재건축 사업들을 통해 국가적으로 ‘장려’돼 왔다는 점에서 구조적이다. 당연히 흑석동도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흑석동에서도 2004년부터 추진 중인 뉴타운 사업으로 임대료가 꾸준히 올라 세입자들의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또 높은 임대료를 부담할 수 있는 프랜차이즈들이 ‘목’ 좋은 큰 길가를 점령하면서 독립 자영업자들은 점점 더 골목으로 밀려나고 있다. 그런데 이제 데펙을 계기로 골목마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된 듯하다.

물론 사태의 표면만을 보면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건물주의 이런 행위는 현행법상 자신의 정당한 소유권을 행사하는 ‘합법적’ 행위다. 유동인구가 많아지면 임대료도 오르기 마련이고, 그에 따라 더 많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불법은 아니다. 리모델링이나 재개발, 재건축을 통해 지역 상권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도 있다. 지금의 흑석동 역시 어느 정도 재건축이나 재개발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합법 이면에 놓인 사실들을 보자. 건물주의 건물과 주변 상권을 ‘탐낼 만한’ 공간으로 만들어낸 것은 누구인가? 다름 아닌 그 건물에 세들어 장사하는 세입 자영업자들과 그곳을 이용하는 지역 주민들 덕분 아닌가? 즉 실질적으로 그 건물의 경제적 가치는 건물주 혼자서 높인 게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데 정작 그 가치를 만든 사람들을 죄다 밖으로 내몰고 건물주 혼자 그 이익을 전유하겠다는 것을, 아무리 ‘합법’의 틀을 썼다 할지언정, 합당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공유된 경험들’

더욱이 상인과 지역 주민들의 그러한 관계 속에서 지역의 가치 있는 고유문화가 형성된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어떤 지역과 공간이든, 그곳에 뿌리내리고 있는 상인들과 그곳을 거쳐 가는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문화적으로 고유한 어떤 ‘공유된 경험들’이 있기 마련이다. 예컨대 흑석동 상인들과 중대생 혹은 ‘흑석커’만이 알 수 있는 흑석동만의 어떤 고유한 문화적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상인이나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이든, 그 관계에서 생겨난 기억이나 경험 또는 감정이든 말이다.

우리가 데펙을 떠나보내면서 말할 수 없는 씁쓸함을 느끼는 이유도 이런 것들 때문이다. 특히 데펙은 다른 어떤 상점들보다도 흑석동을 기반으로 중대생들과 지속적인 교류를 해왔고, 지역 커뮤니티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고유한 경험들을 만들어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런 경험들과 문화는 우리 삶의 소중한 일부이며, 건물주의 소유 등기 문서 한 장으로 환원될 수 없는 종류의 것들이다.

그럼에도 건물주 한 명의 소유권만이 더욱 중요한 것이 우리가 보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자. ‘씨티몽’에 걸린 수많은 우리의 사진들과 사연들은, 후문 카페 ‘양’에 붙여놓은 수많은 쪽지에 담긴 기억들은 건물주가 가진 등기 문서 한 장보다 가치가 없는가? ‘책읽는고양이’에서 길고양이들과 나누던 교감은, 혹은 70년대 동문 정치인이 시위 도중 경찰을 피해 숨었다던 ‘터방내’의 전설은 법의 허점과 건물주의 욕망으로 쉽게 증발할 수 있는 무가치한 것들인가?

 

쫓겨나는 카페, 쫓겨나는 기억들

세입자와 그 가게가 부당한 처우를 받으며 쫓겨날 때,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들과 경험들, 기억들도 함께 쫓겨난다. 이것이 ‘현실’일까? 즉 건물주만 ‘빼고’ 상인과 그곳을 거쳐 가는 ‘모두’가 가지고 있는 지역 고유의 경험들과 문화가, 건물주의 이익만을 위해 세입자 상인들의 삶의 터전과 함께 깡그리 사라지는 것이 ‘현실’일까? 그렇다면 과연 이것이 ‘정당한’ 현실인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지역의 소중한 고유문화와 기억, 그리고 경험들은, 불안한 상황에 놓인 세입자들의 처지와 함께 끊임없이 부유(浮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문제는 데펙만의, 혹은 상가 세입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곳을 이용했던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다시 그렇기에 우리는 이런 현실을 바라보면서 단순히 안타깝다고만 여겨서는 안 된다. 우리는 부당하게 철거되는 상가 세입자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왔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런 관계 속에서 경제적으로 환원할 수 없는 소중한 경험과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책임과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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