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정치적 중립은 개나 줘

 | budnamu

 

나, 군인이다. <잠망경> 같은 ‘좌빨지’에 글 싣는다고 오해하는 사람들 있을지 모르는데, 나 그래도 제법 성실하고 쓸모있는 군인이다. 내가 원래 좀 그렇다. 뭘 할 거면 좀 철저하게 해야지, 어설프게 하는 건 안 하느니만 못하다. 사실 우리 ‘대한민국’의 ‘주적’은 우리 ‘진보’들의 ‘주적’이기도 하다 보니, 감정이입 충만하다. 전국 각지에서 타오르던 투쟁의 불씨는 저들의 ‘도발’로 일거에 꺼지기 일쑤였다. 저들을 추종하는 이들이 ‘진보’의 이름을 달고 나오니, 진정 열정적이고 진실한 진보들이 도매급으로 까이기 일쑤였다.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행위로 진보가 처한 위기를 보라.

나, 이렇게 정신전력 투철한 군인이다. 그래서 그런데, 우리 군대 문제 많다. 헌법보다 상위법인 군인복무규율을 보라. 군인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치적 중립을 준수해야 한다. 근데 이게 뭐람, 난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서 동시에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여야 한단다. 매주 수요일마다 주입받는 정신교육은 대체 무슨 얘길 하는 건지. ‘사상전에서 승리하자’니? ‘파병에 무조건 찬성하라’니, ‘리비아에 대한 국제군의 공습이 무조건 정당하다’니, ‘한미FTA를 지지하라’니! 나처럼 참된 군인은 혼란스럽다. 지나치게 정치적인 이런 교육들의 공습에 정신차릴 새가 없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저번 총선 때, 난 군인의 본분을 지키는 데 전념했다. 민주통합당의 패권적 태도를 비판하고 새누리당에 침묵함으로써 정치적으로 중립했다. 오늘은 통합진보당내 당권파의 종북성을 비판하고 새누리당에 침묵함으로써 정치적으로 중립했다. ‘지지하는 정당이 있어서 새누리당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음으로써 정치적으로 중립했다. 그러나 내가 새누리당의 부패를 비판하고 새누리당의 정책을 비판하고 새누리당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면 나는 정치적으로 치우친 군인이 되어, 관심병사로 관리됐을지도 모른다. 대체 이런 실상 어디에 정치적 중립이 있는지, 진심으로 묻고 싶다. 이왕 할 거면 제대로 좀 하지.

근데 이게 뭐 어디 군대만 그런가. 우리 학교에서도 정치적으로 중립하기 참 쉽다. 학교가 등록금을 인상하면, 찬성하라! 반대는 정치적이다. 대학의 자본화에 찬성하라! 반대는 정치적이다. ‘찬성!’ 외치는 당신은 정치적으로 중립인데, ‘반대!’ 외치는 당신은 학내 정치꾼이다. 아, 정치적으로 중립인 나는 오늘도 슬픔에 잠긴다. 빨리 전역하는 수밖에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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