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우리의 수업권만은 구조조정하지 말라!

ㅡ 수업의 질도 좋아지고 효율성도 높아진다는 거짓말

 

 | 덕배

 

 

매 학기마다 ‘운명의 시간’이 찾아온다. 수강신청이 시작되는 날 아침,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최적의 네트워크 환경을 구축하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일부 학생들은 학교 컴퓨터실에서 번호표까지 미리 받아가며 ‘어떻게 하면 이번학기 수강신청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서버시간을 띄워놓고 마우스를 세팅하고, 수십 번 수강신청 버튼을 클릭하는 최단거리를 이미지트레이닝 한다. 드디어 우리 눈앞에 ‘헬 게이트’가 열린다. 어김없는 광클, 10시 정각부터 몇 분간 끊임없이 탄식이 터져 나온다. 누군가는 이겼고, 누군가는 졌다. 내 수강 신청 내역은 텅텅 비어있다. 어쩌겠는가. 내 순발력이 여기까지인 것을…

 

수강신청, 그 참을 수 없는 전쟁의 가벼움

 

이번학기에도 어김없이 수강신청 오류가 있었고, 얼굴도 모르는 전산 담당자는 지난학기에 그랬던 것처럼 희생양이 되어 ‘직위해제’를 당했다.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떠났고, 누군가는 눈물을 삼키며 휴학신청을 했다. ‘광클’만이 미덕인 수강신청의 정글에서 여느 때와 같이 또 한 번 비극이 일어난 것이다. 2만 의혈학우들에게 매학기 수강신청은 ‘당연한 참사’였고 강의 시간표와 개설과목은 우리가 알 수 없는 과정에서 ‘합리적’으로 결정된 ‘주어진 현실’이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번엔 유난히 이상하다.

인기 과목이 수요에 비해 적으니, 이런 경쟁이 일어난다고 한다. 일견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번학기부터는 학교 본부가 폐강기준과 분반기준을 강화했단다. 강의 시수가 줄어든 대신 강의 당 정원이 늘어났다고 한다. 결국 수용인원은 ‘쌤쌤’이니 딱히 손해 본 건 없다고 한다. 아니, 오히려 백화점식으로 개설되어 있던 교양강의들이 정리되고, 방만하게 운영되던 강의개설이 ‘효율적’으로 운영되니 ‘선순환’이 일어날 거라고 한다. 강의 수를 줄이는 대신 전임 교원을 더 채용하면 공부 더 많이 하신 정교수님들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는 거란다. 그럴싸하다. 그런데 한바탕 전쟁이 끝나고 난 뒤 내 손에 쥐어진 시간표를 보고 있노라면, 수강신청에서 승리해봤자 본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 주어진 강의 시간표, 언제까지고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남겨둬야 할까? 학과 행정실에 항의하고 중앙인 게시판에 건의하면 몇 가지 사소한 문제 정도는 보완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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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개편 왜 이렇게 했나요?

 

그러거나 말거나, <중대신문> 개강호 1면엔 총장님 얼굴이 실렸다. 이번학기 최대의 이슈인 ‘강의 개편’에 대해 편집장이 따져 물었다. 사람 좋은 우리 총장님, ‘콩나물 강의실’에서 더불어 배우는 문화를 익혀나가라고 한다. 아니, 그런데요. 더불어 배우고,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문화를 꼭 빈자리 없이 꽉꽉 들어찬 강의실에서 배워야 하나요? 수업시간에는 수업 내용을 잘 듣고 배우는 게 더 중요한 거 아닌가요? 여쭤 봐도, 총장님은 말이 없다. 200~300명이 넘는 대형 강의가 많은 선진국을 본받자고 하신다. 아… 총장님도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강의를 EBS에서 보셨구나! 그런데, 선진국에선 정말로 그렇게만 공부하나? 이때 마침, 지난 3월 4일 한국경제신문에 실린 연세대 정갑영 총장의 인터뷰가 생각난다.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한 강의를 25명 이상 운영하는 경우가 없습니다. 노벨상을 받은 교수가 수백명씩 듣는 대형 강의를 한다고 해도 꼭 학생 20명에 조교 한 명 정도는 배치해 보충 강의를 합니다.” 아니, 안국신 총장님, 선진국은 대체 어디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우리학교에 노벨상을 받은 교수님이 그렇게 많았던가요?

어찌되었든 학기는 시작되었고, 벌써 한 달이 지나갔다. 처음엔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느껴지던 일들이 이제 슬슬 일상처럼 느껴지고 있다. 그러나 이게 일상이 된다면 남은 학기들이 너무 지옥같을 거다. 현재 진행형인 ‘강의 시수 개편’,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따질 건 좀 따지고 넘어가자. 방만한 강의들이 시원하게 구조조정 된 강의 시간표, 백화점식 과목들이 알짜배기로 바뀌었다는 이번학기 시간표를 찬찬히 들춰보며, ‘효율성’의 쿨한 매력에 잠시 빠져보자.

 

교양과목 다 어디 갔어? 어?

– 수업 선택권은 줄고, 수업 정원은 늘고

 

먼저 교양강의 시간표부터 들춰봤다. 이번 학기에 터져 나온 ‘들을 과목이 없다’는 학생들의 불만, 그 중심에 ‘선택교양 과목 감축’이 놓여 있다. 2008년에는 선택교양에 150 과목이 총 319개 반에 개설되어 있었던 반면, 이번 학기 개설된 선택교양 과목은 81가지로, 개설된 반은 154개에 그쳤다. 과목 선택권은 50% 가까이 줄고, 실제 운영되는 강의실도 52%가 사라진 셈이다. 지난 4년 동안 학교는 온통 공사판이었고, 덕분에 전체 강의실 수는 늘어났는데(심지어 교사면적은 두 배가 되었다) 선택교양 강의실은 반쪽이 되었다. ‘들을 과목이 없다’는 학생들의 여론은 투정이 아니라 냉철한 현실 인식이었다. 본부에서 아무리 모른 척 해도, 시간표를 짜 보면 안다.

절반의 선택교양 과목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사실, 따져 보면 절반의 과목들은 그냥 폐지된 것이 아니라 ‘흡수 통합’된 경우가 많다. 여기서 ‘중앙대의 흔한 과목 대체.jpg’가 등장한다. 대여섯 과목이 한 과목으로 통 크게 합쳐진 경우도 있고, 대체의 대체를 반복하다 보니 처음 과목과 전혀 상관없는 과목으로 변신한 경우도 더러 있다. <수화의 이해>와 <인터넷커뮤니케이션론>이 합쳐져 <인터뷰와 프레젠테이션>으로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기도 했다. 도저히 상식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그래도 다 뜻이 있는 행정처리 일텐데, 최대한 이해하려 노력해야 하지 않겠나. 어디보자… ‘인터-넷’과 ‘인터-뷰’는 성씨도 같고 항렬도 같으니 형제로 봐서 합쳐진 것이라고 봐줘야 하는 건가? 그러고 보면 ‘수화’와 ‘프레젠테이션’도 아주 관계가 없지는 않다. ‘수화’를 ‘바디 랭귀지’정도로 이해한다면 말이다. 뭐… 하긴, 프레젠테이션을 말로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 눈 뜨고 봐줄 수가 없는 무리수다. 이것이 강의 운영 효율성 강화의 이면이다.

더 큰 문제는 전공수업이다. 각 학과와 계열에서 관리하는 전공수업의 특성상 구조조정 된 전공 강의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추산하기 힘들어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체로 학과별로 자체조정을 해 인원을 수용하고 있지만, 분반 기준이 엄격해져 기존 강의실을 대형 강의실로 급히 바꿔 정원을 늘리기도 한다. 이럴 경우 팀플로 진행되던 전공수업은 실질적인 팀플이 불가능해지기도 한다. 게다가 추가분반이 확정되는 것은 개강 후 수강정정기간이라, 이미 수강신청한 다른 과목과의 조정이 어렵다. 겨우겨우 신청한 인기 과목들을 울며 겨자 먹기로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중앙인 커뮤니티에는 이와 관련된 건의와 불만들이 쏟아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경영학과의 전공필수과목인 <경영과학>이었다. 한 학년 학생 정원에 훨씬 못 미치게 전공필수과목이 개설되었다는 것이다. 자과 자학년만 수업을 듣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학년 정원에 못 미치는 수업 정원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특히 이번 학기부터 복수전공 기준학점은 9학점이나 상향조정 되었는데, 복수전공 학생들은 턱없이 부족한 여석에 허덕여야 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광고홍보학과다. 전공기초나 실습과목의 경우 수강 신청 기간에 부전공, 복수전공 학생을 위한 자리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학교 본부가 취직할 때 유리하다며 모든 학생들에게 ‘강추’하는 복수전공이지만, 9차 학기 등록할 각오가 없다면 바짝 긴장해야할 것 같다.

 

시간강사들은 이제 뭐 먹고 사나?

– 학과 구조조정, 이건 됐고.이젠 시간강사와 수업 구조조정이다

 

지금 우리 코가 석잔데, 누굴 챙기냐고 할 수 있겠지만, 실은 이번 강의 구조조정에서 전혀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하루아침에 잘린 시간강사들이다. 공통교양 <글쓰기>의 경우를 살펴보자. 시간강사들의 90%가 갑자기 잘렸다. 지난학기 글쓰기 수업에서 강의하던 시간강사는 총 37명이었다. 그런데 이번학기엔 단 5명뿐이다. 직전학기에 강의했던 37명 중에 4명만 재임용 된 것이다. 나머지 33명은 진작에 학교로부터 ‘재임용 불가’ 통보를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재임용 되지 못한 강사들의 직전학기 강의평가 결과를 살펴보니 평균이 91.91점이나 되는 강사도 있다. 강의 평가에 상관없이 ‘효율적으로’ 잘린 셈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시간강사 문제를 왜 따지고 챙겨봐야 하냐고? 이건 오지랖이 아니다. 2009년부터 계속된 구조조정 과정에서 학생들이 배운 게 있다. 남의 일을 남의 일로 남겨두면 결국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다. 대승적 차원에서 희생을 감수하다 보면 결국 그 희생양에 내가 포함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CAU 2018+” 계획을 위해서 2016년에 졸업할 우리가 ‘대승적으로’ 희생하라고 해도 할 말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2018년, 명문 중앙대학교에 입학할 얼굴도 모르는 후배들을 위해서 지금의 대학 생활을 저당 잡히는 것이 정말 우리가 원한 것이었나?

나와 관계없어 보이는 이들이 손해보고 희생을 강요당할 때, 그들의 처지에 내 모습을 비춰보지 않고서는 나중에 내 권리조차 주장할 수 없다. 그래서 시간강사 문제도 중요하다. 우리가 강의개편, 수업 구조조정에 대해 단지 내 권리가 침해당했기에, 수업 듣기 힘드니까 짜증난다고만 말하는 것을 넘어서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우리가 ‘호갱님’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우리는 점점 더 ‘호갱님’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중앙in 논객 MACH3는 적절하게도 이런 댓글을 달았다. “과 하나 날리는 것도 딱 20일 걸렸는데, 과별 정원 5명 감원이 그렇게 난이도 높은 행정절차인지는 모르겠네요.” 학교 본부의 속내가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면 과언일지 모르겠다. 구조조정은 엑셀 한번 밟으면 브레이크를 일부러 꾹! 밟지 않는 이상, 속도가 줄어들지 않는다. 그 대상의 폭도 넓어지는 건 당연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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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지표’나 액면 그대로 믿지 마라

 

앞에서 살펴본 대로 시간강사들이 많이 잘렸고, 시간강사 예산은 16억이나 줄었다. 그런데 그 돈으로 전임교수를 채용해봤자 콩나물 강의실을 피할 수가 없다. 대학평가에서 교육여건과 관련된 지표에서 학교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전임교원 1인당 학생 수’다. 전임교원이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늘어나면 이 지표상에서 교육의 질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겠지만, 따져보면 현실과는 큰 관계가 없다. 오히려 학생들의 처지에서 교육여건이 좋아졌는지를 살필 때 현실적으로 유효한 지표는 ‘시간강사를 포함한 전체 교원 1인당 학생 수’다.

교양학부대학장은 중앙인 커뮤니티에 지난 4년 동안 교양학부 전임교원이 두 배 정도로 늘어났다고 당당히 밝혔는데, 그 중 절반 이상이 외국인교수다. 내국인 교수의 경우 강의전담교수가 전임교원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런데 외국인 교수의 경우 강의전담교수도 전임교원에 포함된다. 강의전담교수는 계약을 2년 단위로 하는 시간강사들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니 실제로 조교수 이상 신규 채용은 자랑할 만큼 많지 않다. 4년 전에 교수가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지, 지금 교수가 넘치게 많아진 것이 아니란 말이다. 학교 법인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가지고 큰 소리로 자랑하며 교양강의 감축 문제에서 ‘물타기’를 하고 있다.

‘수업의 질’은 ‘삶의 질’이나 ‘행복지수’처럼 주관적인 것이어서 현실에서 ‘객관적 지표’로 우리에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사회적으로 ‘삶의 질’을 높이자고 할 때, 개개인 각자가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함양하자는 구호로 ‘퉁’ 치지는 않는다. 각자에겐 나름의 평가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사회적인 문제로 이야기 할 때는 하는 수 없이 ‘여건’이 등장해야 한다. 마음만 먹으면 만족할 수 있는 경제적 상황, 물리적 토대를 마련해 놓자고 하는 것이 ‘무언가의 질’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수업의 질’ 문제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수업의 질’은 수업 여건, 수업 선택권의 범위, 객관적인 투자 현황, 다른대학과의 비교 같은 지표를 통해서만 공적으로 풀어낼 수 있다. 학교는 강의 효율성을 증대시킨다면서 강의를 줄였다. 이게 우리가 강의의 질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사라진 강의만큼 시간강사가 줄어들고, 강의실 수가 줄어들고, 한 강의실 당 정원이 늘어났다. 이런 환경 속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강의의 질을 높이고, 만족도를 높이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2011년 중앙일보의 대학별 평가 리포트 결과를 보면 중앙대는 국제화, 사회진출 부문에선 7,8위지만 교육여건 부문에선 19위에 그쳤다. 교수 확보율은 47위로 평균 이하다.

 

이번 학기를 ‘정상’으로 만들지 마라

– 다음 구조조정은 누구를 향할까?

 

학교측은 일관되게 이번 강의 구조조정이 등록금 인하와 상관 없는 조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수업권 침해가 등록금 수입 감소로 인한 ‘긴축재정’이 야기한 일시적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수업을 듣고 있는 이번학기, 빽빽한 콩나물 강의실, 나만의 시간표를 구상해볼 수도 없는 표준화된 교양과정까지. 이게 모두 지극히 정상적인 상태인 거다. 그러니, 가만히 수업만 듣고 있어서는 안 된다. 등록금이 오르고 재정이 넉넉해져도 이 상황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학교가 공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업을 들을 권리는 우리가 학교를 다니는 동안 누려야 할 가장 중요한 권리다. 학교 발전을 위해,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혹은 ‘방만한 강의를 정리하기 위해’ 라는 온갖 미사여구와 명분이 달라붙어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수업권이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학교본부에 ‘내가 들을 강의는 내가 결정하겠다!’고 따져야 한다. 그 허울 좋은 ‘효율성’과 ‘합리적 운영’이 과연 우리를 위한 거냐고 바락바락 대들어야 한다.

이젠 상황을 냉정하게 조망해봐야 한다. 취업률이 낮은 학과, 지방에 있는 캠퍼스, 언제든 해고해도 되는 시간강사들, 우리 모두에게 ‘약간의 수업권 침해’…… 이 길을 쭉 따라 가다 보면 다음 구조조정 대상이 ‘우리 모두’가 아니리라는 보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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