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반값 등록금에서 교육 공공성으로

| 조르바

동결만 해도 그저 ‘감사’했던 등록금이 내려갔다. 2.3%, 인문사회계열 기준으로 8만원. 전국 평균인 4.3%에는 못 미치며, 작년 한 해 동안 언론 지면에 연일 오르내리던 ‘반값 등록금’이라는 구호가 무색한 액수지만 일단 내려가기는 했다.

그러나 환호성보다는 불만들이 튀어나오는 듯 보인다. “이럴거면 차라리 등록금을 내리지 말아 주십시오”라는 글이 학내 커뮤니티 ‘중앙인’에서 ‘최고공감’에 올라왔다. 인하율이 적어서인가? 그렇기도 하지만 논란이 되었던 것은 ‘교육권 침해’였다. 전공·교양과목의 강의시수가 대폭 줄어들어 중앙대 학우들은 대형 강의실에서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 처지가 되었고 재학생 새터 참가비는 두 배로 올랐다. 예산 감축 액수를 살피면 황당함은 더하다. 연구·학생경비 항목에 해당하는 예산이 총 138억원이 줄어들었고 또한 강의시수개편으로 인한 시간강사 감소로 16억원 가량의 시간강의료가 감축되었다.

과연 등록금 인하 때문에 연구, 학생경비가 대폭 감축되고 강의시수가 줄어들었을까? 학교 본부측은 이를 공식적으로 ‘부인’하면서도 또한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기묘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3월 17일 학교 게시판 ‘중앙인’에 올린 공지에서 기획처장은 연구• 학생지원비 감축에 대해 “추경예산을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이야기했다. 추경예산을 기준으로 보면 감축된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중대신문 3월 5일자 보도를 보면 “본부는 교내장학금 등 학생지원비 항목은 등록금에 비례해 총액이 결정된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결국 등록금 인하에 따라서 예산 감축을 했다는 말씀 되시겠다. 한 입으로 두 말 하시는데 어느 쪽이 맞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당신들의 ‘자율’

 

어쨌든 다음 학기도 등록금을 내고 학교를 다녀야 한다. 이미 낸 등록금, 어쩔 수 없다고 여기지 말고 왜 이런 ‘뒤끝’이 발휘되었는지 살펴보자. 우선 총장님 말씀부터 들어보는 것이 순리일 터. 개강을 맞아 중대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안국신 총장은 “사립대학은 사립대학답게 나름의 컬러를 갖고 특색있는 교육을 할 수 있도록 (등록금을) 자율적으로 결정하게 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자율’은 과연 누구의 자율일까. 그것이 학생들의 자율이 아니라는 것은 작년까지 학교본부가 주도한 일방적 구조조정을 겪은 학생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등록금 문제의 뿌리도 이와 같다. 등록금 결정, 학내 구조조정, 예산안 편성 등의 중요 의사결정 과정에 학생들의 의사가 실질적으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이다.

물론 학생 대표들이 등록금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사립학교법에 따라 마련된 ‘등록금 심의위원회’라는 기구가 있다. 예산 등 학내 주요 문제를 심사하는 대학평의원회도 2006년부터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두 기구 모두 권한이 ‘심의’에 불과하기 때문에 학생 대표들은 그저 학교측의 ‘설명’만 듣고 오기 마련이다. 정작 결정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형식적 기구다.

생선이 고양이에게 맡겨졌으니 온전할 리 없다. 지난해 11월 3일 발표된 감사원의 <대학 재정운용 실태> 감사 결과를 살펴보면 사립대학들은 수입 과소, 지출을 과다 계상해 등록금을 부풀려 책정하거나 신규 건축비 등 법인에서 지출해야 할 금액을 대부분 교비 회계로 처리했다. 현행 사립학교법 제5조는 사립학교 운영에 필요한 시설·설비·재산을 갖추는 것을 학교 법인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즉 건설비에 해당되는 내용은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마련되는 ‘교비’에서 지출할 항목이 아니라 법인이 마땅히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앙대의 경우 직원 인건비와 법인 시설비를 교비회계에서 충당한 것으로 드러나 작년 KBS에 보도된 바 있으며, 올해 퓨처하우스와 기숙사 건설비를 교비에서 지출하도록 했다. 또한 그동안 쌓아온 중앙대의 적립금은 520억 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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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관리용 시혜적 복지, ‘국가장학금’

 

물론 정부의 교육재정 부담률이 OECD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쳐 사립대학들이 등록금을 주 수입원으로 삼아야 하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등록금 문제를 사립대학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문제를 ‘제대로’ 건드리자면 등록금이 높을 수 밖에 없는 제도와 구조, 그 밑바탕에 있는 ‘원칙’을 살피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터다.

그러나 정부는 일단 ‘국가장학금’이라는 시혜적 정책을 택했다. 등록금 마련이 시급한 학생들에게는 유용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대학생들이 애초 요구한 ‘반값 등록금’과는 그 액수만 따져 보아도 거리가 멀다. 같은 등록금 ‘인하’라 하더라도 빈곤을 각종 서류와 사연으로 증명해서 겨우 받는 ‘장학금’과 대학생으로서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권리’로 받는 것의 차이는 크다.

등록금 인하, 학내장학금 확충 등 대학의 자구 노력을 평가하여 국가장학금을 차등 지원해 대학의 등록금 인하를 유도하겠다는 애초의 정책 취지 또한 사립대학들의 담합과 눈치보기에 보기 좋게 물 먹었다. 실제로 국가 장학금을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법안이 없어 그 존속 여부가 불투명한 것도 문제다. 정부의 국가장학금이 문제를 해결할 정책이라기보다는 일시적 갈등 관리용으로 보이는 이유다.

 

문제의 기원은 신자유주의적 교육 정책

 

2.3%의 등록금 인하로도 강의일수, 강의시수 축소, 교양과목 통폐합, 학생 관련 예산 삭감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다. 대학은 정부에게, 정부는 대학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만 하는 상황에서 교육의 질은 볼모로 잡히기 십상이다. 때문에 정부의 고등교육 재정 지원을 확보하지 않고, 학내의 비민주적 의사결정구조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유의미한 수준의 등록금 인하를 기대하기 힘들다. 이쯤에서, 우리가 현재 당면하고 있는 문제의 기원을 살필 필요가 있다.

언젠가부터 한국 주요 대학들의 세계대학 순위가 신문에 오르내리고, 고등학교 때까지 세계 수준이었던 한국의 학생들을 대학들이 평범한 수준으로 만들어서 내보낸다는 식의 ‘대학 경쟁력 저하 담론’이 보수 언론매체들에서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위기를 외치면서 변화를 주장하는 자들은 그 변화의 방향성을 전제하는 법. 그들이 일컫는 해법이란 대학 또한 기업처럼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경쟁’해서 ‘세계화’를 일궈내자는 것이었다. 곧 고등교육을 시장에 내맡기자는 말이었다.

그 담론은 김영삼 정부 들어서 ‘5.31 교육개혁’이라는 이름의 정책이 되었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이름하에 취해진 대학 평가와 그에 따른 편중 지원 및 대학 서열화가 심화되었다. 또한 민간 재원 중심의 대학 체제, 규제 완화란 명분으로 취해진 각종 공적 관리ㆍ감독 장치의 해제 등이 숨가쁜 속도로 이루어졌다. 김영삼 정부를 이은 김대중 정부와 이후 노무현 정부가 이를 그대로 계승했다.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 ‘전면화’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1992년 사립대의 등록금 책정이 자율화된 마당에 대학 교육을 시장에 내맡겼으니 등록금이 폭등할 조건이 모두 갖추어진 셈. IMF 위기 이후, 등록금은 물가 상승률을 넘어서 가파르게 올랐다. 인상의 근거는 “교육을 받는 너님이 돈을 내세요”라는 ‘수익자 부담 원칙’이었다. 등록금을 더 낸 만큼 학교는 더욱 발전하고, 학교의 발전은 곧 나의 발전이라는 논리 앞에서 학생과 학부모들은 묵묵히 지갑을 열 수밖에 없었다.

 

대학이 어떤 곳인지 다시 묻는 일

 

비싼 등록금을 내고 얻은 대학 졸업장이 더 이상 아무것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와 누적된 피로감은 작년 여름의 반값 등록금 시위로 터져 나왔다. 하지만 ‘불발’이었다. ‘등록금 반값 인하!’라는 누가 했는지 모를 약속은 국가장학금과 2.3%인하라는 엉뚱한 결과로 돌아왔다.

반값 등록금은 불가능한 요구는 아니다. 정부의 교육재정을 OECD 국가의 평균 수준으로만 해도 등록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부족한 요구다. 당시 이슈로 떠오른 것은 기형적인 대학 구조와 제도가 아닌 비싼 등록금 그 자체였다. 등록금 논의와 더불어 ‘대학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이 넓어지는 듯 보였으나 되려 더욱 협소해진 것이다. ‘반값 등록금’이라는 구호 뒤에 있었던 수많은 문제제기와 상상력은 간 데 없고 비싼 등록금을 낳은 교육 정책은 여전히 그대로 남았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해야 하는 것은 대학 교육에 대한 원칙과 방향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대학 교육은 사유재인가 공공재인가? 지금까지는 ‘사유재’로 분류되어 왔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수익자 부담 원칙의 전제이자 대학 교육비의 대부분을 학생과 학부모가 부담하게 하는 근거였다.

대학 교육을 사유재로 분류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경합성’이다. 누군가 대학 교육을 받는다면 그 사람이 차지하는 것만큼 다른 사람의 몫이 줄어든다는 말이다. 하지만 무엇이 공공재이고 공공재가 아닌지에 대한 기준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에 의해 변경될 수 있다. ‘경합적’이어서 문제라면 모두가 평등하게 대학 교육의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면 될 일이다.

헌법 제3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경제적 사정 때문에 모두가 ‘균등하게’ 교육을 받지 못하는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저 조항은 죽어 있다. 이를 되살려 내는 일, 교육 공공성이라는 가치를 대학이라는 공간에 실현하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와 사립대학 사이의 지루한 책임 떠넘기기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우리의 권리를 구해낼 길은 이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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