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 내가 다 살아봐서 아는데!

ㅡ 청년 주거, 정말 쉽지 않다

 | 당기

 

 

어둠 속에서 괜히 눈을 뜨고 누웠다. 겨우 내 몸만 한 침대의 딱딱한 바닥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누군가 복도 끝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고, 옆방 사람은 몸을 일으켜 불을 켰다. 공동 주방에서는 물 트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와 함께 살고 있지만 애써 모른 척한다. 그래야 산다. 여기는 고시원이다.

고시원에 처음 왔을 때 받은 느낌은 ‘어, 생각보다 괜찮네’였다. 침대, 책상, 서랍장에 개인 냉장고까지 있었다. 시험기간 열흘 동안 왕복 네 시간의 통학은 절대 하기 싫다는 마음으로 잠깐 살 방을 구해 고시원에 들어왔다. 이전까지 고시원에 대한 내 인식은 처참한 환경을 묘사한 각종 뉴스들에 머물렀다. 기대치가 워낙 낮았으니, 좁지만 깔끔한 방에 화장실, 샤워실, 공짜 쌀이 제공되는 공동주방은 나름대로 눈에 찼다.

그런데 열흘 후 기말고사가 끝나고 짐을 싸 고시원을 떠날 때 나는 두 번 다시 여기로 돌아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창문이 없어 낮인지 밤인지 전혀 알 수가 없고 당연히 햇빛은 들지 않는다. 잠깐 살 요량으로 싸온 짐이 차지하는 부피도 생각보다 커서 방은 더 좁아졌다. 방음은 사치다. 조금만 귀 기울이면 옆방 사람의 통화 내용까지 알 수 있고 복도 끝 화장실 문소리도 바로 옆에서 나는 것처럼 들렸다. 내가 내는 소리도 남에게 같은 만큼의 예민함으로 전해질 터였다. 모든 행동에 신경이 쓰였다.

이런 고시원의 한 달 방세는 30만 원에서 40만 원으로 결코 적지 않다. 보증금과 정해진 계약기간이 없다는 장점이 있지만, 매달 나가는 방값에 생활비까지 더하면 큰 부담이다. 공동주방이 있어도 음식을 자유롭게 해먹긴 어렵고, 밥값은 비싸니 자연스레 식단이 부실해진다.

학교를 다니는 2년 동안 나는 두 학기의 통학과 두 학기의 기숙사 생활을 했다. 1학년 1학기와 2학년 2학기 때 광역버스-지하철로 왕복 네 시간 거리의 경기도 모 지역에서 통학했다. 1교시가 많은 1학년 땐 출근길 정체와 ‘지옥철’을 한 번에 겪었고, 밤 11시면 술자리에서 칼같이 일어나야 했다. 아침 수업은 도착도 전에 피곤이 몰려왔고, 술 마신 채 버스에서 잠들어 종점인 서해바다 항구에서 내린 적도 있었다.

학교 수업에 동아리, 아르바이트까지 해야 해서 통학기간 동안 나의 삶은 피로 그 자체였다. 광역버스 요금이 비싸 하루에 왕복 5천 원가량, 한 달이면 십만 원이 교통비로 나갔다. 아침에 나와 밤에 집으로 돌아가기에 적어도 두 끼를 밖에서 해결해야 하고, 공강 시간이 길 때는 카페밖에 갈 곳이 없어 오히려 생활비가 많이 들었다. 이 모든 것보다 가장 큰 문제는 왕복 네 시간의 통학 시간에 더해 정신적, 체력적 낭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 떠오르는 것이다. 손해보고 있다고 느끼고,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새내기 1학기를 통학의 고통 속에서 보내고 마침내 추-추가 합격으로 기숙사에 붙었다. 학교 밖 퓨처하우스는 건물에 식당이 없다는 단점을 제외하고 시설, 접근성 모두 좋았다. 2인 1실을 사용하긴 하지만 자취나 하숙의 일반적인 비용보다 저렴해 부담도 적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뒤늦게 뽑힌데다 오리엔테이션 기간에 여행을 가서 사전 설명을 전혀 듣지 못한 것이다. 더구나 공지사항을 눈여겨보지 않은 탓에 나도 모르게 많은 규정을 어기고 있었다.

남에게 피해만 안 주고 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한 달의 한 번 방 점검 시간을 갖고 사감에게 서랍까지 내보여야 벌점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전열 기구 등 위험한 물건 소지를 막기 위함이라지만 내 방과 내 물건을 누군가에게 검사 맡고 싶지 않았다. 또 당시 모 대학 기숙사에서 외부인이 침입해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생활관은 통금시간을 기존 새벽 2시에서 1시로 앞당겼다. 학생과의 상의는 없었다. 하지만 해당 사건은 시간이 늦어서라기보단 허술한 보안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다.

불만은 점점 더 커졌다. 비용을 내고 방을 임대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는데 제약이 너무 많았다. 더구나 그 규칙이 실제로 거주하는 학생들 간의 합의를 통해 결정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 불합리하게 느껴졌다. 과제를 하다가, 동아리 연습이 길어지거나 뒤풀이가 늦어질 때마다 통금 전에 어쩔 수 없이 기숙사로 돌아왔다. 정 별 수 없을 때는 문이 열리는 새벽 5시까지 밖에서 뜬눈으로 밤을 샜다.

2학년 1학기에 살게 된 기숙사 블루미르홀도 비슷했다. 퓨처하우스보다 약간 더 비싸지만, 식당이 있어서 만족했다. 그런데 주로 냉동식품으로 추정되는 반찬과 비슷한 식단의 음식들을 삼시 세끼 먹는 것은 참기 어려웠다. 블루미르홀에는 학기에 더해 방학까지 살았는데 방학이나 다음 학기를 이어서 살 때 다른 방으로 이사해야만 하는 경우도 많았다.

가장 큰 문제는 한 학기 단위로 합격과 불합격이 나뉜다는 점이다. 기숙사에 사는 내내, 성적이 떨어지면 혹은 나보다 성적이 높은 사람이 많이 지원하면 당장 방을 빼야 한다는 불안감이 따라다녔다. 가격과 시설, 접근성은 좋지만 잠깐 살다 말 곳, 누군가에게 내 생활을 지도받아야 하는 곳처럼 느껴져 내 집처럼 살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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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뉴스1

 

 

통학과 기숙사, 잠깐의 고시원을 거쳐 올해부터는 자취를 시작했다. 흑석역 인근의 투룸에 룸메이트와 함께 살게 됐다. 보증금 1000에 월세 35. 부모님이 보증금을 지원해줄 수 없는 사정이었다면 자취는 꿈도 못 꿨을 것이다. 오래된 연립주택의 지층이지만 꽤 넓은 방에 부엌과 작은 거실이 있는 공간은 진짜 ‘생활’을 가능케 했다. 근처 시장에서 장을 봐 밥을 해먹고, 내 방과 화장실을 청소하고, 빨래를 돌리고 널어서 개는,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 내 공간에서 이뤄졌다.

물론 그 일상은 자질구레함 그 자체다. 오래된 집인 걸 증명이라도 하는 양 입주한 뒤 한 달 동안에 고장 난 것들이 연이어 생겼고, 처리해야 하는 문제도 쌓여갔다. 싱크대 수채통, 샤워기, 세탁기 수리에 도시가스와 인터넷 설치까지 모두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내가 벌인 일이면 내가 치워야 한다는 당연한 공식도 더는 피할 수 없어졌다. 하지만 자립을 위해선 모두 나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했던 ‘돈’은 절대 자립할 수 없다. 시급 5,600원짜리 식당 보조 아르바이트로 내가 버는 돈은 한 달에 18만 원이 채 안 된다. 보증금 천만 원을 스스로 모았으면 지출 없이 1,785시간, 하루 8시간씩 223일을 연이어 일해야 했을 것이다. 사실상 불가능하다. 공과금이 많이 나올까 무서워 난방은 잘 때지도 못했고, 온도를 18도로 맞추고 벌벌 떨며 한 달을 살았는데도 가스비만 6만 원 가까이 나왔다. 지출의 대부분을 부모님 지원으로 메꾸지만, 부모님의 노후 자금을 깎아 먹고 있다는 죄책감은 한 달에 한 번 월세를 낼 때마다 어깨를 짓누른다.

고시원에서의 마지막 밤, 양팔로 방 크기를 가늠해보면서 서울에서 20대로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이렇게 많은 집이 있는데 내 집은 없고, 많은 돈을 내지만 어깨를 펴기엔 좁은 집에 산다. 성인이지만,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도 적다.

집은 20대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고시원은 열악하고 기숙사는 불안정하다. 부모님의 지원이 끊기면 자취방에서의 내 일상은 바로 거리로 내몰린다. 내가 졸업을 하고 취직해서 돈을 벌면 서울에 집을 살 수 있을까? 20평대 아파트가 평균 5억대라니 단념하는 게 빠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 사는 곳에서 돈 걱정 없이 살고 싶다.” 그 말이 큰 욕심이 됐다. 매일 아침마다 지역을 오가고 집에서 잠만 자는 생활 말고. 통금 시간이 있고 방 검사를 당하고도 일 년을 못채우는 기숙사 말고. 좋은 집, 살만한 집, 내 집에서 좀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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