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당신의 그 한표를 진보신당에게

| 단야

 

나는 진보신당 당원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택한 자랑스러운 나의 정체성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선택하기란 실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우리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부여’되는 여자 혹은 남자, 대한민국 국민, 학생 등등의 갖가지 정체성이 있다. 이것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미 결정된 정체성으로, 우리는 그것들로 자신을 오롯이 설명하기에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반면 진보신당이라는, 내 의지가 부여한 정체성은 나에 대한 충실한 설명이며 동시에 나 자신을 압도하는 메타포이기도 하다.

진보신당이라는 정체성이 여타와 다르게 스스로 선택했다는 이유에서 특별한 것만은 아니다. 외려 그것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에 일종의 충실함이고, 동시에 압도이다. 평등·생태·평화·연대라는 진보신당의 존재 이유는 곧 세계에 대한 나의 고민이었고, 그것은 ‘세계내존재’로서의 내 삶과 맞닿아있었다. 따라서 나의 삶을 위하여 세계의 문제들—실업, 등록금, 불안정노동, 생태 위기, 전쟁 등—은 해결되어야 했다. 만족스러운 답을 주는 곳이 진보신당이 유일했다면 거짓일까. 입당과 동시에 나는 압도당했다. 세상은 문제투성이였고, 내 삶의 문제란 그 중 일부일 뿐이었다. 여성, 장애인, 청소년 등등 사지로 내몰린 이들은 도처에 있었다. 진보신당은 작은 규모에 어울리지 않게 그 곳곳에 있었고, 나는 당을 통해 많은 이들의 ‘절규’를 들을 수 있었다. 거리의 시위는 한낱 자신의 잇속을 챙기고자 하는 치들의 단순한 이기심의 발로가 아니었다. 그것은 벼랑 끝에 선 자들의 처절함이었다. 그것도 내 삶의 문제임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누구라도 그와 같이 내몰릴 수 있었고, 또한 누구라도 그와 같은 처지였던 것이다. 자본주의는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이들을 비참한 처지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진보신당의 강령에 나와 있듯이, 자본주의는 극복되어야 했다.

좌파를 빨갱이라 혐오하던 사람들이 붉은 옷을 입고 복지를 이야기하는 오늘날, 진보신당은 위기에 처해있다. 세파에 치여 원외정당이 되고, 정략에 의해 협상에서 공공연히 배제되는 상황에서 진보신당은 명망가들을 통해 당의 위기를 돌파하기보다는 ‘배제된 자들의 서사’를 총선 전략으로 들고 나왔다. 그 중 하나가 학내 여성미화노동자에게 비례대표 1번 배정한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누구보다 먼저 복지를 주장하고, 노동을 이야기하던 진보신당 자신이 배제될 위기에서 ‘배제된 자들’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것은 얼마나 큰 용기가 있어야 하는지, 동시에 이는 얼마나 절실한지를 당신에게 호소하고자 한다. ‘배제된 자’가 ‘배제한 자’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당신의 그 한 표를 진보신당에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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