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폭력] 성, 존중받을 순 없는 건가요?

| 고구미

 

대학 안의 성 문제

2014년 말을 기점으로 교수 성폭력 사건이 연이어 보도되었다. 중앙대에서도 한 교수가 학생들을 수차례 성추행한 것이 알려졌다. 성폭력 대책위원회가 꾸려지고 진상조사가 이뤄졌다. 해당 교수는 성추행 혐의를 모두 인정하고 학교에 사표를 제출했다. 대학본부는 대체인력이 없다는 것을 이유로 종강 직전까지 교수에게 강의를 맡겼다. 많은 학생들은 성추행 교수가 수업을 하고 있는 것과, 징계 없이 사표를 수리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 반발했다. 하지만 대학본부는 사표를 수리했고 사건은 흐지부지되었다. 교육부는 성범죄를 저지른 교수들이 스스로 학교를 그만두는 일을 금지하도록 학칙을 개정하라고 권고했지만, 중앙대의 대처는 이에 반하는 것이었다.

위와 같이 교수의 권위에 의한 성폭력 사건도 있지만, 학생과 학생 사이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도 있다. K대에는 단체카톡방(단톡방)에서 남학생들이 같은 과 여학생들을 성희롱하는 발언을 한 것이 발각돼 크게 논란이 됐다. 내용 자체도 심각했지만, 같은 공동체에서 생활하는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사건이었기에 충격이 더 컸다. 중앙대 모 학과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 가해자들은 사과문을 붙였고, 현재는 자진 철거된 상태다.

최근 단톡방을 통한 성폭력 문제가 여럿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비단 단톡방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반에 깔려있는 여성혐오와 성적 담론의 문제다. 단톡방, SNS 등이 활성화되면서 단순히 입에서 입으로 떠돌던 이야기가 ‘공간성’을 얻게 되었다. 사적으로 오가던 이야기가 기록되고, 문서화되면서 공개되고, 확산되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사소한 이야기

대학에 처음 발을 딛으려고 하는 새내기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낯선 공간, 낯선 사람, 낯선 분위기 속에서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모르니 바짝 긴장을 했을 것이다. 게다가 흉흉한 사건들이 연일 보도되니 부모에게 “MT 가서 조심해라”, “사람을 쉽게 믿어선 안 된다”, “밤늦게까지 술 먹지 마라” 등의 잔소리를 꽤나 들었을 것이다.

처음 대학수업을 접하고 새롭게 만난 사람들과 친해지기 바쁜 새내기들에게 ‘성폭력’을 이야기하다니, 미안한 마음이다. 하지만 이는 그만큼 중요하고 필요한 이야기다.

보통 우리가 성폭력을 규정할 때는 강간, 신체접촉 등을 생각한다. 그렇게 규정된 성폭력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아주 먼 이야기가 되곤 한다. 하지만 성폭력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문제다. 우리는 성폭력의 범위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 신체적 폭력 뿐 아니라 상대방이 성적으로 불편함을 느끼는 언어적, 비언어적 모든 행위가 성폭력이 될 수 있다.

상대방을 동기, 친구 등 하나의 인격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성적 대상으로 희롱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위에서 언급한 사건이 아니더라도 개강총회, 각종 엠티 등 학교생활을 하다보면 불편한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 주점에서 간호사 유니폼을 입고 서빙하는 여학생, 후배에게 술을 따르라고 강요하는 선배, CC에게 진도를 물어보는 동기 등 지나치기 쉽지만 매우 예민한 지점들이 존재한다. 대부분은 이런 예민한 지점들을 재미나 분위기를 이유로 ‘무심코’ 묻어버리곤 한다. 성폭력은 종종 이러한 ‘무심코’에서 발생한다.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성폭력 문제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한 권력관계에서 발생한다. 성별의 위계나 사회적 지위 등 사회/문화적으로 형성된 불평등한 관계가 큰 원인이다.

‘남자는 힘이 세야 한다.’ ‘여성스럽지 못해서 남자친구가 없다.’ ‘남자가 속 좁게 삐지고 그러냐.’ 우리가 자주 듣는 평범한 이야기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특정 역할을 강요하고, 강요받는다. 남성은 남자다워야 하고, 여성은 여자다워야 한다는 편견이 특정 성역할을 요구한다. 그것은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각기 할 수 있는 역할을 제한하고, 갖은 차별을 양산한다. 이러한 강요는 여성과 남성, 이성애와 동성애 등 다양한 성의 위계를 나눈다. 특정 성이 다른 성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구조를 형성한다.

누군가에게 OO다워야 한다는 요구는 상처가 될 수 있는 폭력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별이나 사회적 지위 등으로 형성된 모든 종류의 성폭력을 지양해야 한다. 여기서 ‘반성폭력’이라는 낯선 단어를 제시하려고 한다. 반성-폭력? 반-성폭력? 성폭력에 반대하자는 것이다! 반성폭력은 모든 성적 언행을 금하자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성폭력에서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다. 우리는 어떻게 성폭력에서 안전한 대학문화를 만들 수 있을까?

학내에는 반성폭력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곳이 있다. ‘성평등위원회’다. 주로 오픈세미나, 영화 상영회, 젠더 강연회, 인식 개선 캠페인, 페이스북을 통해 페미니즘 관련 이슈를 알리는 ‘젠더 뉘우스’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여성주의 교지 ‘녹지’도 있다. 젠더와 관련해 학내외에서 발생하는 이슈를 다루고 있다.

일부 학과에서는 반성폭력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세미나에서는 반성폭력 교육이 필요한 이유와 성폭력이 일어나는 사회/문화적인 이유를 설명한다. 세미나 이후에 함께 내규를 작성하기도 한다. 주로 새내기새로배움터나 엠티, 농활 등 공동체 생활을 하기 전에 실시한다. 반성폭력 기조에서 출발하여 각 학과 회칙에 차별금지 조항을 삽입한 학과들도 있다. “회원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규정이다.

그렇다면 이런 공동체에서는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까? 관련 회칙이 제정돼 있다고 해서 건전한 공동체가 되는 것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반성폭력 논의가 필요한 것은, 논의 과정 자체가 안전장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폭력 사건이 발생할 경우 학생자치 내에서 해결해 나갈 방향을 설정하고, 반성폭력을 위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또다시 공동체에 기대를 건다.

중앙대 학칙에는 ‘성희롱·성폭력 예방 및 처리에 대한 규정’이 있다. 주된 업무는 학내 인권센터에서 담당한다. 이 규정엔 성폭력 사건의 처리과정과 성폭력대책위원회 구성에 대해 자세히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학생들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없다. 물론 굳이 학생들이 나설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들지 모르겠다.

문제를 해결해 나갈 때, 법률상 처리가 끝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비춰지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하지만 모든 문제가 제도나 학칙상의 처리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제도나 학칙들이 형식상의 역할만 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나 성폭력 사건의 경우 피해자의 정신적, 육체적 회복과 공동체의 분위기 개선이 중요하기 때문에 섣불리 사건을 마무리하기 어렵다. 사건의 심각성을 평가하는 기준도 애매하기 때문에 경징계가 내려지거나, 사건이 흐지부지되는 경우도 많다. 제도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징계절차를 밟음과 동시에 공동체 분위기 쇄신에 주력해야 하는 이유다.

도대체 공동체가 어디를 말하는 것이고, 반성폭력 분위기는 어떻게 만드는 것인가? 공동체는 학과부터 소모임, 작게는 삼삼오오 무리지어 다니는 친구들 모두를 일컬을 수 있다. 함께 생활하는 구성체라면 모두 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반성폭력 분위기의 완성은 공동체 구성원들의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언행이나 행동을 상대방이 불편하게 느끼진 않을지 고민하는 것이 시작이다. 각 과나 단체에서 이뤄지는 세미나, 또는 교육을 통해 서로가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상황들을 인식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모두 성폭력 사건에 분노한다. 하지만 그런 분노는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에만 집중된다. 우리는 그보다 문제가 발생한 공동체의 분위기에 주목해야 한다. 성폭력을 바라보는 담론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었는지. 그것을 개선할 분위기는 없었는지. 가해자가 처벌받았다고 해서 그 공동체에선 두 번 다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것인지. 이런 것들을 다양하게 고려해야 한다. 결국 가해자 처벌 전후 공동체의 분위기가 변하지 않는다면 비슷한 사건이 얼마든지 재발할 수 있다.

공동체 내부에서 해결하자는 지적은 그 공동체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이야기로 귀결되기 쉽다. 그렇기에 학내 젠더 문제를 다루는 수많은 단위를 정비하고 함께 대학 내 성 문제에 대해 고민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반성폭력 기조를 담아 정비된 제도의 마련과 세미나, 내규 등의 프로그램이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 제도와 그 제도를 뒷받침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그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우리들의 몫이다.

 

대학을 넘어서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1908년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정치적 평등권과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투쟁한 날을 기념하여 지정됐다. 1908년 투쟁 이후 세계적으로 여성들의 연대가 확장되면서, 여성의 권위신장과 여성빈곤 해결, 남녀차별 철폐를 요구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하지만 10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요구 내용은 별반 다르지 않다.

특히 한국의 성차별은 더욱 심각하다. 올해에도 한국은 ‘여성 유리장벽’ 부문에서 OECD 내 1위를 차지했다(<이코노미스트>). 유리장벽이란 여성의 자유로운 사회참여나 직장 내 승진을 가로막는 사회적 장벽을 뜻한다. 현실이 이럴진대 여성이 권리신장을 요구하거나 성평등을 주장하는 것을 구시대의 것으로 치부하거나,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지 않느냐고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우리는 그동안 가정에서 또 학교에서 성 역할을 강요받았다. 여성이기에, 남성이기에 해야만 했던 것이 있었다. 이러한 강요는 각자의 역할을 제한했고, 많은 차별을 만들었다. ‘나는 힘이 강하기 때문에’, ‘더 많이 알기 때문에’, ‘선배이기 때문에’ 등등 불합리한 근거들에 바탕을 두고 누군가가 상대적 약자를 지배하는 구조가 형성돼 왔다. 이 구조 안에서 강요와 폭력이 너무나 익숙한 문화가 생성된 것이다.

이런 문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말자. 좀 더 예민하게 생각해보자. 그동안 우리는 왜 ‘무언가’를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는지 고민하자. 우리가 예민한 시선을 갖는 것이 보다 안전한 사회, 대학, 공동체를 꿈꾸는 길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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